1970년대 수출자유지역, 노동자 몰려들어
장시간 노동·저임금·주거 등 문제 떠올라
박기홍 신부, 힘든 이들을 위해 손 내밀어
'현대 건축 거장' 김수근의 종교 건축 서막
꽃봉오리 주변으로 꽃잎 감싸는 형상 눈길
마산 양덕성당은 대한민국 현대 건축의 거장 고(故)김수근 건축가의 종교 건축 서막을 연 공간이자 불광동성당, 경동교회와 함께 그의 3대 종교 건축물로 꼽힌다.
마산역에서 도보 7분. 잠깐 걷다보면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와 건물 사이 위치해 있는 양덕성당을 발견할 수 있다.
마산 양덕성당은 45년여 세월 동안 도민들과 시대를 함께 살아오면서 어떤 이에게는 평안과 위로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아도, 가난한 마음일 때도 주저 없이 갈 수 있는 공간, 이곳에서 살아갈 힘을 되뇌인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건축학적 미학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 45년 지역민 삶과 애환 스민 곳
=1970년대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됐다. 노동집약산업인 섬유, 의류, 봉제, 전자 등 일본기업들을 유치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마산으로 몰려들었다. 양덕동은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이 가까워 가난한 노동자들이 셋방을 얻거나 기숙시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동네였다. 일에 지친 노동자들을 위한 주거와 복지, 교육 등이 현안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박기홍(Josef Platzer) 양덕성당 주임신부는 마산교구로부터 허락을 얻고 고향인 오스트리아 그라츠 교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가톨릭여성회관을 지었다. 가톨릭여성회관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사문제 상담부터 인간다운 삶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주거지원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산교구가 양덕동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하고 박기홍 신부를 본당신부로 임명했다. 그는 임시성당을 가톨릭여성회관 안에 두고 회관 강당에서 미사를 하며 본 성당 설계를 계획했다. 이때 그는 회관 길 건너편에 새 성당 부지를 마련하고 김수근에게 마산자유수출무역지역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성당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수근은 20대 중반의 수습 건축가 승효상을 책임 디자이너로 지목하면서 양덕성당 건축을 함께 했다. 박 신부는 29차례 서울과 마산을 기차로 오가면서 성당 건축 설계를 위해 소통했다고 한다. 이 같은 소통을 바탕으로 약 9개월 동안 설계가 이뤄졌고 1978년 11월 26일 착공, 1년 뒤인 1979년 11월 25일 마산 양덕성당이 헌당됐다.
이후 일본 건축잡지를 통해 전세계에 양덕성당이 알려지게 되면서 김수근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양덕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승효상은 훗날 한 에세이에서 양덕성당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담아냈다.
"준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는데,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듯한 한 젊은 여성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후 다시 나왔을 때 밝은 얼굴로 바뀌어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든 공간이 이 여성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제게 부과된 사명을 조금이나마 행한 듯하여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 김수근 종교건축의 서막
=양덕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건물외관의 붉은색 벽돌 향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자 다른 질감을 내고 있다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하단부는 깬 벽돌을 사용해 거칠고 강한 질감으로 마치 석재를 쌓아 올린 느낌을 통해 기단이 튼튼해 보이면서도 안정감을 준다. 또 바로 서있지 않고 기울어진 느낌으로 설계돼있다. 반면 상단부에는 깔끔하게 마감된 벽돌을 써서 솟은 느낌을 주면서 하단부와 분명하게 분리시키고 있다. 여기에 6개 면으로 분할한 벽면들을 각각 달리 처리해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단위 공간들을 조합해 나가면서 원형 느낌의 성당을 갖추고 있다.
김수근이 양덕성당의 이미지를 '바위산에 핀 수정꽃'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성당의 하단부를 비스듬한 매스로 처리해 건물이 바위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설계했다.
성당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성당의 중심 꼭대기에 꽃봉오리가 보이고 그 주변으로 건물을 감싸는듯한 꽃잎 형상이 나타난다. 지붕 역시 원래는 벽돌로 지어졌지만, 보수 등의 이유로 현재는 금속패널로 덮여 있다. 벽돌과 철제의 이질감과 함께 설계자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원형을 볼 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내부로 들어가 본다. 신성한 공간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당으로의 접근은 긴 램프(경사로)를 통해 한층 높은 곳에서 이뤄진다. 그 외 나머지 회합실, 부속건물 등은 지상에서 접근하도록 했다.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걸까. 마음을 가다듬고 경사로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십자가를 눈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다. 현재는 십자가가 처마에 가려 있지만 예전에는 시원하게 볼 수 있었다. 십자가 양 옆으로 세워진 기둥은 마치 십자가를 쥐고 기도하고 있는 손을 연상케 한다.
성당에 들어가면 절제된 빛에 의해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측창과 천창에서 미세하게 스며드는 빛이 내부의 종교 건축 특유의 엄숙함과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천창을 올려다 보면 내부의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상부의 볼트형식으로 연결되면서 조형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천장 사이사이 만들어져 있는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중심에 있는 십자가에 집중된다.
성당에 또하나 나있는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보면 성당 뒤뜰이 나온다. 성전 뒤뜰에는 익명의 신자가 기증한 한복 입은 성모자상을 마주할 수 있다.
건물 주변에 계속 이어지는 동선들을 통해 성당 주변을 산책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거친 붉은 벽돌바닥과 틈새에 번져 있는 이끼에서 지나온 시간을 유추하며 상념에 젖는다. 양덕성당에 들러 각기 다른 시각으로 건축물의 가치를 누려보길 바란다.
/경남신문=한유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