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훈의 '벽제의 밤-개'


'수렴과 발산' 창립·2019년 이인성 미술상
동물권·실존·삶·죽음 등 다양한 맥락 연구


공성훈의 '벽제의 밤-개'
공성훈 作 '벽제의 밤-개'. /경기도미술관 제공

어스름한 어느 겨울날, 근처를 지나가던 외딴 차의 헤드라이트가 쌓인 눈 위에 수없이 겹쳐진 차바퀴 자국과 개 한 마리를 비춘다. 한참 잠이 들 시간인 것 같지만 개는 매서운 겨울 날씨 때문인지, 이미 수없이 지나간 차 때문에 경계심이 심한 것인지 옆에 있는 개집 안으로는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또다시 자신을 비추는 붉은 빛에 개는, 누굴까 얼굴을 살펴보다가 "아, 우리 동네 사람이군!"이라 말하며 기분 좋은 꼬리 올림으로 그를 맞이한다. 그 후 '드디어 동네 사람들 모두 귀가했군!'이라 생각하며 기지개 한 번 크게 켜고 잠을 청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03년 당시 공성훈의 작업실이 위치한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에는 유난히 개가 많았다. 떠돌이 개를 비롯해 개 사육장도 많았던 곳이다. 작가는 자신의 시선에 계속 들어오던 개를 그리기 시작했다.

공성훈은 회화로 작품활동을 하기 이전, 인천 지역을 기반으로 결성된 '수렴과 발산'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며 제도 비판적인 다양한 결의 설치작품과 산업용 페인트를 칠해 제작된 키네틱 아트적인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했었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벽제, 모텔, 밤, 가로등 또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빛, 개를 주제로 그리기 시작하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한국 풍경을 주로 그리던 작가는 2019년 제 19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하며 그 업적을 인정받기도 했다.

특히 그 주제 중에서도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여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 개는 비슷한 시기부터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동물권과 더불어 '벽제' 지역이 주는 장소성이 함께 회자되며 실존의 문제, 삶과 죽음의 경계점, 도시개발로 인한 소외 등의 다양한 맥락에서 연구되고 있다.

공성훈은 단순히 개라는 대상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로서 승화시켜 사회의 여러 이야기를 담론화할 수 있는 작품을 그려낸 작가였다.

/이혜현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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