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불법파견 '꼼수' 리포트


23명 목숨 앗아간 화성 리튬전지 제조공장 아리셀
인건비 낮고 처우 덜 보장받는 하청업체 외국인들
사측은 정규직처럼 근무시켜놓고 '직접고용' 안해

최근 불법파견 인정하는 법원 판결 속속 나오지만
기업들 본사 아닌 자회사 만들어 정규직 고용 우회
소송제기하지 않겠다는 조건의 '합의서'까지 요구

현대위아·롯데케미칼·포스코·현대제철·SPC 등
하청노동자들 불법파견 소송 제기하자 편법 도입
최종 판결까지 오래 걸리는 점 악용, 회유·협박도
긴 투쟁에 지친 노동자들, 울며 겨자먹기로 '사인'
본사보다 낮은 임금 악조건에도 不제소합의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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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인공지능) 미드저니로 만든 그림을 그래픽기자가 재가공한 이미지.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정규직 고용은 기업에 부담이다.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시장경제 본령상 인건비가 저렴한 비정규직이나 하청노동자로 대체하고 싶은 것이 기업의 심리다. 다만 정도가 과하면 고용불안이 만연하고 노동약자를 양산할 여지가 커진다.

그래서 국가는 법으로 기준을 정했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의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했고, 파견법은 적정한 하청업체 운영 방식과 하청노동자 처우 등을 규정했다.

그래서 '불법파견'은 문제다. 법을 넘어선 과도한 외주화로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고 하청노동자 처우를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 달 전 대형화재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공장 아리셀도 그랬다. 숨진 노동자 23명 중 대부분은 인건비가 낮고 처우를 덜 보장받는 하청업체 외국인이었다.

사측은 정당한 도급 계약을 맺었다고 해명했지만, 숨진 노동자들이 사실상 정규직처럼 근무해 왔다는 정황은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은 합당한 처우는커녕 기초적인 안전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타지에서 일하다 숨을 거뒀다.

다행히 최근 기업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아리셀 참사 사망자들처럼,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외양만 하청노동자인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법원 명령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기업이 대응하는 방식은 최근 새로운 양상을 띤다.

하청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겠다며 동시에 그룹 내 자회사를 새롭게 만들고, 본사가 아닌 신설 자회사 정규직 고용을 절충안으로 내세우는 식이다. 조건으로 향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합의서까지 받는다.

소송만 수년, 기나긴 투쟁에 지친 하청노동자들은 그나마 나은 처우라도 받기 위해 자회사 채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꼼수'라고 비판하는 일부는 몇 년이 걸리든 정당하게 본사 직접 고용 결정을 받아내겠다며 지금도 법정으로 나선다. 10년 전 25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14명 남은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송단도 그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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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속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위아 평택공장 내부와 대법원 등에서 집회를 열고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규탄하며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모습. /지회 제공

■ "직접 고용하라" 최후의 14인 법원으로


"직접고용 하라는데 자회사가 웬말이냐!"

김호성(56) 지회장은 지난 5월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2020년 소장을 접수하고 4년 만에 얻은 결과다. 원고는 김 지회장을 포함한 현대위아 평택공장 사내하청업체 직원 15명(1명 포기)이고, 피고는 현대위아 주식회사다.

원고 측은 피고에 '고용의사표시'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청임에도 사실상 정규직처럼 일을 시켜온 사측에 정당하게 직접 고용하고 그동안 정규직으로 받아야 했던 임금만큼을 배상하라는 취지였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면서 13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 지회장의 손을 들며 사측이 불법파견을 해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1심이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고 직접 고용이 이행되려면 수년이 더 걸릴 것은 뻔하다. 사측은 지난달 항소했고 수원고법에서 열리는 2심은 아직 첫 기일도 지정되지 않았다. 앞서 동료 하청노동자들도 그랬다. 2014년 처음 문제를 꺼낸 1차 소송단 64명은 7년이 지난 2021년에야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2차 소송단 33명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이 걸렸다.

장기전은 예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회유다. 김 지회장이 3차 소송단 대표로 소장을 접수한 2020년 현대위아는 신규 자회사를 설립했다. 향후 평택공장을 신규 자회사로만 운영하고 기존 사내하청업체는 울산공장으로 이전시킨다며 하청노동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승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건도 있었다.

당시 진행되던 불법파견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제소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평택공장에서 부제소합의를 전제한 자회사 채용을 거부하는 하청노동자들은 울산으로 강제 전보된다는 뜻이었다.

김 지회장을 비롯한 1~3차 소송단은 이를 '꼼수'이자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불복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뜻을 같이하진 않았다. 당시 지회 추산 전체 하청노동자 250여명 중 120여명이 자회사 채용을 택했다. 법적 다툼에 동참해도 적어도 수년은 버텨야 하는데, 대부분 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입장에서 터전을 옮기면서까지 투쟁을 감수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는 1차 소송의 승소 확정 판결도 나오기 전이어서, 지난한 다툼 끝에 결국 패소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절반 가까이 자회사로 넘어가고, 먼저 확정판결을 받은 1·2차 소송단 97명은 결국 직접고용이 이뤄져 본사 정규직으로 일하게 됐다. 불법파견 인정 대상은 3차 소송단만 남은 셈인데, 회유는 현재 진행형이다.

당초 김 지회장과 함께 소송을 준비한 인원도 26명에서 일부가 자회사 채용을 택하거나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찾으면서 14명으로 줄었다. 더구나 평택공장이 2년 전 자회사만의 설비로 재편되면서 소송단은 졸지에 '해고 투쟁'까지 나서게 되는 악재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김 지회장은 얼마나 더 걸리든, 1심 승소를 시작으로 정당한 직접 고용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한다. 앞서 정규직 직접 고용을 쟁취해낸 1·2차 소송단 동료들과도 멀리서나마 경제적 지원 등으로 응원을 보태고 있다고 한다.

김 지회장은 "직장을 잃고 각자 숨만 쉬며 살 길을 알아서 찾는 상황이지만, 정당하게 받아낼 것은 받아내고자 끝까지 투쟁하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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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속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위아 평택공장 내부와 대법원 등에서 집회를 열고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규탄하며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모습. /지회 제공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소속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위아 평택공장 내부와 대법원 등에서 집회를 열고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규탄하며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모습. /지회 제공
■ 시간 빌미로 하청노동자 옥죄는 '자회사 꼼수'


현대위아뿐이 아니다. 불법파견 소송에 연루된 굴지의 대기업들이 그룹 내 자회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중노동구조를 유지시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생계가 힘든 하청노동자들이 최종 확정판결을 받으려 해도 수년씩 걸리는 점을 빌미로 '회유'와 '압박' 목적으로 자회사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롯데케미칼은 2019년 하청노동자 400여명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하자, 지난해 6월 일부 사내하청업체들과 계약을 종료하고 하청노동자들을 자회사로 직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원고로 참여한 노동자 중 310여명이 이탈했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포스코는 2022년 하청노동자 55명의 불법파견 소송에서 11년 만에 최종 패소했고, 이후 당해만 1천여명에 달하는 하청노동자들이 추가로 포스코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자 포스코는 지난해 초 6개 자회사를 새로 설립할 계획을 발표,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을 우선채용하는 등 장기적으로 하청업체들을 통폐합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제철도 2011년 하청노동자 160여명의 불법파견 소송에서 13년 만인 지난 3월 최종 패소하고 직접고용명령을 받았는데, 소송과 동시에 2021년부터 올해까지 전국 4개 공장을 신규 자회사로 전환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자회사라 해도 처우가 정당하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자회사들은 대개 본사보다 낮은 임금 수준과 부제소합의 등 악조건을 전제로 채용하는 탓에 약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불법파견을 주장한 제빵사들에게 사회적 합의 이행까지 약속하고 자회사 '피비파트너즈'를 설립해 채용한 SPC의 경우, 합의 이행 여부를 두고 6년여 동안 노사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특정 노조를 와해하려는 시도가 경영진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혹으로 허영인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는 "법원에서 직접 고용 명령을 받았다면 당초 본사 정규직과 같은 업무와 같은 임금이 주어지는 것이 합당한데, 대법원 판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다보니 하청노동자들이 회유를 못 이기고 일부라도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절충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부제소합의 등을 전제로 한 채용의 위법성은 아직 법원의 판단을 받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향후 특정 사건을 계기로 자회사 설립의 적법성이 다퉈질 여지는 있다"고 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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