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지팡이가 돼서, 봉사의 기쁨 외면할 수 없었죠"
대학생 시절, 전문직들 재능기부 보며 몸소 겪은 '사회환원 참맛'
"알량한 권력에 취하지 말고 약자 도와라" 어머니의 당부 원동력
활동하며 들은 감사인사, 매너리즘 빠진 동료들에게 긍정적 영향
수원서부경찰서 형사과 실종팀 형사이자 경기남부경찰청 최초의 경찰관 자원봉사단 '가든버런티어(Garden Volunteer)'의 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원(33) 경사다.
김 경사는 지난해 10월 가든버런티어를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인 '정원(Garden)'에서 착안, '자원봉사자(Volunteer)'를 뜻하는 영단어를 합성해 가든버런티어로 정했다. 사계절 내내 울창한 정원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활동하겠다는 각오를 이름에 담았다.
현재는 수원 서·남·중부서와 안산상록서, 부천오정서 등에 근무하는 경기남부청 소속 경찰관 35명이 활동 중이다.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홀몸어르신,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도시락과 떡을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지난해부터 매달 한 차례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어르신 240여명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지난달에는 최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과 함께 취약계층을 위한 도시락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김 경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봉사 경찰관'이다. 본연의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 각종 봉사활동에 앞장선다.
2년 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당시 김 경사는 1천228시간 봉사활동의 기록을 인정받아 전준영(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 김나영 소령(3대 병역명문가 출신 간호장교), 성민정 소방장(14년간 매년 660여건 구급활동을 한 코로나 전담 구급대)과 함께 '국민영웅 4인'에 선정, 대표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 우연한 기회에 깨달은 '나눔의 기쁨'
지난 15일 수원서부서에서 만난 김 경사는 줄곧 겸손함을 유지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신중함이 묻어났다. 우연한 기회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그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참 좋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고, 스펙을 위해 시작한 봉사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라며 과거 봉사를 시작한 당시를 회상했다.
김 경사가 처음 봉사활동을 접한 건 2011년이었다. 대학생이 된 그는 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해 인도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처음엔 스펙을 쌓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인도에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가 꽤나 크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 경사는 각자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봉사를 택했고, 점차 봉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21살 때 부천시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봉사활동을 갔어요.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그곳에 의사, 약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쉬는 날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의료봉사를 하셨어요. 어찌 보면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추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점이 너무 멋있었어요"라고 전했다.
■ "약자 외면 말라" 어머니의 당부
봉사 이야기에 또렷해지는 눈과 확신에 찬 목소리에 그가 봉사활동에 나서는 동기와 원동력이 궁금했다. 단순히 봉사활동의 가치가 멋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다소 설명이 부족했다. 김 경사는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과거에 어머니께서 투병 중이실 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 옆에서 경찰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어요. 당시 어머니는 '네가 혹시 경찰이 되면 알량한 권력 가지고 까불지 말고 사회에서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고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당시 어머니의 당부는 제가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놓을 수 없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바쁜 경찰 업무 중에 시간을 내서 봉사활동에 나서고 봉사단까지 운영하는 게 지치거나 버겁지 않냐는 질문에 김 경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봉사의 행복을 많은 이들이 누리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단순히 봉사에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뒀다면, 지금은 봉사를 통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즐거움과 도움을 받은 분들이 감사해 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봉사의 기쁨을 주변에 알리고 그 기쁨을 깨달은 사람들이 다시 주변에 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가치를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치지 않고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답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 선한 영향력…'가든버런티어' 출범
김 경사는 봉사의 기쁨과 행복을 동료들도 경험하길 바라 왔다. 하지만 경찰 본연의 업무가 아닌 자원봉사에 몰두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도 깊었다.
그는 가든버런티어 창단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찰이 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속한 경찰 조직에서도 각자가 가진 재능들로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원봉사단을 만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경찰이 봉사활동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해보자는 다짐으로 총대를 메고 봉사단을 만들었어요.".
경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도 가든버런티어를 만드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그는 "경찰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면 항상 범인 검거 또는 경찰 개인의 비위 이렇게 두 가지만 나와요. 시민들이 경찰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데, 사회에 긍정적인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봉사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포부를 가지고 가든버런티어를 만들었지만, 자원봉사단 인원을 모으고 실제 봉사활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잖은 발품을 들여야했다.
김 경사는 "봉사단을 만들었는데 홍보 방법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A4용지 크기의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서 수원 지역에 있는 모든 지구대와 파출소에 방문해 포스터를 부착했어요. 또 내부 메신저를 이용해 수원 전역의 경찰관들에게 한 분 한 분 쪽지를 보냈어요. 그렇게 처음 모인 게 5명이었답니다"라고 밝혔다.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주위 동료들에게 동참을 권하고 점차 입소문이 퍼지며 회원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그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경찰관들은 오래 일을 하면 사람에 대해 지치는 순간이 있다"며 "근데 봉사를 통해 시민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감사 인사와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업무로 매너리즘에 빠진 경찰관들에게 큰 힘이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다.
현재 가든버런티어 회원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내고 있고 봉사단의 존재를 아는 주변 지인들도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지속적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재정적 부담은 여전한 고민이기도 하다.
그는 "감사하게도 경기도자원봉사센터의 도민사업에 저희 봉사단이 선정됐고 지원을 받게 돼 향후 몇 달은 봉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지원이 끝나는 오는 10월부터는 재정 공백기가 생겨요"라며 "이런 시기에 어떻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인데 어떻게든 해봐야죠"라고 웃어보였다.
■ "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김 경사는 가든버런티어를 통한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취약 계층에 대한 도시락 봉사뿐 아니라 다가올 겨울에는 수원 평동 취약가구에 연탄을 나눠줄 계획이다. 연탄 봉사는 가든버런티어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함께 참여하는 쪽으로 구상 중이다.
그는 "경기남부청 최초로 소속 경찰관들이 모여 자원봉사단을 만들었는데, 꼭 가든버런티어가 아니더라도 조직 내 일선 경찰서나 부서에서 주관하는 공식적인 봉사활동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이어 "봉사하는 게 어렵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는데, 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봉사가 어렵지 않다는 인식이 사회에 퍼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글/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사진/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김정원 경사는?
▲1993년생
▲수원 영생고등학교 졸업
▲중앙경찰학교 졸업(공채 287기)
▲2016년 경기남부청 수원서부서 형사과 근무
■주요 활동
▲2021~2022년 경기도청년봉사단 단장
▲2022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국민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