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색이 빛나는 은색으로 바뀌었다. 맏언니 윤지수(31·서울시청)를 필두로 ‘새로운 피’ 3명이 더해져 올림픽 2연패를 이뤄냈다. 피스트에서 내려온 여자 사브르 대표팀의 표정에서는 기쁨보다 더한 후련함이 엿보였다.
한국 펜싱 사브르 여자 대표팀은 지난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에 42-45로 아슬아슬하게 승기를 내줬지만, 지난 2020 도쿄 대회의 동메달을 뛰어넘은 성과를 냈다.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이기도 하다.
팀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경험자인 윤지수는 이날 준결승에서부터 전은혜(27·인천 중구청)에게 검을 넘겨주고 피스트 아래서 마음 졸이며 동생들을 지켜봤다.
경기를 마치고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윤지수는 “프랑스 선수들이랑 저는 오랫동안 경쟁을 해왔기에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수를 교체하면) 저희 선수를 파악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작전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다고 밝힌 윤지수는 “(후배들의 자리를) 제가 욕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도쿄 때 동메달을 땄었는데) 이번에 메달 색을 바꿨다. (펜싱의) 세대를 거슬러서 후배들과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8강전부터 활약하며 상대 팀과의 점수 차를 크게 벌려 팀에 든든한 역할을 한 전하영(22·서울시청)은 결승전 마지막 주자로 나선 데 부담이 있었다고 한다. 전하영은 “8강과 4강 경기가 다 좋았는데 제가 (결승에서) 마무리를 잘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며 “부담이 되는 자리지만 침착하려고 했다. 올가 카를란(우크라이나)이 베테랑이다 보니 많이 밀렸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준결승에서 깜짝 등장해 결승까지 숨은 역량을 뽐낸 전은혜는 벅찬 마음을 한껏 표현했다. 전은혜는 “언니(윤지수 선수)가 저를 믿고 ‘은혜야 네가 (나 대신) 들어갔으면 좋겠어’라고 얘기를 해줬는데 그게 너무 감사했다”며 “4년 뒤에는 금메달을 따려고 이번에 은메달을 얻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며 웃었다.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세계랭킹 1위이던 일본의 에무라 미사키를 무찔렀던 최세빈(23·전남도청)은 준결승에서 펜싱 강국 프랑스를 상대로 톡톡히 활약했다. 최세빈은 “오늘 다 같이 한국 여자 사브르의 역사를 쓸 수 있었다”며 대표팀 멤버들과 단체로 맞춘 태극기 모양 귀걸이를 보여줬다. 한국 여자 대표팀은 이날 시상식에서 귀걸이를 뽐내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그렇게 동메달에서 은메달로, 올림픽 무대에서 한 계단을 훌쩍 뛰어오른 한국 펜싱 사브르 여자 대표팀은 이날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윤지수는 “이제 후배들이 다음 올림픽 때 금메달을 거둘 수 있도록 선배로서 도와주고 싶다. 후배들이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 친구들은 이제 앞으로 가야 한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