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초 재중동포 아이들 107장 엄선
제약 많던 시기 작품, 갈망·희열 고스란히
국경 넘어 역사 더듬기… 추억이자 자료

■ 간도사진관 시리즈 3 '우리는 나라의 왕'┃류은규·도다 이쿠코 지음. 토향 펴냄. 160쪽. 2만8천원

간도사진관
사진가 류은규와 작가·번역가 도다 이쿠코 부부가 이어가고 있는 간도지역 재중동포 생활사 사진 아카이브 '간도사진관'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우리는 나라의 왕이다'가 출간됐다.

이번 간도사진관의 주제는 '아이들'이다. 주로 1980년대 초반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사진가의 필름을 토대로 재중동포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107장을 수록했다.

사진 속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을 보노라면, 국내 대중매체 등을 통해 우리의 이미지에 각인된 '간도'는 어떤 공간이고, 실제로는 어떤 공간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1980년대조차 한국에선 사라졌던 색동저고리를 학교 등 일상에서 즐겨 입은 모습의 '디아스포라적'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책은 '소싯적의 일(유치원생)' '학교로 가자(초등학생)' '미래의 희망(야외 행사)' '붉게 타오르리라(무대 공연)' '아련한 추억(옛 사진)'과 류은규 작가가 1993년부터 2000년대 초반에 찍은 작품을 모은 '빛나는 눈망울'까지 모두 6부로 구성됐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 사진 촬영에 대한 제약이 많았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에서 사진가들의 갈망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저자들은 설명했다.

류은규 작가가 쓴 머리말을 보면, 중국 현대사진의 흐름은 문화대혁명 이후에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 이전의 사진은 정치선전용 도구의 역할만 부여됐을 뿐 광고나 순수사진 촬영·배포는 사실상 금지돼 왔다.

책 1·2·3·4부의 대부분 사진은 1980년대 초반 옌볜조선족자치주 용정의 현지 사진가들이 촬영한 필름에서 나왔다. 어린이를 주제로 한 사진만 2천여 장이 넘었고, 이 가운데 100여 장을 추렸다. 중국 동북 변방 소도시에서 나온 사진들이라고 하기엔 조명 효과, 구도에서 엿보이는 뛰어난 기술력, 생활에 밀착한 독창적 소재 선택 등 예술성이 뛰어나 중국 사진가들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도다 이쿠코 작가는 책 말미에서 "'좋은 사진'의 기준은 그 사회의 사상이나 체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며 "편집자가 고른 사진이 촬영 당시엔 '별로 좋지 않은 사진'이었을지 몰라도, 체제가 다르고 시각이 다른 우리 눈으로 볼 때 그런 사진이 '훌륭한 사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인천 관동갤러리를 운영하는 도다 이쿠코·류은규 부부는 5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며 '간도사진관' 시리즈를 계속 펴낼 계획이다. 국경을 넘어 역사를 더듬어가는 작업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40년 전 디아스포라의 일상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잊혀가는 생활사를 기록한 중요한 자료들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