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꽉 찬' 당신… 다 못 꺼낼 그리움 시(詩)가 되다


민중미술 1세대 화가 강광 선생 아내
작고한 남편 그리며 쓴 시 57편 엮어
동반자 부재 또다른 예술세계 이끌어

사람 톱 박서혜 시인
박서혜 시인이 지난 12일 오전 인천 강화군 화도면 자택 내 고(故) 강광 선생 작업실에서 최근 낸 시집 '아름다운 터'를 들고, 강광 선생이 즐겨 앉던 의자에 앉아있다. 2024.8.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최근 일곱 번째 시집 '아름다운 터'를 낸 박서혜(78) 시인은 민중미술 1세대 화가 강광(1940~2022) 선생의 아내다.

198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40년 넘게 시를 써 온 노시인을 '누구의 아내'라고 부르는 건 큰 실례가 아닐 수 없지만, 박 시인의 이번 시집에 대해선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2년 전 작고한 강광 선생을 그리며 쓴 시 57편을 책으로 엮었다.

지난 12일 오전 마니산 꼭대기 참성단이 올려다보이는 인천 강화군 화도면 자택에서 만난 박 시인은 "할아버지(강광 선생)가 돌아가시고 한참 동안 시를 못 쓰다가 조금 슬픈 날이 있으면 하나씩 쓴 것들을 모았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강광 선생의 작업실을 생전 모습 그대로 남겨뒀다. 붓 하나, 바닥에 떨어진 물감 자국 하나 치우지 않았다. 박 시인과 강광 선생은 2003년 이곳에 집을 지어 새 터를 잡았다. 박 시인은 줄곧 강화의 정취에 대해 시를 써왔다. 시인은 이전 여섯 권의 시집을 내면서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시에 담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번 시집은 제목부터 강광 선생이 강화 자택을 부르던 '아름다운 터'다.

박 시인은 "영감(강광 선생)이 없어 갖고서, 이젠 내 가슴 속이 (강광 선생으로) 꽉 차 버렸다"며 "슬펐던 일과 기뻤던 일, 그런 것들이 다 들어있는데, 이걸 하나하나 꺼내도 다 못 꺼낼 것 같다"고 했다. 그 심정을 담은 시가 '꽉 찬'이다.

'목에 꽉 찬 그 무엇이 / 올라오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다 / 내가 그의 곁으로 가는 날까지 / 나는 / 꽉 찬 그 무엇의 힘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시집 수록작 '꽉 찬' 중에서)

강광 선생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제주도에서 중·고교 교사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1985년 인천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며 인천과 인연을 맺었고 인천대 시립화 과정에 이바지했다. 인하대 이가림 교수와 인천민예총을 설립했으며, 인천문화재단 제3대 대표이사도 역임했다.

박 시인이 강광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69년 제주도에서 중학교 불어 교사로 일할 때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인생과 예술 세계 동반자로 산 남편의 부재가 또 다른 예술 세계로 시인을 이끌었다. 시인이 추천한 이번 시집의 주제를 관통하는 또 다른 시는 '삶이라는 것이'다.

'울울한 키 큰 나무에 / 새소리 뭉쳐 / 한 덩어리의 빛으로 / 주위를 밝히고 있다 / 멀리서 바라볼 땐 / 그 빛, / 눈부시게 환했는데 / 그 나무 곁을 지나가는 순간, / 그 소리의 빛이 / 순간 사라지니' (시집 수록작 '삶이라는 것이' 중에서)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