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프롬 인천·(33)] 스타가 꿈이었던 배우 김가희입니다
초교 1학년때 서운동 이사… 작동초 학예회 '스타'로 끼 발산
수학 소질, 과목 전교 1등… 집안 어려워져 공부 흥미 잃어
극단 '감동' 입단, 수봉문화회관서 첫 무대 카타르시스
수학강사로 생계… 첫 주연작 '박화영' 연기로 큰 주목
"에너지 많고 과거·현재 모습 다채…" 인천 예술인 자부심
"아임프롬인천에 등장한 첫 배우가 됐다"라며 환하게 웃던 김가희(32).
그의 대표작 영화 '박화영'(2018)의 거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평소 출연 작품의 이미지 때문에 '다크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는다는 그는 수줍음이 많지만 명랑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하는 청춘이었다.
연기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지함으로 눈이 반짝거리던 그에게서 '인천 예술인'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인천 중구 애관극장에서 지난 13일 배우 김가희를 만났다.
■ 인천사람 김가희, 월미도에서 '박화영' 연기
애관극장에서 월미도까지는 차로 10분 정도 거리다. 영화 '박화영'에서 실제 지명이 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다. 인천 중구 월미도에서 가출팸의 엄마 '박화영'은 '은미정'(강민아 분)과 평범한 또래 아이들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출팸의 리더 격인 '영재'(이재균 분)와 친구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기 전, 폭풍전야를 앞둔 주인공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관객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김가희는 구타 장면 촬영을 이렇게 회상했다.
"24시간 동안 진짜 맞아야 했어요. 맞는 연기를 하면서도 '이렇게 연기를 하다가 죽으면 진짜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이 연기를 해내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당시 김가희는 "박화영처럼 살을 좀 찌웠으면 좋겠다"는 이환 감독의 요청에 따라 20㎏가량 증량했다. 5㎏정도 찌우면 좋겠다는 감독의 요청 이상으로 체중을 늘렸다. 이는 박화영이 크게 성공한 이후 영화의 이름만큼 김가희에게 따라붙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그가 키운 몸집과 외형보다는 화영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도 그에게서 꾸며지지 않은 날것의 매력을 봤다.
처음부터 김가희가 영화를 이끄는 주연을 맡아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연기 활동이 잘 풀리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저에게 연기는 늘 '연인'의 존재 같아요. 이별 후 잊고 싶어도 쉽게 잊을 수 없는 연인처럼 연기에 대한 미련이 늘 남았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연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운명처럼 연기의 길로 향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 '스타'가 되고 싶었던 소녀
김가희는 1992년 서울 출생이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가족들과 함께 인천 계양구 서운동으로 이사했다. 초등학생 김가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녀였다.
인천작동초에 다닐 때 매년 열리는 학예회는 김가희가 꿈을 펼치는 무대였다. 춤·연기·개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 올라 청중의 환호를 이끌었다. 5~6학년 때는 학급 임원으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장래희망을 '스타'라고 적었다.
서운중 재학 시절에는 수학과 사랑에 빠졌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삼각비에 푹 빠져 지냈다. 수학 과목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한 적도 있다. 이 시기는 성인이 된 후에 그가 수학강사로 일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공부에 흥미와 소질을 보인 중학교 시절을 보낸 김가희는 인천 부평구 명신여고에 진학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둬야 했다. 공부에 대한 흥미가 점차 사라졌다. 이렇게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고2가 끝날 때쯤 오랜 꿈이었던 연기가 하고 싶어 무작정 인터넷에 '배우되는 법'을 검색했다. '연기로 대학을 가고 싶다'고 선언했지만 어머니는 반대했다. 평소 어머니 말을 잘 듣던 착한 딸이었지만, 이번엔 굽힐 수 없었다.
2010년 고3이 된 김가희는 부천 상동에 있던 연기학원을 다니며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학원에 다닌 지 3개월 뒤 전국 청소년 독백대회에 나가 본선에 올랐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입시 준비는 쉽지 않았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그는 "입시 학원에서 정해준 연기와 특기를 준비했지만 경쟁적인 입시 환경에 주눅이 많이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 미추홀구 수봉문화회관서 만난 첫 관객들
겨울보다 시린 여름을 보내던 김가희에게 '새로 만든 극단에서 활동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학원 선생님의 제의가 들어왔다.
극단 '감동'에 들어가 연극을 처음 시작했다. 2011년 가을 미추홀구 수봉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제15회 인천청소년연극제 개막 공연 무대에 올랐다. 연극 배우들의 뒷이야기를 담은 '처녀비행'이었다. 입시를 위한 독백 연기만 하던 그는 관객의 박수 소리를 듣자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고 했다.
2012년 독립영화, 단편영화 등 제작을 위해 배우와 감독을 연결해주는 온라인페이지 '필름메이커스'를 통해 데뷔작 '점프샷'에 캐스팅됐다. 점프샷은 친하지 않은 중학생 3명이 방학 숙제로 점프하는 사진을 찍는 내용으로 인천 송도국제도시 센트럴파크에서 촬영했다.
"독립영화에서 원하는 이미지라면서 스물한 살에 중학생 역할을 맡게 됐어요. 독립영화계에서는 동안으로 통한답니다.(웃음) 이 작품으로 영상 연기의 맛을 알게 됐어요."
입시 준비도 틈틈이 했지만 2013년 스물두 살에 대학에 한번 더 떨어졌다. 독립영화로 생계를 이어가긴 힘들었다.
어머니는 딸이 많이 못벌더라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했다. 계양구에 있던 중학교 수학학원에 전임강사로 지원했다. "관련 경력이 하나도 없으니 시강을 해보라"는 학원 원장의 요청에 김가희는 수학학원 선생님 역할에 몰입을 해 자신만의 오디션을 펼쳤다. 떠드는 학생에게 주의를 주는 애드립은 덤이었다.
2015년에는 '박화영'의 프리퀄 영화인 이환 감독의 단편영화 '집'을 찍었지만, 독립영화 촬영은 직업이 아닌 취미 활동처럼 느껴졌다. '이젠 정말 연기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혜화역 인근 극장에서 상업극을 공연하는 극단 '해오름'에 합류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 길로 수학학원을 그만 둔 김가희는 연극에서 '멀티' 역할을 맡으며 그동안 쌓인 연기에 대한 설움을 풀었다고 했다.
"집에서 혜화역까지 왕복 다섯시간이 걸렸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연극에서 '멀티' 역할은 경찰도 됐다가 주인공의 여자친구도 됐다가 하며 여러 역할을 맡는 연극적 장치입니다. 극의 활력을 더하고 재미를 주는 연극에서는 꼭 필요한 역할입니다. 당시에 교통비 정도만 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전 제품들에 빨간 딱지들이 붙어있을 정도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힘든 현실을 연기로 치유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 독립영화 촬영, 극단의 지방공연, 단기 알바를 반복하는 삶을 보냈다. 인천 동암역에서 박촌역까지 걸어서 인천예술회관 공연포스터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고기뷔페와 떡볶이집에서 서빙 알바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고 특징을 잘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평범한 20대와는 다른 패턴이었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 좋았다고 했다.
■ 배우 김가희가 걸어가는 길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첫 주연작 '박화영'이 초청받으면서 세상에 박화영 이름으로 얼굴이 알려졌다. 예전엔 없던 스포트라이트가 향했다. 언론 인터뷰도 이어졌다.
김가희는 묵묵히 역할을 가리지 않고 연기를 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선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주는 딸 '빈이' 역할로, 마스크걸에서는 주인공 '모미'의 직장동료 영업팀 대리 '유상순', 영화 '세자매'에서는 "XX, 어른들이 왜 사과를 못하는데"라는 명대사를 날리는 '보미'로 열연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연인',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해 노래 실력을 뽐냈다.
그는 인천 예술인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드라마, 영화 현장에서 자기 주장을 보이거나 발랄한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 '역시 인천'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에너지가 많고 다양한 모습을 가진 인천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해요. 인천은 이곳 애관극장처럼 레트로한 모습, 옛날의 감성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한 동인천의 모습과 데뷔작을 찍은 도심 송도까지 갖추고 있어 영화를 찍기에도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2021년 인천 영상위원회에서 진행한 '나도 감독이 될 수 있다'를 모토로 하는 '슈퍼에이트' 워크샵에 참여했다. 김가희를 포함해 선발된 8명이 영화 '인천스텔라' 백승기 감독의 멘토링을 받아 수개월동안 영화 제작을 배웠다.
시나리오 제작, 영상 촬영까지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김가희는 '코로나'를 주제로 극본을 썼다.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얻은 무명 배우가 코로나19로 일이 꼬이는 자전적인 소재로 쓴 습작이었다. 동료 배우들이 연기했고, 미림극장에서 열린 상영회에서 공개됐다.
최근 소속사와 계약이 마무리된 김가희는 새로운 소속사를 찾고 있다. 재정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김가희는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역할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단역을 특별출연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독보적인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간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까운 작품을 주로 해온터라 판타지 장르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같은 멜로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