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처럼 쏟아지던 폐기물… '결정적 순간' 외면않고 포착


주휴수당 공론화·남동산단 청년노동자 실태조사 등 위원장 활동 '각별'
안창규 감독이 빌려준 카메라로 또다시 도약… 인천문화재단 VJ 뽑혀
인천녹색연합 회원으로 환경문제 주목… 수도권매립지의 현실 담아


[인터뷰…공감]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받은 임기웅 감독
지난달 29일 인천 동구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만난 임기웅 감독. 2024.8.29 /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평범한 시민·노동자 만날 때마다 '발돋움'의 연속"

올해 6월에 열린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은 인천에서 독립 PD로 활동 중인 임기웅(44)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가 10년 넘게 이어온 '지역사회 활동'의 어느 정점을 찍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임기웅 감독을 잘 모르는 이들이 앞선 한 줄의 수상 이력만 놓고 그가 누구인지 생각해본다면, 그 추측은 상당 부분 틀릴 것이다. 그는 정식 코스를 밟아 영상을 배운 다큐 감독이 아니다. 인천문화재단 우리미술관 레지던시 입주 작가 경력이 있으나, 미술대학 출신도 아니다.

임 감독은 그렇게 '아카데믹한' 과정을 거쳐 창작자가 되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평범한 시민·노동자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날 때마다 성장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임 감독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장소 중 하나인 인천 동구 배다리의 독립서점 '나비날다책방'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임 감독은 "순간순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활동하면서 인생이 '점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선 인천 서구 수도권쓰레기매립지를 중심으로 폐기물 문제를 다룬 다큐 영화 '문명의 끝에서'로 아시아 최대 규모 환경영화제인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야기부터 들어봤다.

"정말 오래간만에 연락을 해준 분들도 있어 너무 신기했습니다. 인천뿐 아니라 광명과 전남 순천, 충남 보령, 서울 등 전국에서 초청받아 상영회를 열었고요. 좁게 보면 인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관심을 갖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지역마다 소각장, 매립지, 재개발 등 이슈가 달라 감상평도 무척 다르더군요. 영화를 교과서처럼 바라봐준 관객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터뷰…공감]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받은 임기웅 감독
지난달 29일 인천 동구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만난 임기웅 감독. 2024.8.29 /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임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나 곧바로 인천으로 이주했다.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 후문 쪽에 있는 연립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른바 '중동 건설붐'으로 해외에서 돈을 모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었다고 한다. 놀이동산이 있던 수봉산에서 주로 논 '수봉산 키즈'다. 임 감독은 현재도 수봉산 쪽에 조그마한 빌라를 구해 살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고3 때 전자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가며 공장 노동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학창 시절에는 아예 공부에서 손을 놓기도 했고요. IMF 사태(외환위기)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난생처음 집에 쌀이 떨어져서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빠진 경험도 했어요. 정식 취업은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던 가구 공장이었어요. 공장 자리는 지금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습니다. 가구 공장에서 톱질이나 망치질을 배웠는데, 작가 활동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20대 중반까지 노동자 생활을 한 임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서울 충무로에서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에 잠시 다녔다. 고시원 총무로 일하면서 시나리오 수업을 들었다. 임 감독 스스로 "침잠한 시기"였다고 느꼈다. 임 감독이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된 서른 즈음에, 그가 말한 '점프'(도약)를 경험하게 한 이들을 만난다.

"인천청년유니온은 30살 때 청년을 위한 조직을 만든다는 기사를 읽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제가 창립 멤버인데, 30명 정도 모였더라고요.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서울에서 녹색당 전신인 '초록당 사람들' 모임에 참여했고, 거기서 현 나비날다책방 주인인 청산별곡님을 만났고요. 청산별곡님은 배다리에서 살아보라고 저에게 권유한 분입니다. 제가 지역에서 활동하게 된 시작점이죠. 2008년 촛불집회 때 만난 인천연대(현 인천평화복지연대) 형님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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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결성된 청년유니온은 청년 세대가 구성한 한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임 감독은 인천청년유니온에서 처음으로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점포를 보유한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대상으로 '주휴수당'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해당 프랜차이즈로부터 퇴직자들의 주휴수당까지 받을 수 있었다.

임 감독은 인천청년유니온 위원장을 맡아 남동국가산업단지 청년 노동자 실태 조사도 주도했다. 지금은 만 39세가 넘었으므로 규약상 청년유니온 조합원은 아니지만, 당시 활동이 임 감독에게 각별하다.

임 감독은 배다리에 거주하면서 손재주를 발휘해 동네 풍경을 미니어처로 만들기도 했다. 2018년 상반기 인천 동구 만석동 우리미술관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창작문화공간 금창'의 입주작가로 선정돼 본격적으로 배다리 헌책방 7곳 등을 미니어처로 재현했다. 미술 작가 출신이 아니어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었다. 그의 미니어처는 지금도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에 전시되어 있다.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만난 안창규 다큐멘터리 감독이 한번 작업을 해보라며 카메라를 빌려줬어요.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였던 셈이죠. 함께 인천환경영화제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인천문화재단 VJ로 뽑혀 한 달에 한 번씩 작품을 냈습니다. 이 시기 저의 첫 단편 다큐인 '골목놀이'와 '고잔갯벌'을 제작했고, 이 작품이 KBS '열린채널'에서 소개됐습니다."

임 감독이 배다리 미니어처를 만들면서 인터뷰한 헌책방 주인들 이야기를 소재로 다큐 '숨은 지혜 찾기'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2020~2021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 인천독립영화제, 도시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 독립 다큐 감독으로 활동하고자 마음먹은 지 1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자신감이 떨어질 때쯤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인터뷰…공감]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받은 임기웅 감독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 수상작 '문명의 끝에서'의 한 장면. /임기웅 감독 제공

임 감독의 대표작이 된 '문명의 끝에서'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이 주창한 '결정적인 순간'을 임 감독이 포착한 데서 시작했다. 날짜도 잊지 않았다. 2020년 10월12일. 그날 임 감독은 폭포수같이 폐기물이 쏟아지는 재활용 선별장의 충격적 광경을 보고 '문명의 끝에서'를 기획했다.

"인천영상위원회와 한국영상위원회에서 기획·개발비를, 뉴스타파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 '문명의 끝에서'를 완성했습니다. 길거리에서 폐지 등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들, 주로 노인층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재활용 선별장, 해양쓰레기로 고통받는 어민들, 그 문명이 쏟아내는 폐기물들의 종착지인 수도권매립지까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번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출품한 작품은 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건설폐기물 문제를 추가로 다뤘습니다."

임 감독이 환경문제에 주목한 건 그가 환경운동단체인 인천녹색연합의 '열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부르면 간다"는 인천녹색연합의 '일꾼'을 자처하며, 특히 인천 섬 곳곳을 누볐다.

임 감독은 후속작으로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다룰 계획이다. 2029년 개항을 목표로 백령도 공항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백령도에 공항이 생기면 주민들의 삶도, 천혜의 자연환경도 크게 달라질 것 같다는 게 임 감독 생각이다.

그 전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문명의 끝에서'를 만날 수도 있겠다. 임 감독은 우리나라 건축물 건설의 시작점인 '해사(바다 모래) 채취'의 현장과 실태를 '문명의 끝에서'의 3부로 덧붙이고 싶다고 했다.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미니어처가 아닌 구도심을 촬영한 사진과 그 사진을 바탕으로 한 트레이싱 작업이다. 임 감독이 20대 때는 작가도, 다큐 감독도 상상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임 감독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펼쳐 보이고 싶은 작업이 많다.

[인터뷰…공감]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받은 임기웅 감독
지난달 29일 인천 동구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만난 임기웅 감독. 2024.8.29 /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제가 생각하는 다큐 작업은 '결정적인 순간' 같아요. 그 순간에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버티고 연구해야 하는 게 다큐 감독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기 삶을 살면서,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간을 만나기 위해 백령도 또한 자주 찾아야 하겠죠. (웃음)"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임기웅 감독은?

1980년 서울 출생으로, 인천에서 성장했다. 주요 작품은 단편 다큐 '골목놀이'(2012), '고잔갯벌'(2012), 단편 영화 '여름방학'(2014), '강아지를 부탁해'(2016), 다큐 '숨은 지혜 찾기'(2020), '문명의 끝에서'(2023) 등이 있다.

2018년 우리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 '창작문화공간 금창' 입주작가로 선정돼 '동구안 숨바꼭질' 등 전시를 열었다.

2023년 2분기 이달의 독립PD상(2023), 제17회 한국독립PD협회 우수상,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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