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프롬 인천·(34)] 운동권·회계사… 지금은 'AI 인큐베이터' 유태준입니다


중구 용동 출생 "일본식 건물 많았어…"
사라진 '처녀 목욕탕' 부모님과 단골
한창땐 '삼미 야구단' 선수들도 애용
초교땐 육상부 활동, 어머니가 말려
함께 뛴 선수가 '육상계 대모' 이영숙

'연합고사' 인천 2등… 선인고로 진학
대학서 미학 전공… 공장서 노동운동
공산주의 몰락후… 회계사 도전·합격
"차변과 대변은 항상 일치 원리 매료"

삼일회계법인서 20년 근무하고 퇴직
빅데이터 툴·AI 시스템 기업체 꾸려
인공지능 구현한 사무실, 미래 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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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업 '마음AI'를 이끌고 있는 인천 출신 유태준 대표.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임프롬인천'의 이번 손님은 인공지능(AI) 기업 마음AI를 이끌고 있는 인천 신흥동 출신 유태준 대표이사다.

유 대표를 '아임프롬인천'에 초대한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겠다. 우선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수많은 선인고 동문들의 요청과 추천이 있었다. 또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AI 기업의 리더를 직접 만나보고 싶은 개인적인 호기심도 크게 작용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음AI 홈페이지에 가면 '마음챗봇'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챗봇이 과연 회사 대표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지 궁금해 직접 질문을 던져봤다.

▶질문(나) : "유태준 '마음AI' 대표이사에 대해 설명해줘."

▶답변(마음챗봇) : "유태준 마음AI 대표는 마음에이아이의 설립자이자 CEO입니다. 마음에이아이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의료, 교육,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설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중략)…유태준 대표는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기술의 윤리적 사용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듣고 전하는 이야기만큼은 생생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대표와 세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다. 이번 '아임프롬인천'은 챗봇이 결코 전하지 못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최근 판교IT센터에 위치한 마음AI 사옥으로 향했다.

사옥은 규모가 컸는데 판교IT센터 1개층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트인 공간에 마련된 미술작품 갤러리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어도 좋을 직원 휴게공간, AI로봇 탕비실 등도 인상적이었다. 퍽 넓은 공간을 마음AI가 현재 구현하고 있는 모든 서비스를 보여주는 용도로 할애하고 있었다.

유 대표는 기자를 직접 데리고 다니며 AI가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시연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금세 로봇이 커피를 내리고 AI로봇이 갤러리에서 도슨트 역할을 하며 콜센터 상담원처럼 전화 상담을 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마치 AI가 널리 보급된 미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성장기를 보낸 이가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첨단 인공지능 기업의 수장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1965년 중구 용동에서 출생한 유 대표는 성장기 대부분을 인천 신흥동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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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만 남은 처녀목욕탕.

"일본식 건물이 많았죠. 비슷한 또래들과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건 집 앞에 바로 보이던 목욕탕 굴뚝입니다. '처녀목욕탕'은 유명한 동네의 명물이었는데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아요."

꼭 가보지 않아도 인천 사람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는 목욕탕 이름이다. 유 대표가 동네 명물이라고 소개한 처녀목욕탕은 그 흔적이 비교적 고스란히 남아있다. 연기가 피어오르지는 않지만 처녀목욕탕이라고 쓰인 하얀색 글씨가 선명한 빨간 벽돌 굴뚝은 지금도 홀로 남아 수십 년 전과 똑같이 동네를 지켜보고 있다.

운이 좋게도 최근 무작정 찾아간 신흥동에서 만난 송상일·유귀덕씨 부부에게서 처녀목욕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송상일씨는 1961년 목욕탕을 인수해 2000년대 초반까지 운영한 송호석(1925~2002)·공대열(1927~2000)씨 부부의 아들이다. 송상일씨 내외는 현재 옛 목욕탕 건물 2층에 거주하고 있다.

처녀목욕탕은 지역 프로야구 구단인 삼미슈퍼스타즈 선수들이 단체로 이용했을 정도로 지역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송씨는 "야구 경기가 끝나면 저녁 늦게 야구팀이 찾아오곤 했다. 야구팀이 인원이 많아 남탕으로는 비좁아 여탕을 없애고 남자 손님만 받아야 했다"고 했다.

삼미슈퍼스타즈 선수들은 처녀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치면 길 건너편 고깃집 신생갈비에서 갈비탕을 먹고 떠났다고 한다. 삼미슈퍼스타즈가 청보핀토스로 구단 명칭이 바뀐 뒤로는 선수들이 이곳 목욕탕을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목욕탕집 며느리 유귀덕씨는 어린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목욕탕을 찾았던 이웃집 아들 유 대표를 기억하고 있었다. 유씨는 "부자가 목욕탕을 자주 찾았다"면서 "(유 대표 부친이) 옥상에 빨래를 직접 널던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매우 가정적인 아버지였다"고 기억했다.

유 대표는 전라도 출신 1935년 출생 유성원씨와 같은 전라도 출신 이봉순씨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20여년 전 작고했고, 어머님은 지금도 생존해 계신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인천에서 만나 가정을 꾸렸다.

유 대표의 부친이 오래도록 재직한 대한통운은 인천과의 인연이 남다른 기업이다. 대한통운 80년사를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물류기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대한통운의 역사는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대한통운의 전신은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한국미창)이며, 한국미창은 일제강점기 설립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조선미창)가 해방 이후 이름을 바꾼 회사다.

유 대표의 부친은 해외 근무가 잦았다.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에서 일했는데, 이는 대한통운의 해외 진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966년 대한통운은 경남기업과 함께 '대한통운경남기업'을 설립하고 베트남의 군수물자 하역사업에 진출했다. 197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주택청이 발주한 카디마항의 항만 하역 및 관리 운영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1983년에는 동아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했다.

아임프롬인천 유태준/유태준 제공
선인고 1학년 입학식에서 입학선서를 하고 있는 유태준 대표. /유태준 대표 제공

유 대표의 어릴 적 가정 형편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월세방을 옮겨 다녔다. 아버님이 중동에서 일해 보내온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유 대표가 중학생이 될 무렵 어머님은 신흥동에 2층으로 아주 튼튼하게 집을 지으셨다. 지금도 그 집에서 유 대표 모친이 거주하고 있다.

유 대표는 "사글세를 전전하다 우리 집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여동생 다섯 식구의 꿈 같은 보금자리였다"고 했다.

유 대표는 어린 시절 운동을 좋아했고 소질도 있었다. 신흥초 재학시절 육상부로도 활동했다. 체육 시간에 뛰는 모습을 지켜보던 코치가 그를 육상부로 발탁했다. 높이뛰기 종목 학교 대표로 지역 대회에 출전했지만, 아쉽게도 상을 받지 못했다.

유 대표의 모친은 나중에 학교를 찾아가 "태준이는 운동이 아닌 공부를 해야 한다"며 육상부를 그만두게 했다. 당시 같은 육상부로 활동했던 친구 가운데에는 이영숙이라는 친구가 유명했다고 그는 전했다.

유 대표의 동창인 이영숙은 우리나라에서 '육상 대모'로 불린다.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여자 100m 종목의 한국신기록을 7차례나 갈아치울 정도로 한국 육상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1994년 6월 제48회 전국육상선수권 대회 여자 100m 결선과 같은 해 9월 후쿠오카 국제슈퍼육상경기대회에서 세운 11초49라는 한국 기록은 30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고 있다.

유 대표는 공부를 참 잘했다. 중학생이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연합고사'에서 인천 2등을 차지했을 정도다. '뺑뺑이'로 선인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인고가 '깡패학교'로 유명했어요. 어머니는 선인고 배정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우셨어요. 어머니의 표현으로는 두루마리 휴지 두 통을 쓰도록 계속 우셨다고 해요."

아임프롬인천 유태준/유태준 제공
유태준 대표의 대헌중 3학년 졸업식 모습. /유태준 대표 제공

유태준은 1984년 서울대 철학계열로 진학했고, 2학년에 미학과로 전공을 택했다. 그는 "미학과에 특별한 애정이나 열정은 없었다"고 했다.

민주화 요구로 학생운동이 격렬하던 시대였다. 칸트·헤겔 등 철학 서적 대신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운동권 서클' 활동이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선배에게 이끌려 1년간 공장에 취직해 조합활동과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다. '후지카 곤로'로 유명한 후지카 인천공장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소련이 붕괴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도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활동하던 정치조직도 모두 검거돼 와해됐다. "현장에서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생각과 3년의 시간을 어떻게 되돌려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고시'였어요."

사법시험,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시험 세 가지를 두고 고민하다 공인회계사 시험이 적성에 딱 맞아 보였다. "철학책과 달리 너무나 재미가 있었어요. 난생 처음 열어본 회계원리 책의 맨 앞부분의 '차변과 대변은 항상 정확히 일치한다'는 대차평균의 원리에 매료됐습니다."

남들보다 뒤늦게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아버님도 퇴직 이후 벌이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집안에 아픈 사람도 생겼다. 하루 20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었다.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후에 우리나라 최고로 꼽히는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다. 삼일의 서태식 회장 지시에 따라 8명으로 구성된 컨설팅본부의 창단 멤버가 됐다. 당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전사적자원관리(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SKC, CJ제일제당, 대우, 삼성화재 등 다양한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 혁신과 ERP 시스템 구축 컨설팅을 직접 진행했다. ERP에 쌓인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20년을 다닌 삼일을 퇴직하고 빅데이터 툴을 개발하는 '마인즈랩'을 세웠다. 마인즈랩은 인공지능 영역으로 확장했다. 마인즈랩은 사명을 마음AI로 바꿨다. 현재 회사인 마음 AI는 대기업, 공공기관, 중소기업에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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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대표는 고향 인천이 자신의 '뿌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천이요? 더 큰 세상을 만나게 해준 고맙기 짝이 없는 내 고향 인천은 유태준의 뿌리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났고 유아기 소년기를 신흥동 골목에서 지냈고, 초중고를 모두 인천에서 다닌 뼛속까지 인천 사람이죠. 저의 유년기, 청소년기 자아를 만들어준 도시죠."

신도심과 구도심 격차가 심각한 고향 인천을 볼 때마다 그는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첨단산업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인천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했던 도시입니다. 이러한 도시 기반과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한 다양한 디바이스들, 예컨대 모바일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등을 생산해내는 첨단도시로 변모하면 좋겠습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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