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 Docs)가 독일의 건축다큐멘터리 거장 ‘하인츠 에미히홀츠 작가전’을 개최한다. 독보적인 개성과 스타일을 지닌 다큐멘터리 작가를 조명하는 작가전은 다큐멘터리의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며 예술과 전문성에 대해 제시하는 기획이다.
“영화 속에서 이미지들을 쌓아 올려 시간 속에 상상의 건축물을 만든다”고 말한 작가의 필모그래피는 조립하듯 만들어졌다. 공간에서 느낀 주관적 인상을 이미지와 시간으로 나타내는 에미히홀츠는 “건축 재료는 특정한 시선이며, 이를 고정된 이미지로 옮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축을 통해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다루는 동시에 한편으론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내는 매체로 사용한다.
DMZ Docs는 에미히홀츠의 초기작부터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까지 고르게 선정하면서, 작가의 필모그래피 구축 방식을 알 수 있도록 장·단편 다큐멘터리 14편을 선정했다. 회고전 ‘자서전으로서의 필모그래피’에는 그의 초기 경향을 대표하는 ‘애로우플레인’을 시작으로 작가의 개성을 대표하는 연작 시리즈 ‘자서전으로서의 건축’, ‘스트리트스케이프’에서 선별한 작품과 이를 넓게 포괄하는 ‘사진과 초월’ 시리즈를 상영한다. 특히 신작 장편영화 ‘더 수트’는 전 세계 최초(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2017년 작품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는 에미히홀츠 자신의 심리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대본을 만들어 이를 배우들이 연기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심리분석가인 젊은 남자와 영화감독인 나이 든 남자가 영화 내내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거리를 거닐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전쟁의 폐허와 트라우마에 둘러싸여 자라온 어린 시절에서부터 글쓰기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도시의 건축물 등은 에미히홀츠의 방대한 작품 세계의 핵심을 주마등처럼 펼쳐낸다.
2014년 작품 ‘활주로’는 전장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가능성을 없애는 폭탄의 비행시간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다. 베를린에서 출발해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 남미를 경유하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모은 건축물들을 파괴적인 근대사의 은유로 만든 이 작품은 인류의 폭력과 전쟁의 흔적이 남은 건축으로 역사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2003년 작품 ‘사막의 가프’는 미국 건축가 브루스 가프의 건축 세계를 조망한다. 그가 설계한 62가지 건축물의 영화적 카탈로그라고 부를 수 있을 이 작품에는 작은 오두막부터 거대한 박물관에 이르는 다양한 건물의 안팎이 담겨 있다. 에미히홀츠는 2002년 40여 일에 걸쳐 미국 남부 오클라호마를 포함한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가프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62개의 건물을 촬영했다. 가프의 자유로운 발상과 신선한 창의력은 물론 에미히홀츠의 형식적 엄격함과 집요함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에서는 에이미홀츠의 드로잉 전시 ‘기울어진 비전’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드로잉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제도사였던 경력을 살려 꿈에서 본 기억과 일상에서의 도상, 여러 가지 기호들을 그려냈다. 약 600점의 드로잉 작품을 모두 활용할 이 전시에서는 새로운 시각 언어의 실험과 발명에 전념해 온 작가의 예술적 원천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영화제 기간 중 해움에서 하인츠 에미히홀츠 감독이 직접 진행하는 드로잉 마스터클래스도 열릴 예정이다.
하인츠 에미히홀츠는 DMZ Docs 관객들에게 “매력적인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제 영화와 드로잉은 열린 책과 같다. 제 작품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우리 세상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데 유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