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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평균자살률을 2배 가량 웃도는 한국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자살예방센터. /경인일보DB

코로나 시국에 우울감을 느끼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자살률이 특히 높은 한국사회의 정신건강 문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을 2배가량 웃돈다. 2019년에는 하루 평균 37.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 문제에 있어 한국은 코로나 이전에도 매일 비상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자살이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살예방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인일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자살예방사업의 주체로서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사회'의 역할을 조명하고자 한다. 실제 현장에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지역의 관점에서 자살예방사업을 살펴보고, 자살률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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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2019년 경기도에서는 모두 3천310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루 평균 9명이다.

경기도의 자살률(인구 10만 명 당 사망자 수)은 25.4명이었다.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 시·군은 연천군(45.8명)으로, 포천시(43.9명), 양평군(38.1명) 등이 뒤를 이었다. 반대로 자살률이 가장 낮았던 시·군은 파주시(20.0명)였고, 고양시(20.2명), 군포시(20.4명) 등이 하위권이었다.

지금부터 살펴볼 가평군의 2019년 자살률은 32.3명이었다. 경기도내 군 단위 지역과 비교하면 분명 낮은 수치이긴 하나, 비교 대상을 경기도 전체로 확대할 경우 상위권에 속하는 숫자다. 가평군의 사례를 조금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 지표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2010년 가평군의 자살률은 60.5명으로, 경기도 시·군 중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 자살률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가평군에 이어 높았던 양평군의 자살률이 49.4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 가평군의 자살 문제는 분명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랬던 가평군은 10년 새 자살률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전국을 통틀어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다. 가평군의 성과가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는 전국 모든 지자체에 남긴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지역사회의 힘을 키우다

경기동북부지역에 위치한 가평군은 인구 6만2천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지자체다. 가평군은 기본적으로 자살 문제에 취약한 인구학적 특징을 보인다. 2019년 한국의 연령대별 자살률 현황을 보면 80대 이상이 67.4명, 70대가 46.2명, 60대가 33.7명으로 노인 자살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확연히 높았다.

가평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5% 정도다. 이는 경기도 노인 인구 비율보다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가평군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인구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가평군은 경기도 시·군의 재정자립도 순위에서 하위 3개 시·군에 들어갈 정도로 경제적 여건도 녹록지 않다.

노인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했던 가평군은 지난 2013년 정신건강증진센터 부설 자살예방센터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다.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자살예방사업을 전담할 센터가 가평군에 문을 연 것으로, 자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자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담인력이 생겼다고는 하나, 처음 인원은 고작 3명이었다. 더욱이 지리적으로도 자살예방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가평군의 면적은 경기도에서 양평군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인구가 가장 많다는 수원시 면적과 비교하면 7배에 이른다. 면적은 넓은데 교통 인프라가 열악해 군 안에서 이동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단 3명이 모든 군민을 대상으로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던 상황이었다.

가평군 자살예방센터는 이듬해 '생명지킴이'를 발족한다.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게이트키퍼' 인력을 길러내기 위함이다. 가평군에는 총 126개 리가 있는데, 센터는 각 리의 이장과 부녀회장을 '생명지킴이'로 임명했다. 각 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장과 부녀회장의 인적 네트워크를 자살예방사업에 활용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게이트키퍼 양성사업은 추진 시기만 다를 뿐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다. 가평군이 독자적으로 고안한 사업은 아니다. 다만 가평군은 전국 공통 사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가평군이 생명 지킴이 사업의 완성도를 어떻게 높였는지다.

센터는 마을 리더들의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인데, 타인이 어떻게 간섭하느냐"는 의견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센터 직원 3명은 126개 리 가운데 98개 리의 이장과 부녀회장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 설득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필요하면 읍소를 해서라도 생명지킴이로 활동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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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생명지킴이 양성교육 참석자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가평군자살예방센터 제공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은 마을 리더들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시스템화'가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생명지킴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관찰한다. 주민 중 누군가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즉시 센터에 연락을 취하고, 센터는 그 주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한 뒤 관련 전문가나 기관을 연결한다. 일부 자살률이 높은 곳은 '생명사랑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여 리더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생명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센터의 역할은 지역사회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역사회가 스스로의 자원을 활용해 자살예방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설득하고 교육한 노력이 자살률을 크게 낮추는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가장 중요했던 건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디테일'이었다. 센터는 자살예방과 관련한 홍보물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센터는 한방 파스에 기관 전화번호 등을 적어 마을 노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낮은 품질의 파스를 나눠주면 자살예방사업과 관련한 인식이 나빠질 것을 걱정해 10종 넘는 파스를 직원들이 하나하나 직접 붙여보고 결정했을 만큼 신경을 썼다고 한다.

민경희 가평군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자살예방사업은 그 지역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평군 내에서도 가평읍, 청평면, 설악면, 상면, 조종면, 북면의 상황이 다 달라 같은 사업이라도 적용 방식에 차이를 둬야 한다"며 "가평군은 마을 리더를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자살률을 낮출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민 팀장은 이어 "많은 지자체가 게이트키퍼 양성사업을 하고 있다. 몇천 명을 양성했다는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 참여도와 충성도를 높이는 게 사업의 성패와 연결된다고 본다"며 "가평군도 지금보다 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지역 기반을 구축하는 데 내실을 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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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생명지킴이 김정희씨. 그의 별명은 '또순이 아줌마'다. 2021.4.22.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동네 또순이 아줌마 이야기

올해로 일흔둘. 가평군 조종면 현1리에 사는 김정희씨. 그의 별명은 동네 '또순이 아줌마'다. 반장, 구역장, 부녀회장 등 마을 살림꾼 노릇을 톡톡히 한 덕에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조종면 현1리 '생명지킴이'다. 그는 2010년대 중반부터 이 마을의 생명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현직 부녀회장에게 사정이 생겨 생명지킴이 역할을 대신 한지도 어느덧 수년이 흘렀다.

그는 원래 독거노인을 돌보는 생활지도사로 일했다고 한다. 힘든 처지에 놓인 노인들을 돕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생명지킴이 활동도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생명지킴이의 심화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가호도우미' 역할도 겸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마음건강조사지'를 들고 가가호호 마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마을회관에서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주민의 집을 찾아가거나, 길거리에 힘없이 앉아 있는 노인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 마음건강조사 설문지를 작성한다.

또순이 아줌마에게도 자살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 하지 말라'며 면박을 주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제가 워낙 마당발이에요.(웃음) 부녀회장도 하고, 성당 회장도 하다 보니 마을에 아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무언가를 맡아서 하는 걸 좋아하고, 하나를 시키면 아주 열정적으로 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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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1리는 생명사랑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2021.4.22.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그는 마을의 생명지킴이일 뿐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있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친화력 가득한 그의 모습에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주민들도 어느 순간 경계를 허물었다.

"고집이 좀 있어서 마을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리는 분이 계시는데, 지금은 저랑 형님 동생으로 지내고 있어요.(웃음) 간혹 한글을 못 읽는 분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쳐드리기도 하고, 파스 붙여달라고 하면 냉큼 붙여드리죠. 팥죽을 끓여 함께 나눠 먹기도 하고요."

그는 생명지킴이로서 활동하면서 실제로 생명을 구한 값진 경험을 했다. 그가 오랜 기간 책임감을 갖고 이 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82세 할머니 집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분이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이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분을 서둘러 깨워서 119를 불러 병원에 갔죠. 나중에 듣기로는 간이 좋지 않아서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을 치를 뻔 했대요. 그분 딸이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큰 보람을 느꼈죠."

그의 손에는 마을 주민들의 정보가 빼곡히 적힌 수첩이 들려 있었다.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생명지킴이로서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의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특징들까지 메모해 뒀다고 한다. 그의 수첩은 현1리 마을의 생명을 지키는 부적과도 같아 보였다.

'오늘도 나는 생명지킴이 상징인 주황색 조끼를 입고, 한 손엔 생명을 살리는 설문지를 든 가방을 들고 힘차게 걷는다. 내 발걸음을 응원해주고, 함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

2019년 그가 쓴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수기의 한 대목이다. 가평군의 자살률 감소는 김정희씨 같은 생명지킴이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일 것이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www.spckorea.or.kr/)와 경기도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s://www.mentalhealth.or.kr/)에서 거주지 인근 자살예방센터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