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핀란드, '지역사회 참여'로 자살률 크게 낮춰 같은 시군에서도 구마다 동마다 차이 보여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지역에 맞는 예방사업 펼쳐야
입력 2021-04-26 13:12수정 2024-10-16 16:15
지면 아이콘지면ⓘ2021-04-26 0면
배재흥 기자
공유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트위터
URL복사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가
가
가
가
2015년 화성시의 한 마트에서 진행한 번개탄 판매개선 캠페인 모습. /경인일보DB
코로나 시국에 우울감을 느끼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자살률이 특히 높은 한국사회의 정신건강 문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을 2배가량 웃돈다. 2019년에는 하루 평균 37.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 문제에 있어 한국은 코로나 이전에도 매일 비상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자살이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살예방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인일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자살예방사업의 주체로서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사회의 역할을 조명하고자 한다. 자살예방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지역의 관점에서 자살률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편집자 주
# 자살률 낮춘 일본·핀란드
일본과 핀란드는 한때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였다. 동시에 자살률을 큰 폭으로 낮춘 경험이 있는 국가다. 일본의 자살률은 1999년 23.4명에서 2017년 14.9명으로 줄었다. 핀란드 역시 같은 기간 23.1명에서 14.6명으로 낮췄다.
두 국가의 자살률이 감소한 이유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지역사회의 참여다. 지역사회는 흔히 안전망에 비유되곤 한다. 지역의 안전망이 촘촘할수록 경제·복지·안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노출되는 위험요소를 신속히 발굴하고 대처할 수 있다.
자살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미 다양한 자살예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획일적인 자살예방사업은 모든 지역에서 똑같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존재하지 않듯, 같은 목적의 사업도 각 지역의 사정을 고려해 달리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 역할은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몫이다.
그래픽. /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구 마다 동 마다 다른 자살률
수원시의 2019년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사망자 수)은 25.2명이었다. 경기도(25.4명)와 전국(26.9명) 자살률보다 낮다. 그런데 수원시 자살률을 구별로 나눠보면 평균에 가려진 숫자가 드러난다.
수원시 4개 구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A구는 35.3명, 가장 낮은 D구는 17.7명이었다. 같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은 거의 2배 정도 차이가 난다. A구를 기준으로 하면 수원시의 자살률은 경기도에서 상위권에 속하지만 D구를 기준 삼으면 하위권으로 떨어진다.
이 차이는 각 구의 상이한 특성에서 나온다. 구도심인 A구는 상대적으로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인구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신도심인 D구와 비교해 소득 수준도 낮다. 최근에는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기존 구축되어 있던 지역공동체가 무너진 사정도 있다. 구를 동 단위로까지 세분화하면 구의 특성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는 세세한 요인들이 나타난다. 한 동네에서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이에 영향을 받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잇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관찰된다고 한다.
'다년간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대규모아파트단지 건설, 거주민 이주, 신규유입 인구 증가현상 높아짐에 따라 지역공동체 감소, 빈부격차 심화현상 등이 나타남. 이로 인해 잔여 원주민 비율이 높은 A구의 자살률이 5년 동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2021년 수원시 자살예방시행계획)
수원시는 위와 같이 자살과 관련한 지역적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각 지역 사정에 알맞은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기 위함이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상임팀장은 "A구는 상대적으로 취약계층이 많이 살고, 빈곤 지역이 많은 편"이라며 "센터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노인복지관과 지역 마트, 지구대, 파출소 등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협조해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등 자살예방사업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자살예방사업은 이처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수원시는 지역특화사업으로 '청소년생명지킴이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 게이트키퍼를 양성해 또래 간 안전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배경에는 청소년 인구 자살률 증가 문제가 있다. 수원시의 19세 이하 청소년 자살 사망자 수는 지난 5년 간 연평균 4.7명이었다가 2019년 9명으로 급증했다.
수원시는 지난 5년간 자살 사망자들의 '심리부검' 사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심리부검은 사망자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밝히는 과정이다. 다년간 쌓인 자료는 지역에 필요한 자살예방사업을 만들어낸다. 수원시자살예방센터가 심리부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살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 다수가 사망 한 달 전쯤 몸이 아파 병원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특징을 보였다. 정신과적 증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이는 '생명사랑의료기관'이라는 사업으로 이어졌다. 수원시는 현재 성형외과, 내과, 치과 등 39개 병원을 생명사랑의료기관으로 지정했다. 해당 병원에 방문한 환자가 혹여 자살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경우 이 병원의 의사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을 안내한다.
백민정 팀장은 "지역사회는 자살을 고민하는 분들을 건져낼 수 있는 그물망이라고 생각한다. 위험군이 걸러지지 않으면 치료시설이 있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자살예방센터는 이 그물망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 역할에 동참할수록 그물망은 더욱 단단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푸스코리아와 청강대가 진행한 이천시 장수사진 촬영 봉사활동. 이 사업과 용인시 '찾아가는 청춘사진관' 처럼 노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고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사업들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경인일보DB
#지역별 특성은 특화로 풀어간다
정부는 현재 국가적 차원의 자살예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가중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시행된다. 사업의 기획은 정부가 했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지자체와 지역사회다. 같은 내용의 사업이더라도, 지역마다 사정에 맞게 추진 방식 등 세부내용이 달라지는 이유다.
특히 정부는 각 지역의 자살예방사업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을 '지역특화사업'으로 추진하게끔 했다. 해당 지역에서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발굴해 추진하라는 취지다. 정부가 제시한 과제들이 모든 지역의 사정을 전부 포괄할 수 없고, 무엇보다 지자체와 지역사회만큼 해당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인시의 사례를 보자. 도농복합도시인 용인시는 지역과 연령대별로 자살률 편차가 크다. 용인시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지역 자살사망자 동향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의 자살사망 특징에서 70대와 80세 이상의 자살률이 위험지표로 분석됨. 용인시의 경우 C구의 80세 이상 자살자 수가 전년 대비 100% 증감률을 보이며, 실제 (C구에 속한) D동이 용인시 33개 읍면동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파악되어 집중관리가 필요.'(2021년 용인시 자살예방시행계획)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노인 자살률 문제가 심각한 용인시는 올해 지역특화사업으로 '찾아가는 청춘사진관'을 기획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여느 노인 대상 자살예방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사진'이라는 소재를 접목했다는 점이다. 지역적 특성에 아이디어를 가미한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용인시의 고민이 배어 있다. 자살과 관련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여전히 불편할 수 있는 주제다. 아무리 교육 내용이 좋더라도,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고 참여하지 않으면 사업의 의미 자체가 사라진다. 용인시자살예방센터는 사진을 매개로 보다 유연한 접근 방식을 꾀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이 주인공인 사진을 찍고, 연말에는 사진전을 연다.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동시에 노인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연희 용인시자살예방센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노년기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고, '청춘사진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센터 정보를 제공하고, 고위험군이 발굴되면 센터에 연계해 사례관리도 가능하다. 연간 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자체·지역사회 역할 커져야
지난해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응이 빛났던 한 해로 평가받는다. 특히, 지자체의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코로나 방역에 큰 도움이 됐다. 외국에서도 벤치마킹에 나섰던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의 시작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자체인 고양시와 인천시였다.
자살예방사업에도 이미 유사한 사례가 있다. '수단 통제'는 자살예방 효과가 강력한 방법 중 한 가지로 꼽힌다. 번개탄 판매개선 사업은 자살예방 관련 수단 통제 사업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인데,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곳이 경기도였다.
경기도자살예방센터는 2010년대 중반부터 도내 시·군과 협력해 번개탄 판매개선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번개탄이 있는 마트 진열대에 자살예방 홍보 문구를 부착하거나, 번개탄을 별도 보관함에 넣어 번개탄을 구매하려면 마트 직원들을 반드시 통하도록 만든 것이다. 경기도에서 시작한 이 사업은 현재 국가중점사업으로 지정돼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번개탄과 농약 등의 판매 방법을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와 지역사회는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자살예방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역시 각 지자체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각 지역의 자살예방사업 수행 능력 간 편차를 줄여나가는 '표준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자살예방사업의 무게 추는 표준화에서 '특성화'로 옮겨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용재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마다 자살과 관련한 요인들이 다를 수 있다"며 "어떤 지역은 고령화가 많이 되어서 노인 자살률이 높을 수 있고, 또 어떤 지역은 정신보건과 관련한 서비스가 부족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요인을 확인하고, 지역적 특성을 살린 자살예방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www.spckorea.or.kr/)와 경기도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s://www.mentalhealth.or.kr/)에서 거주지 인근 자살예방센터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