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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새중앙상담센터에서 만난 자살사별자들의 모임인 '미고사'(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의 운영진 강명수 상담사. 2021.4.26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코로나 시국에 우울감을 느끼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자살률이 특히 높은 한국사회의 정신건강 문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을 2배 가량 웃돈다. 2019년에는 하루 평균 37.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 문제에 있어 한국은 코로나 이전에도 매일 비상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자살이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살예방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인일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자살예방사업의 주체로서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사회의 역할을 조명하고자 한다. 자살예방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지역의 관점에서 자살률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편집자 주


'나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살유가족 권리장전의 첫머리다.

자살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험을 한 사람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과 비교해 극단적 선택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8.3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간접적으로나마 이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의 크기가 상당함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자살유가족들의 미디어 노출이 늘고 있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숨어들 수밖에 없던 이들이 용기를 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나처럼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니까"라고 말한다.

자살사별자들의 모임인 '미고사'(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의 운영진 강명수 안양 새중앙상담센터 전문상담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제가 자살유가족이 된 건 40년 전 일이에요. 그때는 정말로 말조차도 꺼낼 수 없었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커서 도움받을 곳도 없었어요. 지금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그렇고, 유가족도 그렇고 말하자면 커밍아웃하는 분위기가 된 거죠."

강 상담사의 어머니는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았다. 그 당시 우울증 환자가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은 오직 대학병원 정신과 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살 시도가 있더라도 병원 차원에서 약물치료를 하거나 의사가 개입하는 것 뿐.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 문제는 온전히 개인이 짊어져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 모두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해결을 못하면 미국이나 유럽 등 정신건강 관련 인프라가 발달한 나라에 가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가 상담사가 되려고 마음먹은 건 2004년쯤 일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새중앙상담센터에 관련 교육과정이 개설됐고, 그는 호기심이 생겨 들어봤다고 한다. "자살유가족이니까 어릴 때부터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이나 행동에 관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무슨 이유 때문에 그랬을까' 심리를 알고 싶었던 거죠."

강 상담사가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미고사'는 가족을 떠나보낸 뒤 극심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자살 사건을 당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때부터 배우는 거거든요.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요. 모임에 나오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하시죠. 대체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궁금해 합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면 다른 곳에서 느껴보지 못한 유대감이 생겨요."

최일선에서 자살예방 활동을 하는 그가 생각하는 지역사회의 중요성은 무엇일까.

"지역사회는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요.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과 병원, 동 주민센터,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 다양한 곳에서 대응할 수 있잖아요. 자살 사건이나 시도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자살유가족에게는 자조모임이 굉장히 중요한데, 마땅한 장소를 구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지역사회가 이런 모임을 위해 장소를 내어주는 것도 가능하죠."

그는 지역 언론의 역할도 강조한다. 자살과 관련한 흥미 위주의 보도 대신 꼭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게 언론입니다. 지역신문과 방송은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개인과 그 가족이 도움받는 방법 등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낙인을 줄이는 활동도 꼭 필요합니다. 보통 자살유가족이 자조모임에 나올 때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요. 애도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채 굉장한 고통 속에 살게 되는 거예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사회가 (낙인을 지우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강 상담사는 현재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 유가족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자살유가족을 신속하게 도울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요즘 자살유가족이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이유는 '나처럼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니까' 그렇거든요. 어떤 정책을 요구할 때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자살유가족이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홍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거 자살유가족과 관련한 홍보물을 보면 주로 고통스러운 면만 부각 됐었거든요. 부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변할 수 있다. 나아갈 수 있다.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홍보와 정책을 폈으면 합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www.spckorea.or.kr/)와 경기도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s://www.mentalhealth.or.kr/)에서 거주지 인근 자살예방센터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