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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 65세 이상·취약층 인구 비율 높아 2013년 예방센터 설립하고 '본격적인 대응'
126곳 이장·부녀회장 '생명지킴이' 임명… 마을 사정 잘 아는 인적 네트워크 활용
예방·홍보물에도 '세심한 주의'… "지역 이해도 필요, 같은 사업이라도 적용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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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힘을 키우다

가평군은 인구 6만2천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지자체다. 가평군은 기본적으로 자살 문제에 취약한 인구학적 특징을 보인다. 2019년 한국의 연령대별 자살률 현황을 보면 80대 이상이 67.4명, 70대가 46.2명, 60대가 33.7명으로 노인 자살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확연히 높았다.

가평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5% 정도다. 이는 경기도 노인 인구 비율보다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가평군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인구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가평군은 경기도 시·군의 재정자립도 순위에서 하위 3개 시·군에 들어갈 정도로 경제적 여건도 녹록지 않다.

노인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했던 가평군은 지난 2013년 정신건강증진센터 부설 자살예방센터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다.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자살예방사업을 전담할 센터가 문을 연 것이다.

전담인력이 생겼다고는 하나, 처음 인원은 고작 3명이었다. 더욱이 지리적으로도 자살예방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가평군의 면적은 경기도에서 양평군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수원시 면적과 비교하면 7배에 이른다. 면적은 넓은데 교통 인프라가 열악해 군 안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단 3명이 모든 군민을 대상으로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평군 생명지킴이
가평군은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생명지킴이' 사업으로 자살률 감소 효과를 거뒀다. 2018년 생명지킴이 양성교육 참석자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가평군자살예방센터 제공

가평군 자살예방센터는 이듬해 '생명지킴이'를 발족한다.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게이트키퍼' 인력을 길러내기 위함이다. 가평군에는 총 126개 리가 있는데, 센터는 각 리의 이장과 부녀회장을 '생명지킴이'로 임명했다. 각 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장과 부녀회장의 인적 네트워크를 자살예방사업에 활용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게이트키퍼 양성사업은 추진 시기만 다를 뿐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다. 가평군이 독자적으로 고안한 사업은 아니다. 다만 가평군은 전국 공통 사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가평군이 생명지킴이 사업의 완성도를 어떻게 높였는지다.

센터는 마을 리더들의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인데, 타인이 어떻게 간섭하느냐"는 의견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센터 직원 3명은 126개 리 가운데 98개 리의 이장과 부녀회장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 설득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필요하면 읍소를 해서라도 생명지킴이로 활동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은 마을 리더들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시스템화'가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생명지킴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관찰한다. 주민 중 누군가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즉시 센터에 연락을 취하고, 센터는 그 주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한 뒤 관련 전문가나 기관을 연결한다.

일부 자살률이 높은 곳은 '생명사랑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여 리더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생명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센터의 역할은 지역사회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역사회가 스스로의 자원을 활용해 자살예방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설득하고 교육한 노력이 자살률을 크게 낮추는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가장 중요했던 건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디테일'이었다.

센터는 자살예방과 관련한 홍보물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센터는 한방 파스에 기관 전화번호 등을 적어 마을 노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낮은 품질의 파스를 나눠주면 자살예방사업과 관련한 인식이 나빠질 것을 걱정해 10종 넘는 파스를 직원들이 하나하나 직접 붙여보고 결정했을 만큼 신경을 썼다고 한다.

민경희 가평군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자살예방사업은 그 지역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평군 내에서도 가평읍, 청평면, 설악면, 상면, 조종면, 북면의 상황이 다 달라 같은 사업이라도 적용 방식에 차이를 둬야 한다"며 "가평군은 마을 리더를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자살률을 낮출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www.spckorea.or.kr/)와 경기도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https://www.mentalhealth.or.kr/)에서 거주지 인근 자살예방센터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