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군 생명지킴이 김정희씨
가평군 생명지킴이 김정희씨. 그의 별명은 '또순이 아줌마'다. 2021.4.25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생활지도사 출신' 조종면 현1리 김정희씨
마음건강조사지 들고 마을 전역에서 활동
할머니 생명 구하기도… '함께 동참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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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또순이 아줌마 이야기

가평군 조종면 현1리 김정희(72)씨의 별명은 동네 '또순이 아줌마'다. 반장, 구역장, 부녀회장 등 마을 살림꾼 노릇을 톡톡히 한 덕에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조종면 현1리 '생명지킴이'다. 그는 2010년대 중반부터 이 마을의 생명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원래 독거노인을 돌보는 생활지도사로 일했다고 한다.

힘든 처지에 놓인 노인들을 돕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생명지킴이 활동도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생명지킴이의 심화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가호도우미' 역할도 겸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마음건강조사지'를 들고 가가호호 마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마을회관에서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주민의 집을 찾아가거나, 길거리에 힘없이 앉아 있는 노인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 마음건강조사 설문지를 작성한다.

또순이 아줌마에게도 자살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 하지 말라'며 면박을 주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마을의 생명지킴이일뿐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있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친화력 가득한 그의 모습에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주민들도 어느 순간 경계를 허물었다.

"고집이 좀 있어서 마을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리는 분이 계시는데, 지금은 저랑 형님 동생으로 지내고 있어요.(웃음) 간혹 한글을 못 읽는 분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쳐드리기도 하고, 파스 붙여달라고 하면 냉큼 붙여드리죠. 팥죽을 끓여 함께 나눠 먹기도 하고요."

그는 생명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실제로 생명을 구한 값진 경험을 했다. 그가 오랜 기간 책임감을 갖고 이 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82세 할머니 집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분이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이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분을 서둘러 깨워서 119를 불러 병원에 갔죠. 나중에 듣기로는 간이 좋지 않아서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을 치를 뻔했대요. 그분 딸이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큰 보람을 느꼈죠."

그의 손에는 마을 주민들의 정보가 빼곡히 적힌 수첩이 들려 있었다.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생명지킴이로서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의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특징들까지 메모해 뒀다고 한다. 그의 수첩은 현1리 마을의 생명을 지키는 부적과도 같아 보였다.

'오늘도 나는 생명지킴이 상징인 주황색 조끼를 입고, 한 손엔 생명을 살리는 설문지를 든 가방을 들고 힘차게 걷는다. 내 발걸음을 응원해주고, 함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

2019년 그가 쓴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수기의 한 대목이다. 가평군의 자살률 감소는 김정희씨 같은 생명지킴이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일 것이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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