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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장례식이 시민장으로 진행됐다. 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선호야 잘 가, 우리가 꼭 기억할게."

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 장례식장. 지난 4월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려 숨진 故 이선호(23) 군의 장례가 이날 시민장(葬)으로 열리며 이 군은 가족, 친구들과 영원한 이별을 맞이했다.

지난 4월 22일 목요일 아내(어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부자(父子)는 함께 평택항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건 아버지 이재훈 씨 혼자였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버지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 군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작업에 갑작스레 투입됐다가 300㎏ 철판에 깔려 숨졌다. (5월 7일 인터넷 보도=평택항서 작업 중 철판 깔려 숨진 청년…아버지 "안전관리 허술" 오열)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이 군은 차가운 냉동고 속에서, 아버지와 친구들은 이 군의 죽음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싸웠고 이 군의 숨진 지 59일째인 이날 이 군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이번주 취재후는 여름태양처럼 빛났던 청춘, 이선호군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따라갔다.

이 군의 영정 사진 앞으로 하얀 국화꽃을 올리면서 아버지 이재훈 씨는 "잘 가라, 선호야"를 되뇌며 눈물을 흘렸다. 함께 헌화하던 이 군의 어머니도 아들의 영정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연신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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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장례식이 시민장으로 진행됐다. 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이 군의 곁을 지켜온 친구들은 추모사로 이 군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한 친구는 "백병원 장례식장 안내판에 새로운 사람의 이름이 오르고 사라질 때마다 선호 이름은 한 달 넘게 그대로인 것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선호 빈소를 지키면서 이전보다 선호의 모습을 더 많이 알게 돼 웃다가도 어쩌면 앞으로 더 볼 수 있었던 모습이라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린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선호를 하나의 슬픔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이제 선호를 보내지만, 다시는 선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해달라"며 "누군가의 죽음에 기대 바꿔야만 하는 현실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친구도 "차가운 냉동고 속에서 선호를 꺼낼 생각을 하니 다행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 문득문득 떠오를 선호에 슬퍼할 생각을 하니 두렵다"며 울먹였다.



이 군의 아버지는 이 군을 추억하는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슬퍼했다.

이 씨는 "약 2개월 동안 총칼 없는 전쟁을 치르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피폐해져 버렸다"며 "이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줘 약해지는 제 마음을 추스르고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다시 일으키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제 아이는 비록 23년 살다 갔지만, 이 사회와 세상에 많은 숙제를 주고 떠난 것 같아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며 "마냥 슬퍼하는 것보다 아이의 죽음이 잘못된 법령을 다시 고치는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스스로 위안하며 다시 살아가려 한다"고 말을 이었다.

이날 장례식에는 정의당 여영국 당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심상정, 배진교, 강은미, 장혜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 등이 참석했다. 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사단법인 김용균 재단 김미숙 대표 등 노동계 관계자와 유족 등 200여명이 이 군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선호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고 노력하고 싸울 것"이라며 "차별과 착취도 재해도 없는 사회에서 이선호 님의 평안한 삶을 기원한다"고 이 군을 추모했다.

정의당 여영국 당 대표는 "300㎏ 쇳덩이는 23살 청춘을 덮치고 삶의 희망을 산산조각내며 제2, 제3의 김용균만은 막아보자던 우리 심정을 산산조각냈다"며 "사람 목숨 앗아가도 기업주는 멀쩡하고 함께 일하던 노동자만 처벌받는 세상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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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장례식이 시민장으로 진행됐다.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차가운 냉동고를 나온 이 군은 발인식을 거쳐 운구 차량에 실렸고, 유족들은 운구차 앞에서 묵념하며 이 군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이 군이 59일간 머물렀던 장례식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의 원청업체인 '동방' 평택지사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 군의 유해를 서호추모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이날 낮 12시께 노제를 위해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에 도착한 이 군의 아버지는 터미널 펜스 너머 이 군과 아버지가 일하고, 이 군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제를 마친 후에는 부자(父子)가 자주 가던 터미널 구내식당을 찾아 이 군과의 기억을 추억했다.

故 이선호 군은 지난 4월 22일 오후 평택항 내 'FR(Flat Rack) 컨테이너'에서 화물 고정용 나무 제거 작업을 하던 중 지게차가 갑자기 왼쪽 벽체를 접은 탓에 발생한 충격으로 오른쪽 벽체가 넘어지면서 그 밑에 깔려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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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낮 12시께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노제가 진행됐다. 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 시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안전 조치 방안을 마련한 후 작업을 시작해야 하며, 지게차가 동원될 경우 반드시 신호수를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군이 투입된 작업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았고 안전관리자나 신호수도 없었으며 이 군은 안전모 등 기본적인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작업에 투입돼 숨졌다.

평택경찰서는 지난 15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동방관계자 등 5명을 형사 입건하고 그중 지게차 기사 A씨를 구속해 조사하고 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