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청소·경비·시설정비 노동자들의 사고 우연 아니다
경기도, 10개 다학과 휴게 여건 개선·노동권 향상 협약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청소하는 사람들에 소중"
휴게시설 개선도 필요하지만 고용형태 개선도 시급

지난해 7월, 경기도는 도내 10개 대학과 '대학교 현장노동자(청소, 경비, 시설관리) 휴게 여건 개선과 노동권 향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도는 공모에 참여한 대학 중 '학교의 노동자 처우개선 노력도', '휴게시설 열악도' 등을 종합 고려해 최종 10개 대학을 선정했고, 도비 3억8천만원을 투입해 지난해 12월 휴게 시설 등 사업을 완료했다.지난달 27일 새벽, 청소 노동자 A(59)씨가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있었다고 최종 판단했다. 고용부의 판단 근거는 지휘·명령권이 있는 행위자가 청소노동자에게 '필기시험' 등 업무와 관련 없는 지시를 내렸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청소 노동자에 대한 학교 측의 '갑질'로만 문제 삼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갑질 뒤에는 만성적으로 열악한 현장 노동자들의 업무·휴식 환경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2년 전, 서울대에서 또 다른 한 명의 청소 노동자가 공대 건물 지하 층계에 설치된 간이 휴게실에서 숨을 거뒀다. 창문 하나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폭염 경보가 내린 그날,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하나만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대학 현장의 청소, 경비, 시설정비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기도가 대학 시설 개선 사업에 뛰어든 것도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대학 현장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달리 말하면, 그간 대학 노동자의 '쉴 권리'가 존중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번 주 취재후(後)는 경기도가 개선 대학으로 선정한 10개 대학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대학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29일 오후 12시께 성남의 동서울대학교. 이 날 한낮 기온은 34도였다. 이 학교 건물 '9호관' 지하에는 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청소 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점심을 먹은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마룻바닥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대화를 나눴다.
이 학교는 지난해 경기도의 시설 개선 사업에 참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에어컨과 전기보일러가 놓았다. 작은 변화였지만 청소 노동자들은 이제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전병수 동서울대 관리소장은 "지난해 경기도와 학교의 도움으로 날씨에 구애 없이 편안한 쉼을 보장받게 됐다"며 "학교에 여성 26명, 남성 5명 등 총 33명의 청소노동자가 있는데, 학교에서 이들을 '식구'로 보고 소통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수원의 동남보건대학교도 경기도의 개선 사업 대학 중 하나다. 이곳의 학교 노동자들도 '작은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이 학교 정문의 출입 경비를 담당하는 A씨는 "여기서 일한 지 5년째인데, 지난해 휴게실에 침대가 들어오고, 장판이 깔리는 등 여건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며 "정문, 후문의 경비 휴게실 2곳은 물론, 청소노동자가 쉬는 3곳의 휴게시설도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안양의 계원예술대에도 변화가 깃들었다. 청소노동자 18명이 근무하는 이들의 휴게실에는 생활에 필수적인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의 물품이 새로 채워졌다. 청소 노동자들 가운데 '단장'을 맡고 있는 김모(60)씨는 "온돌 시스템이 마련돼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면서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참 소중하다"며 웃어 보였다.
물론, 이런 변화가 정부가 권고하는 기준선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고용노동부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및 운영 가이드'를 보면, 사업장 휴게시설은 작업 공간 100m 이내 혹은 도보 3~5분 거리에 위치해야 하고, 최소 면적은 6㎡ 이상 규모여야 한다. 또, 냉난방 시스템과 환기 시설이 마련돼야 한다. 개선사업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어느 사업장의 휴게시설은 일터와 지나치게 떨어졌고, 어느 곳은 최소면적 기준에 미치지 못해 여전히 비좁았다.
이들 대학을 제외하고, 도내 대학 가운데 시설 개선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대학들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지난해 개선 사업 공모에 참여한 대학은 도내 전체 76개 대학 중 11곳에 불과하다. 경기도 관계자는 "오는 8~9월 사업을 완료한 대학에 점검을 나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대학들에 개선 요청을 할 것"이라며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대학뿐 아니라 열악한 공공시설을 대상으로 사업을 넓혀나가겠다"고 밝혔다.

며칠 전, 대학 등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24일 사업장 휴게시설 의무화를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법률안(산안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사업주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가 별도로 규정되지 않아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 제기됐는데, 이에 국회가 응답한 것이다.
이 법안에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는 노동자가 쉴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휴게시설 면적, 위치 등 구체적인 설치 기준은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두루 수렴한 뒤 하위 법령을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벌금 또한 명시됐다. 휴게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면 1천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휴게시설 설치·관리 기준 미준수 시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정안은 공포 후 1년 뒤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낙후된 휴게 시설 개선안을 담은 산안법 개정안을 반기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근본적으로 보장할 방법으로 고용형태 개선을 꼽는다. 대학 현장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학교법인 직원(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과 간접 고용된 무기계약직 등으로 이뤄진 게 현장 노동자들의 처우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정규직 직원은 호봉과 직급에 따라 임금 상승이 가능하고, 사측과 수평적인 입장에서 업무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반면, 무기계약직이나 비정규직은 일괄적으로 최저임금 언저리에 급여 수준이 묶이면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도가 지난 2019년 실시한 '대학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내 전체 76개 대학의 비정규직 규모는 62.5% 달했다. 또, 학교법인과 중간에 용역업체 등을 두고 간접 고용된 노동자 가운데에는 청소·경비·시설관리 분야의 현장 노동자들이 72.9%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에 대해 박문순 노무사는 "휴게 시설을 개선하는 문제도 노동권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개선하는 것 역시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자체 산하 기관에 종사하는 시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생활임금' 수준이라도 받는데, 대학 현장 노동자들은 '을'의 입장이라 교섭권도 없어 처우가 최저임금 수준으로 열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지영기자·조수현 수습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