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가 처음 시흥 정왕동 큰솔공원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에게 '동네에 살면서 무엇이 불편하냐'고 물었다. 애석하게도 아이들은 불편한 것에 대해 잘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불편하다는 의미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고 하기도 했고, 안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학년 아이들은 조금 달랐다. 우물쭈물하며 입을 뗐다.
아동권리옹호단 설명회에 모인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여덟번째 이야기 '내 권리는 내가 찾아요'
"음..여름이 되면 웃통 벗고 있는 아저씨들을 못 쳐다보겠어요.." "집 안으로 담배연기가 들어와서 창문을 열수가 없어요.."
센터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경험이 제한적이라서, '불편하다'는 인식도 낮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늘 담배연기에 노출된 채 살아왔고 여름이면 웃통을 벗은 어른들을 흔하게 봐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환경을 머리 속에 잘 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땅히 '싫다'고 말해도 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눈을 피하고 창문을 닫으며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아동권리옹호단 모집한다고 해서 친구들도 데리고 왔어요"
지난 6월의 어느 날, 센터 1층 '모두의집'이 평소보다 많은 아이로 북적였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아이들이 신이 나서 집 안을 뛰어다녔다. 매일 오는 아이들 틈 사이로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이렇게 모인 이유를 물으니 "아동권리옹호단 활동하고 싶어서 왔어요. 친구 따라서.."라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모두의집 한 편에 작은 의자 수십개가 놓였다. 의자가 놓인 방향의 벽에는 '아동권리옹호단 설명회'가 적혀 있었다.
아동권리옹호단 모집한다고 해서 친구들도 데리고 왔어요
약속한 시간이 되자 의자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의자를 더 가져와 앉았다.
아이들 앞에 선 선생님이 물었다. "여러분, 권리가 무엇일까요?" 아리송한 표정들을 바라보며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잠시 고민하던 아이들은 선생님이 나눠 준 포스트잇에 하나둘씩 적기 시작했다. '사랑' '마음' '집' '음식' '놀이터' '존중' '배려' '핸드폰' '부모님'..
선생님이 설명했다. "권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또 어떤 일을 자유롭게 하거나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권리입니다."
"권리가 무엇일까요?" 질문에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스트잇에 적어 화면 속 바구니 안에 붙이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권리는 어른들만 가지는 힘일까. 선생님은 이어서 말했다. "여러분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먹을 권리, 쉴 권리, 치료받을 권리, 안전한 집에서 지낼 권리, 놀 권리, 공부할 수 있는 권리 등 다양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조금 어렵게 말하면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선생님은 퀴즈를 냈다. "우간다에 사는 초록이는 배가 고프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어요. 초록이에게 어떤 권리를 지켜줘야 할까요?"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생존권이요." 그렇다. 초록이는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학교가는 길에 신호등도 없어서 위험하게 가야 하는 연두는요?" "보호권이요." 연두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뛰어놀고 있으니 담배 피우지 말아주세요 공원에서 웃통을 벗고 있으면 난처해요
"동네에 놀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우산이는 어떤 권리가 알아야 할까요?" "발달권이요." 아이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맞다. 우산이는 교육을 받고 문화생활을 누리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다.
그동안 아이들은 살기 좋은 환경을 요구할 줄 몰랐다. 아이들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스스로 주장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말하려면 아이들도 아동의 권리를 배워야 한다. 자신의 권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야 옳지 못한 것에 민감해질 수 있다. 그래야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한참 아동권리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센터의 선생님이 건넨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 중에 특히 중요한 것이 스스로 권리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에요. 잘못됐으니 개선해야겠다고 무조건 다가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 어른들 모두 아동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조금씩 넓혀가도록 경험케하면, 다른 지역들과의 환경적, 정서적 갭(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거에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뛰어놀고 있으니, 담배 피우지 말아주세요" "공원에서 웃통을 벗고 있으면 난처해요"
언젠가 센터 밖을 나선 아이들이 공원의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날이 오면 겸연쩍은 어른들이 "그래, 참 미안하구나"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