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면 와이드 직장 트라우마센터
지난해 6월 문을 연 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는 중대재해와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직업적 트라우마를 겪은 노동자들을 위한 상담 활동에 나서고 있다. 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를 포함해 경기도 내 직업트라우마센터는 총 5곳.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직접 사고 현장에 나가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자들의 일상 회복에 힘쓰고 있다. 2021.8.3 /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 제공

 

한국사회가 이현재씨처럼 산업재해 사고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 3월 전국 8곳에 '직업트라우마센터'를 설치했다.

산재 사고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들의 회복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센터는 중대재해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등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에게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인 지역에는 현재 인천과 부천, 경기 서부, 경기 동부, 경기 북부 등 총 5곳의 센터가 있다. 올해 문을 연 경기 북부를 제외하고 지난해 경인 지역 센터 4곳을 찾은 노동자는 인천 181명, 부천 201명, 경기 서부 148명, 경기 동부 159명 등 총 689명이다.

 

경기·인천 5곳 '직업 트라우마센터'
작년 4곳 689명 찾아 전문심리상담


직업 트라우마 치료는 초기 개입이 중요하지만, '때'를 놓치는 노동자가 아직 많다고 한다. 자신이 산재 사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직 많다는 이야기다. 현재씨도 자신의 증상이 트라우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에서 도움을 받았다.

정혜선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장)는 "트라우마는 초기 발병했을 때 (센터가) 개입해서 심리적 상담을 해줘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만성적인 문제가 된다"며 "초기에 빨리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으면 회복 속도도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면서 회복 탄력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정조웅 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 상담심리사도 "마음이나 심리적 문제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는 경우가 많고 정확하게 현재 증상이 트라우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적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때 놓치는 사람 많아 뒤늦게 도움
직접 재해 현장 찾아 상담 안내도


이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센터 상담사들은 직접 사고 현장을 찾는다. 초기 개입은 물론 트라우마 관리의 필요성을 모르는 노동자들이 나중에라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센터의 방문을 사고 관련 조사로 인식해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는 고용노동부 연락을 받고 갈 때도 있는데, 찾아가면 사업주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내려 온다고 생각해 배척하며 경계심을 갖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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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에서 근무하는 정조웅 상담심리사, 정혜선 센터장, 엄재영 산업전문간호사.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센터는 초기 개입 이후에도 사후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노동자가 안정화가 됐다고 해서 상담을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 상담이 필요하다면 횟수 제한 없이 상담을 진행한다. 병원 치료가 필요하면 병원을 연계해 노동자의 일상 회복을 돕는다.

하지만 노동자의 트라우마 관리는 여전히 '예방사업' 정도로만 치부된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크지 않다는 인식 탓에 투입되는 예산은 제한적이다. 경인 지역에만 트라우마 센터 5곳이 있다곤 하나 인구와 면적을 고려하면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부천직업트라우마센터는 부천, 김포, 고양뿐만 아니라 서울 남부권까지 담당하고 있다.

 

가시적 성과 적어 '투입 예산' 제한
중앙정부·지자체 '추가 지원' 필요


추가적인 센터 건립과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센터 관계자는 "경기도가 직접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힘들 수 있겠지만, 우리와 같은 지역 내 센터들이 더 활성화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계획을 세우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 김장일(민·비례) 부위원장은 "산업 현장에서 사고를 겪거나 목격한 사람들이 겪을 트라우마가 상당할 것"이라며 "조례 등 경기도가 트라우마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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