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 등 교육 당국은 학교시설 복합화의 이점을 강조하면서 복합화 시설을 세울 학교를 앞으로 더 늘려나가려는 방침이지만, 잇따른 갈등을 잠재우지 못하면 시설 복합화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키운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주 취재 후(後)는 학교시설 복합화를 둘러싼 갈등을 들여다보고, 교육 당국이 내다본 학교시설 복합화 취지를 살릴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학교를 지역생활 중심공간으로 활용…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이란
화성시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화성시청 제공
학교시설 복합화는 학교 건물에 체육시설 등 복합시설을 설치·운영하면서 학교를 학생과 지역주민이 공유해 지역 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학생은 복합시설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받고 교육 당국은 적은 재원부담으로 교육시설을 지으며, 지자체는 용지 확보의 어려움 없이 주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학교 건물에 체육시설·주차장 등 복합시설 운영 학생과 주민 '지역 공동체' 구현 목적 잇단 추진 교육당국 재원부담 경감·지자체 용지 확보 이점
학교시설 복합화는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되는데, 교육부가 매년 일정 학교를 선정·추진하는 '생활 SOC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업은 교육부가 지자체로부터 복합화 사업계획서 및 시설별 사업계획서 공모를 받아 심사와 지방재정투자심사를 거쳐 시행한다. 경기도에도 광명과 수원, 화성 등 도내 시·군 9곳의 총 11개교가 해당 사업에 선정됐다.
또한,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해 '조건부'로 학교 신설 승인을 받으면서 시설 복합화를 추진하거나, 화성시 이음터 사업처럼 지자체와의 교육협력 사업으로 학교시설 복합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도내 학교시설 복합화 추진 학교는 교육부 사업을 포함해 총 70개교다. 이 가운데 복합화 시설로 운영 중인 곳은 46개교로 초등학교 27곳, 중학교 15곳, 고등학교 4곳 순이다. 복합화 시설은 부설주차장이 33곳으로 가장 많았다.
학생 우선 vs 주민 우선
용인 처인고등학교 복합화 시설 관련 협약이 용인시와 학교의 갈등으로 체결되지 않으면서 학생들이 일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해 불만이 커져가고 있다. 사진은 지상 3층 규모로 청소년 이용시설과 실내 체육관 등으로 건립된 '처인성어울림센터'. 2021.8.9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교육 당국의 취지만 보면 학교시설 복합화는 학교와 학생, 지자체와 주민 모두 이익이 되는 사업이지만, 현장에서는 시설 복합화로 세워진 복합시설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화성 새봄초는 학생과 주민 간 동선 분리가 전혀 되지 않아 학생 안전을 위협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시설 복합화로 추진된 주민 개방형 도서관인 '노을빛 도서관'이 학교 건물 안에 설계되면서 학생과 주민이 같은 출입구(학교 정문)를 이용해야 하면서다.
화성 새봄초 도서관, 학생-주민 동선 분리 안돼 애초부터 면적 좁아… 무리한 사업 진행 지적도
특히 새봄초(40학급)는 학교 용지 자체가 작아 시설 복합화가 무리하게 추진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부 기준 40학교 초교 면적은 1만2천970㎡인데, 새봄초 연면적은 1만3천여㎡로 면적 기준을 가까스로 충족했다. 그러나 학교 신설의 키를 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중투심)는 시설 복합화 추진을 조건으로 학교 신설을 승인했다. 애초 별도 건물에 시설 복합화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화성오산교육지원청(이하 교육지원청)도 별도 건물을 세우려면 소방 회차로 등도 조성해야 하는데, 용지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이 같은 사실은 학교가 이미 다 지어진 후에야 알게 됐다. 결국, 남은 과제는 학교와 학부모, 지자체, 교육지원청 등 현장이 수습하고 있다.
교육지원청 등은 새봄초 방학기간을 활용, 오는 20일까지 노을빛 도서관을 임시 운영하면서 상황을 확인하고 정식 개관을 결정할 방침이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임시 운영으로 상황을 보고 학부모들한테 공지한 후 정식 개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며 "물리적으로 정문을 분리할 수는 없어 바리케이드 형식으로 동선 분리를 유도하고 화성시가 CCTV와 안전 요원 인력을 확충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운영비'도 문제다.
용인 처인고는 새봄초와 달리 별도 건물에 시설 복합화로 '처인성어울림센터(이하 센터)'가 세워졌지만, 학생들이 센터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수도료와 전기료 등 운영비를 학교가 일부 부담해야 한다고 용인시가 고수하면서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 3월 개교 이후부터 지금까지 센터 2층 청소년이용시설 전체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용인 처인고선 지자체가 수도·전기료 분담 요구 타지역은 부담 안해… 운영협의회서 결정키로
용인시는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이 센터를 사용하는 '사용료'는 100% 감면이지만, 수도료와 전기료 등의 '운영비'는 학교가 일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학교와 학부모는 별도 계량기도 없는데 어떻게 운영비를 측정할 것이고, '용인시 복합화 시설 설치 및 운영 조례'상 100% 감면이 사용료 등으로 돼 있어 운영비도 포함이라고 맞서고 있다.
경기도교육청도 시흥과 화성 등 시설 복합화 추진 학교를 확인했지만, 운영비를 부담하는 학교는 없었다고 답했다. 결국, 용인시는 운영비 문제를 학생과 학부모, 지자체 등 9명으로 구성된 '운영협의회'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시설 복합화, 현장 목소리 담아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중앙이음터에서 열린 '제14차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사회관계장관회의'에 앞서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2019.10.11 /연합뉴스
화성 새봄초와 용인 처인고를 보면 교육부 사업이 아닌, 교육부 중투심으로 시설 복합화가 추진되는 경우 갈등이 종종 발생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도 교육부는 중앙부처 차원에서 지원만 해줄 뿐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추진하는 생활 SOC 학교 시설 복합화 사업만큼 꼼꼼하고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이 일반적인 학교시설 복합화 추진에도 마련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해당 사업은 복합시설이 들어설 부지 면적부터 복합화 시설을 어떻게 사용할지, 학교 안전을 우선 고려한 동선 분리 등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다. 사업 추진협의체에 교육지원청과 지자체는 물론 지역주민과 학부모 등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 아닌 중투심 사업 사례서 잇단 문제 불구 중앙 차원 지원 그쳐… 체계적 가이드라인 필요성 교육부 "학교-지자체 양보하며 현장서 답 찾아야"
반면 화성 새봄초와 용인 처인고 두 곳 모두 학부모들이 이미 건물이 다 지어진 후에야 문제점을 알게 됐고, 용인 처인고 협약 체결 당시에도 학교와 용인시, 용인교육지원청만 협의했을 뿐 학부모와 학생, 지역 주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관련 법으로 '학교복합시설 설치 및 운영·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복합시설법)'을 두고 있지만, 이는 기본적인 뼈대만 제공할 뿐, 구체적인 운영 등 관리 방안은 운영협의회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운영·관리 방법이나 이용료 징수 등 관리·운영에 대한 법적 근거가 담긴 시행령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며, 지난 9일에서야 입법 예고 기간이 끝났다.
지자체 조례로 운영에 대한 부분을 담을 순 있지만, 용인시의 경우만 봐도 조례상 '사용료 등'이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학교는 운영비도 포함, 용인시는 사용료만 해당이라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용인 처인고 학부모회는 "조례에 사용료 등이라고 하면, 당연히 운영비도 포함된 것인데 용인시는 사용료 등에 운영비가 포함된 것은 아니라서 협약으로 운영비 부담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토로했다.
교육부도 학교시설 복합화를 둘러싼 여러 갈등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답은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복합화 시설을 두고도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는데, 학교와 지자체가 서로 양보하며 현장에서 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며 "복합시설만 건립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해당 시설에 인력과 운영비 등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누가 운영 관리를 할 것인지, 운영 경비 상 등의 마찰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