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은 지난해 4월 황망한 이별을 겪은 뒤 법원 판단만을 기다려왔지만 현실은 기대를 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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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열린 이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7월16일 인터넷 보도= '38명 사망' 이천 물류창고 참사 발주처 책임자, 항소심서 '무죄')에서 피고인들은 모두 원심에 비해 형이 감경됐다. 공사 발주처 책임자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심에서 유일하게 징역 3년6월 실형을 선고받은 시공사 (주)건우 현장소장과 각각 금고 2년3월, 1년8월을 선고받은 안전관리자, 감리사 전인씨엠의 감리단장은 징역 3년, 금고 2년, 금고 1년6월로 감형 받았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이번 주 취재 후(後)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참사 유족들의 목소리와 향후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유족, 재판 거듭할 수록 피고인들 형이 감경된다며 '허탈'
법정 판결에 기대 걸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억울한 심정
"누구도 제대로 처벌 받은 것 같지 않다… 대법만 기다려"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참사 유족들은 재판을 거듭할 수록 피고인들에 대한 형이 감경된다며 허탈함을 드러냈다. 이들은 대법원에서 만큼은 판결이 뒤집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화마에 막내 동생을 잃은 강정현(44)씨. 그는 항소심 선고에서 공사 발주처 책임자가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한 의견을 묻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려는 듯 수차례 뜸을 들이기도 했다. 강씨는 법정 판결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억울한 심정이라고 했다.
화재로 아버지를 잃은 김선애(39)씨 역시 2심 판결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말도 안되는 판단이죠. 발주처 책임자는 완전히 무죄 나와서 그냥 말이 안 나왔어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 됐지만 그 법안이 우리 사건에 영향을 줄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함부로 했나..."
김씨는 한 평생 건설업에 종사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어려서 몰랐는데 아빠가 일용직 일 전에 건설 쪽 소장 일도 했어요. 건설 쪽에선 급여를 떼 먹는 경우가 좀 있나 봐요. 그때도 인부들 먼저 챙겨주시고. 항상 남부터 챙겨 주시던 아버지였어요."
그는 사고 이후 건설현장 노동자를 만나면 괜스레 안부를 묻는다고도 했다. 김씨는 "마음이 이전과 많이 다르다. 길 가다가도 (건설현장 노동자로) 근무하는 이들 보면 한 번이라도 말이라도 붙이고 싶고. 힘내시라고. 아버지가 저렇게 힘들게 하셨던 거구나 싶다"고 했다.
김지현(28)씨도 허망한 심정을 드러냈다. 김씨는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것 같지 않다"며 "이제는 대법원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책임자 엄벌 진정서 대법 판결 시작 전 이미 4천여건 제출
법적 효력은 없지만 참사 향한 국민적 공분 보여주고 있어
이번 사건 책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화재 책임자들을 엄벌해달라는 진정서는 대법 판결 시작 전 이미 4천여건 제출됐다. 항소심 직후 약 한 달 간 접수된 진정서만 약 1천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정서나 탄원서는 민원성 서류다. 법적 효력이 없다. 그러나 이 서류들은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를 향한 국민적 공분을 보여주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진정서나 탄원서가 양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접수된 서류 수가 국민들의 법 감정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여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사건 발생 직후에도 이번 사건 관련인들을 엄중 처벌 해야 한다는 데 수천 명 국민들이 뜻을 모은 바 있다.
지난해 5월 이번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달라고 호소한 청와대 국민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자신을 이번 사건 유족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누가 하나 제대로 나서서 해결해주는 이가 없다"며 호소했고 이 글은 7천951명 동의를 얻었다.
법원이 형을 감경한 사유는 '직접적인 책임' 물을 수 없어서
향후 쟁점, 책임 의무 게을리 해 화재 발생 연관성 밝혀내야
"개인의 혐의 소상히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
법원이 피고인들의 형을 감경한 사유는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어서다.
법원은 무죄 판결이 난 발주처 책임자에 대해선 "발주처에 원칙적으로 안전 조치를 취할 주의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폐쇄 시점이나 폐쇄 공사의 개별 작업에 대해 지시하거나 감독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발주처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죄 판결한 피고인에 대해선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들이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이라는 점, 일부 유족과 합의한 점 등이 양형 참작 사유가 됐다.
향후 쟁점은 무엇일까. 법조계에선 피고인들이 책임 의무를 게을리 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연관성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87년 3월 벨기에에서 출항한 이 선박은 459명 탑승객을 태우고 있었지만 양측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한 관계자의 실수로 물이 차 배가 가라앉았다. 출항 2분 만에 193명의 탑승자와 선원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명확한 책임 소재 규명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중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된 7명 중 5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영국 국민들은 크게 분개했고 '기업살인법' 이 제정됐다.
A씨는 "산업 규모가 커서 종사자 수가 많고 분업화 될 수록 개인의 책임을 규명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며 "이천 화재 사고 역시 대법원에서 피고인 개인의 혐의를 소상히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마중도 피고인들의 구체적인 혐의를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준 마중 대표 변호사는 "책임자 등은 현장에서 공사를 독촉하고 (업무 효율을 위해) 비상구 막으라고 지시했는데 이러한 점들이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라며 "피고인들이 현장에서 근로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던 구체적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추가 증거도 갖고 있고 전문인 공개 변론 신청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