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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놀이하는 시흥플레이스타터.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열한번째 이야기 - 어린이는 놀이의 스승

취재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아직 아이들이 오지 않았겠다 싶었는데, 10살 하음(가명)이와 현주(가명)가 일찌감치 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혹시나 아이들이 점심을 먹지 못했을까 걱정됐다.

"얘들아, 점심은 먹었어?"라고 묻자 다행히 하음이는 집에서, 현주는 학교에서 먹고 왔단다. 한시름 놓으며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간식시간은 2시부터 아니야?"

하음이랑 현주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오늘 간식도 받고, 재밌는 놀이도 하는 날이라 빨리 왔어요. 선생님이랑 놀이하는 거 진짜 재밌거든요." 

 

 

놀이밥을 먹고 자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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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두의 집 한가운데 둥글게 앉았다. 비록 투명가림막에 둘러싸인 채 각자의 책상 앞에 앉았지만, 오랜만에 함께 모인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2명의 '시흥플레이스타터'가 게임을 진행하자 아이들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하며 참여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떠드는 통에 어수선해보였는데, 신기한 건 막상 아이들과 스타터들은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고 몹시 즐기고 있었다.

이 날은 '인디언추장게임' '청기백기게임' '박 터뜨리기' 게임을 진행했다.

특히 동시에 공을 던져 박 터뜨리기 게임을 할 때는 올림픽만큼이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잘 열리지 않는 박 때문에 살짝 칼집을 내고 조금 잡아당기는 꼼수(?)도 있었지만 열띤 두드림 끝에 박이 터지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수수 쏟아진 초콜릿과 캐러멜, 사탕을 다 함께 정신없이 주워담으며 그간 만나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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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백기 게임을 하며 즐거운 아이들의 모습. /공지영기자 jyg@kyeonin.com

놀이가 끝나고 플레이스타터는 "놀이를 시작하고 5주만에 진행된 대면놀이라 우리도 아이들도 정말 신이 났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플레이스타트 운동의 목적은 '놀이밥을 먹고 자란 아이'를 키우는 데 있다. 쉽게 말해 잘 놀아본 아이가 어른이 돼서도 잘 쉬고 잘 놀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2016년 시흥보건소가 '전 세대의 건강'을 고민하던 중 놀이가 노후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착안해 '시흥플레이스타트' 사업을 도입했다.

다어울림센터도 사회활동의 경험이 적은 다문화배경 아이들과 어떻게 교감할까 고민하던 중 '놀이'를 매개로 교감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다. 수소문 끝에 시흥플레이스타트 사업을 알게 됐고 두 기관의 만남이 성사됐다.

지난 5주간 아이들과 만난 플레이스타터는 '재제'와 '봄비'였다. 본명보다 닉네임으로 불리길 원하는 그들은 '선생님', '프로그램'이란 단어를 썩 내켜 하지 않았다. "플레이스타트 놀이는 아이들의 자유놀이에요. 놀이는 스타터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큰 틀의 놀이를 구성할 뿐,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이를 구체화해요." 재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어수선해 보이고 시끄러운 그 현장에서 즐겁게 놀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활동 적은 다문화배경 아이도 놀이 매개로 교감
청기백기·박 터뜨리기 등 게임에 집중하며 함께 즐겨
구체적 방식 아이들이 직접 정해… "어른보다 전문가"

재제, 봄비와 함께 지난 5주간 추억을 되짚었다. 아이들은 먹는 것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딱딱하고 길쭉한 스파게티 면을 쌓아 그 위에 마시멜로를 얹는 놀이, 조리퐁과 마시멜로, 물엿, 가루캔디 등으로 진행한 만들기 놀이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어떤 아이는 조리퐁 수영장을 만들었는데, 과자를 다 먹어야만 물이 나오는 수영장을 만들었어요. 이번 여름에 수영장을 가지 못한 게 아쉬웠대요. 또 어떤 아이는 몇 해전에 아빠랑 바다를 갔었는데, 그게 기억에 남았다며 조리퐁으로 바다를 표현했더라구요.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건데, 아이들 내면에는 놀이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요. 놀이에 있어선 아이들이 스승이니까요." 마지막 수업을 못내 아쉬워하던 봄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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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놀이하는 시흥놀이스타터. /공지영기자 jyg@kyeonin.com

하음이와 현주가 30분이나 일찍 와서 기다린 데는 이렇게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말한 '선생님과 놀이'는 정말로 신이 났다. 약속된 1시간을 훌쩍 넘어서도 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게임을 진행하는 제재와 봄비도 신이 났고, 아이들도 신이 났다.

청기백기 게임이 어려워 잠시 뒤로 물러나 언니 오빠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8살 유민(가명)이는 나에게 속삭였다. "게임이 어렵긴 한데, 그래도 나는 여기 오는 게 좋아요. 선생님도 너무 좋고, 친구들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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