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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이 집 김치찌개 잘하네."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우리는 인중에 맺힌 땀을 훔쳐내며 식사를 했다. 얼큰한 맛에 스트레스를 희석시키며 여러 가지 맛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시고랭에 이어 양꼬치와 마라탕이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건에 관하여.

이내, 입맛의 다양성은 문화 다양성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입맛은 외국의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인가.

"나는 고수는 못 먹겠어."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이 많아졌으니 앞으로 음식도 더 다양해지겠지?" 반가운 말이군.

"4.9%면, 많은 건가?"

2019년 총인구 대비 국내 체류 외국인의 비율 4.9%

이주배경 인구 5%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봐

국민학교 시절 배우던 단일민족국가와는 한참 멀어져


2019년 총인구 대비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비율은 4.9%였다. 숫자로는 252만 명. 경기도의 과천, 안양, 군포, 광명, 시흥, 부천시 인구를 합한 정도다.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올해 300만 명이 넘었을 터이다. 특히 경기도에 가장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다. 전체 체류 외국인 중 35%에 이른다. 경기도 31개 시·군 중 17개 시에서 외국인주민 수가 인구대비 5%가 넘는다. 외국인주민의 증가는 더 이상 안산 등 특정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외국인, 이민 2세, 귀화인 등 이주배경 인구가 전체 인구의 5%가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본다. 우리나라는 다문화 국가의 문턱에 와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독일 등과 같이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 배우던 단일민족국가와는 한참 멀어졌다. 체질이 바뀌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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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를 지나는 외국인 가족. /경인일보DB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처형도 외국인이랑 결혼했어. 큰아이 학급에도 다문화 가정 아이가 있고."

"외국인을 마주치는 게 낯설지 않게 됐지."

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이웃들에 관한 일화를 하나둘씩 꺼내놓다 보니 다문화 사회를 주제로 한 수다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국경을 넘은 러브스토리에서부터 유학생, 탈북자, 난민에 이르기까지 주제도 다양했다. 마침 온 미디어가 아프간에서 한국을 도왔던 아프간인 가족들을 한국으로 이송해 온 미라클 작전의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단어 하나가 이렇게 중요하다니까. 난민이 아니라 특별공로자라고 하니 반갑게 맞이할 수 있잖아."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파스타랑, 베트남쌀국수가 뭐가 다른 줄 알아?"

'포'를 원래 이름 대신 베트남 쌀국수로 기억하는 우리들

파스타를 이탈리아 밀국수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어

'문화적 차별'로 볼 수 있어


파스타와 포(pho)는 모두 외국 음식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포'를 원래 이름 대신 베트남쌀국수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반면 파스타를 이탈리아 밀국수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파스타라는 서양의 음식은 원래 이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베트남 음식의 이름은 한국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문화적 차별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하던 초기에는 어묵은 fish cake(피시 케이크)로, 막걸리는 rice wine(라이스 와인)으로 번역해 외국에 소개했다. 우리는 곧 이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피시 케이크는 어묵으로, 라이스 와인은 막걸리로 바로잡았다. 이제는 김치가 기무치나 파오차이로 불리면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언어에는 태도가 스며있게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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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경인일보DB

앞으로 더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사회를 이루어 나갈 것
우리 곁의 사람들과 나누었던 말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첫 번째 이야기는 '베트남어' 배우고 싶어하는 꼬마네 집 이야기 

우리는 우리 곁의 이주민들과 나누었던 말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통계와 숫자로는 집계되지 않는, 은근하고 의미심장한 그들의 이야기는 통계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더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사회를 이루어 나갈 것이고, 이들과의 연결성은 더 진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친해지는 데는 이야기만 한 게 없고,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첫 번째 이야기는 베트남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귀여운 꼬마네 집 이야기다. 

/민정주·황성규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