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黔丹) 명칭은 검단신도시 일대 갯벌이 검고 붉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라신도시는 아라뱃길(옛 경인운하)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아라뱃길의 '아라'는 민요 아리랑의 '아라리오'에서 왔는데, 서해와 한강을 잇는 아라뱃길에 정서와 문화가 흐르길 기원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라 데팡스' 기념 조각상이 곧 이름으로
일본의 '다마' 가로로 긴 산 의미 명칭으로 이어져
신도시 이름을 정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건,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수도 파리의 신도시인 '라 데팡스'와 일본 수도 도쿄의 신도시인 '다마'는 각각 지향과 옛 것을 계승했다는 면에서 구별됩니다. '수비'라는 뜻의 라 데팡스(La Defense)는 도시의 상징인 신 개선문 옆에 자리잡은 루이 에르네스트 바리아스(1841~1905)의 동명 조각상(La Defense de Paris)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프로이센에 저항하는 파리 시민을 기념한 조각상이 곧 도시의 이름이 됐습니다.
2010년 라 데팡스를 찾아가 본 적이 있습니다. 쭉 뻗은 방사형 도로는 파리 고유의 그것이었지만, 라 데팡스에는 고풍스런 건물 대신 고층 빌딩과 깔끔한 보도블럭이 깔린 광장과 업무지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파리와 다른 이 신도시는 프랑스의 자주·주권을 상징합니다.
도쿄 다마신도시는 '구릉'이라는 뜻으로 과거부터 '가로로 긴 산'이라는 의미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그 명칭이 신도시에 고스란히 이어진 셈입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신도시 명칭에는 조성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담기기도 하고, 그 지역을 불러온 옛 이름을 계승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산본, 수리산 밑 마을이라는 의미 '옛 지명' 계승
일산·평촌은 순 우리말이 한자어로 번안된 사례
경기도 신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1988년 발표된 1기 신도시 5곳의 이름이 그렇습니다. 이 당시엔 옛 지명을 계승한 사례가 주를 이룹니다. 부천 중동(中洞)은 중간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당 지역을 지칭해 온 옛 말을 고스란히 이었습니다. 산본과 일산, 평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산본(山本)은 수리산 밑 마을이라는 의미입니다. 옛 지명이 계승된 경우입니다. 일산(一山)과 평촌(坪村)은 순우리말이 한자어로 번안된 사례입니다. 일산은 '한뫼'의 한자어 혹은 '고봉산'의 한자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뫼란 '높은 산'을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고봉산 역시 높은 봉우리라는 의미기 때문에 '높은'·'큰'을 의미하는 순 우리말 '한'에 '산'자를 붙여 '한산'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한뫼', '한산'이 일산이 된 것입니다. 순 우리말 명칭이 한자어로 변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촌의 경우는 변환 과정이 좀 더 노골적입니다. 평촌은 '너른 땅'을 의미하는 순 우리말 '벌말'의 번안입니다. 벌말은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일반명사로 많이 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허허벌판'처럼 넓은 땅을 과거엔 '벌말'이라고 불러왔던 것이죠. '벌말'이 한자어로 변하는 과정에서 '평촌'이 됐고, 안양에 자리잡은 넓은 벌판 위에 세워진 도시의 이름은 '평촌신도시'가 됐습니다. 예전엔 평촌역을 '벌말역'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2기 신도시부터는 가치·지향을 담은 명칭 등장
정약용이 남양주 탄생 착안 '다산신도시' 명명
2기 신도시부터는 가치와 지향을 담은 명칭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남양주 다산신도시가 그렇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남양주에서 탄생했다는 데서 착안해 남양주의 신도시 이름을 다산으로 명명한 것입니다. 광교(光敎)는 지명을 사용했으나 절묘하게 가치·지향을 담게 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교산 때문에 광교신도시로 명명됐는데, 광교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산 위에서 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붙인 이름입니다. '빛의 가르침'이라는 광교산의 이름을 신도시에 적용한 것입니다. 광교신도시가 품은 원천·신대호수도 자연히 광교호수로 불리고 있습니다.
'빛'이라는 이름이 매력적이었기에 역대 경기도지사들은 늘 도청을 광교로 옮기고 싶어했습니다. 더 넓고 높은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게 해줄 수 있으리란 상징성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동탄신도시와 분당신도시는 모두 비슷한 작법으로 만들어진 명칭입니다. 우선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 분당(盆唐)은 분점리와 당우리를 합쳐 만들어졌다고 해서 분당으로 불리운 것이 이어진 사례입니다. 동탄(東灘)은 동탄면의 이름을 이었는데, 동탄면은 동북면과 어탄면을 합쳐 만든 행정명칭이죠.
첨단 기업이 소재한 판교신도시의 명칭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허름합니다. 판교(板橋)는 운중천 위에 놓인 널판자 다리를 뜻하는 말이었고, 이것이 신도시 명칭으로 이어졌습니다. 광교와 판교는 모두 경기 남부의 '교'자 돌림 신도시지만 의미만은 전혀 다릅니다.
3기 신도시는 조성 전부터 이름 공모하기도
1·2기 신도시 명칭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 '눈길'
이처럼 1·2기 신도시는 대체로 지명을 계승하되 때론 가치와 지향을 담아 명칭을 선택하거나 창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3기 신도시에는 아예 조성 전부터 이름을 공모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신도시 명칭 공모에는 무려 7만8천건의 이름이 제출됐습니다.
남양주 왕숙은 '왕숙 늘빛도시', 고양 창릉은 '온새밀 도시'라는 명칭이 최우수작으로 뽑혔습니다. 늘빛은 '늘 빛난다'는 순 우리말, 온새밀 역시 '자연 그대로'라는 의미를 담은 순 우리말 '온새미로'를 활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천 대장은 '대장 플로우시티'였습니다. 공식 명칭에 쓰기엔 다소 낯선 영어 조어가 등장한 것입니다. 플로우(FLOW)는 미래(Future)·연결(Link)·열림(Open)·물(Water)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남 교산은 '다인', 과천은 '온온'이 꼽혔습니다. 당선작만 나열해 봐도 1·2기 신도시 명칭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시의 이름은 역사인 동시에 어떤 곳에서 살고 싶다는 가치와 지향이 담기기도 합니다. 외국 사례를 봐도, 한국 신도시의 이름을 살펴봐도 정답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신도시 이름, 어떻게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