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경기도청 구관은 1967년 완공됐습니다. 팔달산 자락에 자리 잡은 경기도청은 신관과 구관, 별관 등으로 구성됐는데 그 중 구관이 가장 먼저 지어졌습니다. 도청 구관은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ㅁ'자 복도를 하고 중앙에 정원을 둔 형태인데 1개 층의 복도가 모두 연결돼 있어 복도를 빙빙 돌다 보면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도청 출입 기자실이 구관에 있기 때문에 취재 통화를 하느라 복도를 뱅뱅 도는 기자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가운데 정원이 복도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조여서 그곳에서 누가 차담을 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죠. 다른 언론사의 취재기자가 어느 공무원이랑 정원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복도에서 보곤 "오늘 무얼 취재하는구나" 짐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1960년대 가장 모던한 건축 양식을 적용한 것인데, 전통의 풍수지리 요소도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구관 옥상에 배 모양 출입구는 팔달산에서 내려오는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설계된 요소입니다. 50년이 더 된 구관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기자들끼리 "우리는 근대문화유산에서 일한다"며 실 없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합니다.
기자는 꼬박 4년을 구관 건물에서 도청을 출입했습니다. 그만큼 건물에 얽힌 기억도 많습니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배관이 낡아 봄철이 되면 배관 수리하는 광경을 여러 번 봤습니다. 낡은 건물은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낡았지만 운치 있는 근대문화유산에서 일하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입니다. 조만간 경기도청이 수원 광교 신도시로 이전하기 때문입니다. 경기 남부를 대표하는 신도시로 경기도청이 50여년 만에 자리를 옮기는 것입니다. 지난 10년 이상 갑론을박을 반복했던 경기도청 이전, 그 이야기의 앞뒤를 살펴보려 합니다.
역대 경기도지사들 대통령 선거서 번번이 쓴잔
옛 무덤터 '공관의 풍수지리 영향' 세간에 소문
도청사 이전 앞두고 이재명 지사 '징크스' 관심
경기도청은 하나의 징크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경기도청사가 아니라 경기도지사 공관 징크스라고 해야 옳습니다. 내용인즉, 전국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경기도의 수장이 대통령 선거에서 번번이 미끌어진다는 것이죠. 이인제·손학규·김문수·남경필. 도백으로서 대통령을 꿈꿨던 정치인들은 경기도지사에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하는 정치적 한계를 노출해야 했습니다. 역대 가장 강력한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 후보, 이재명 현 도지사가 대권에 도전하고 있기에 이 징크스가 깨질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세간엔 경기도지사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공관의 풍수지리'를 말합니다. 경기도청 후문에서 나가 팔달산 자락을 타고 10분 남짓 걸으면 경기도지사 공관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집무가 이뤄지기도 하고, 주요 인사들과의 저녁 식사도 진행됩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해외 교류가 끊겼지만, 종종 해외 손님이 방문했을 때는 그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됐습니다.
이 공관이 '무덤터'였기 때문에 그 좋지 않은 기운에 영향을 받은 경기도지사들이 성공일로를 걷지 못했다는게 괴담의 줄거리입니다. 먼 과거엔 이곳에 나병 환자를 묻기도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도청 출입 기자들은 이 괴담을 자주 대화 소재로 삼았습니다. 경인일보 4·5대(1967년~1971년) 편집국장을 지낸 이창식 전 국장을 만나 이 '괴담'의 진위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1930년 출생인 이 전 국장은 경기도청 이전 당시 경인일보 편집국장으로 수원에서 취재활동을 했기에 누구보다 정확히 전후 사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 전 국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경기도지사 공관은 무덤터는 아니었고 병원이 있었던 자리이며, 무덤 같은 곳은 아니지만 병원이었기에 '죽음'과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도지사가 도지사 출마를 결정할 무렵 도청 출입 기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지사 징크스에 대해 그는 "징크스를 깨는 게 내 특기"라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남경필 전 도지사는 공관을 사용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로 도민에게 개방했습니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공관 징크스'를 피하기 위한 우회 전략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죠. 이 지사는 취임 직후 공관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숙식을 해결하진 않아도, 그의 임기 내내 집무 장소와 저녁 모임 장소로 톡톡히 활용됐습니다.
바로 이 도지사 공관 괴담으로 "경기도지사가 대통령이 되려면 도청사를 이전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이지만 현 도청사에서 50년 넘게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빛의 가르침'이란 뜻을 지닌 광교로 도청사 이전을 앞둔 지금 이 징크스는 깨질 수 있을까요.
'2002년 합의 신청사' 도지사 바뀔때마다 부침
자족도시 광교신도시의 성공 '화룡점정' 평가
1년후 펼쳐질 수많은 결과들 경기도민들 관심
도청사 광교 이전이 가시화된 건 2002년의 일입니다. 그 해 11월 회동을 한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김용서 수원시장은 도청사 광교 이전에 합의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20년 전의 일인데 시일이 이렇게 걸린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이전 자체가 부침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7월 25일자 경인일보에는 "경기도 청사 이전 계획이 전면 재검토될 전망이다. 도청사를 옮기는 계획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 재직 당시 결정됐으나 김문수 지사가 도정을 맡게되면서 백지화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김문수 지사는 "현 도청사 건물은 지은지 40년이 넘어 매우 낡았지만 이전하는데 약 5천5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옮기는 것이 경기도의 미래와 광교신도시 발전을 위해 좋은지, 또한 현 장소에 건물을 재건축하는 방안 등의 여부에 대해 여론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토론과 논의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상황은 2008년~2009년 금융위기 이후 더 악화됩니다. 금융시장 경색으로 건설 경기도 얼어붙게 됐고, 지금은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되는 광교도 '토지대금 분할납부'라는 고육책을 동원해야 할 정도(2009년 4월 13일자 보도=광교 '토지대금 분할납부' 파격공급)로 어려운 처지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5천억원 이상을 들여 도청사를 이전하는 게 맞는지 회의론이 더 힘을 받게 됩니다.
2009년 경기도의회 정례회 발언 한 대목을 통해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1월 정례회에서 장호철 당시 도의원은 "최근 언론에서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자꾸 갈아대면서 예산을 소진하던 지자체들이 이제는 호화청사 신축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행정의 효율성 등을 내세운 명분에도 불구하고 날로 악화되고 있는 도 재정과 정부의 행정구역 개편 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없이 4천978억원의 예산을 들여 청사를 이전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도가 지난 2007년 94억원을 들여 신축한 도청 제3별관에 이어 또다시 광교신도시로 청사 이전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재고할 의향이 없느냐. 청사이전보다는 현재의 도청사 부지를 보완해 도가 대한민국의 중심지로서 도민들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경기도가 경기도시공사(현 경기주택도시공사)를 통해 개발한 광교 신도시에 도청사 이전은 성공의 '키(key)'이자 화룡점정으로 평가됐습니다. 베드타운이 아니라 자족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업무 시설 입점이 필수였고, 그시발점에 도청사 이전이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광교 입주민들도 마찬가지여서 이전 무산 시엔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였습니다. 남경필 도지사는 취임 이후 도청사 이전을 검토해 신뢰문제이기에 도청사 이전을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처음 도청을 출입하며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물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남 지사는 "소송으로 가면 패소 확률이 높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도청사 이전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답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지사 공관 괴담과 부침이 많았던 도청사 이전의 히스토리를 거쳐 광교 도청사는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도청사는 대권 도전 성공과 광교의 화룡점정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질까요. 우리는 이제 1년 안에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