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일대 90만㎡를 개발하는 사업에 민간업자·정치권·공공기관·법조인이 얽힌, 이른바 '대장동 의혹'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검경 수사로 2차 국면을 맞았습니다. 언론의 의혹 제기에서 시작해 정치권에 공방을 주고 받는 1차 국면부터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2차 국면을 지나 대장동 의혹이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를 가늠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쏟아진 '말'들을 통해 대장동 의혹의 처음과 끝을 들여다 봅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의혹은
투기-토건 세력의 공작"
-더불어민주당 안양만안 강득구 국회의원-
대장동에 '투기·토건 세력'이 등장한 건 2000년대 중반입니다. 성남 판교 남쪽에 자리한 산골마을 대장동에 개발 소식이 들린 건 2004년. 2009년 공공개발로 추진하다 2010년 공공개발이 무산됐고 2013년 민관공동사업으로 결정된 뒤 2015년 사업자가 선정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하죠. 본래 LH가 공공개발을 할 땅이었지만 2009년 LH통합 출범식에서 이 전 대통령은 "통합된 회사(LH)는 민간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며 이듬해 LH는 이 사업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떼게 됩니다.
이미 이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대장동은 민간 사업자 이모 씨가 일대 토지를 다수 매수하면서 사업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2010년 공공개발 무산 이후 민간개발로 진행될 뻔한 이 사업이 변화를 맞는 건 2010년 이재명 성남시장이 취임하면서부터로, 이 시장이 공공이 주도권을 쥔 공영개발 추진을 천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민간 사업자가 상당한 토지의 지분을 확보했고, LH와 같은 공룡 공기업이 아닌 성남시가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을 온전히 부담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민관공동개발을 택하게 된거죠. 토지 수용과 인허가 절차는 공공이 맡고 개발사업은 민간이 하되, 민간과 공공이 이익을 배분하는 형태가 채택된 것입니다.
여기서 '민'에 해당하는 민간 사업자의 내부에는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있었습니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2009년 이전부터 대장동 개발을 추진해 온 민간 사업자 이 모 씨와 만나게 됩니다.
합작 커넥션이 줄기만 잘린 상태에서
뿌리는 그대로 있다가
새 모양으로 얼굴을 바꿔
사업자로 나타난 것
-이재명 경기도지사-
적어도 2009년부터 민간 사업자 이모씨는 주로 저축은행을 통해 조달받은 사업자금 1천200억원을 투자해 토지 매입에 나섰습니다. 토지 가격의 10%를 계약금 명목으로 지급하며 개발권을 확보하는 식입니다. 토지주와 민간 사업자가 맺은 계약서만 있으면 저축은행이 계약금을 대출해줬습니다. 이를 업계에선 '브릿지 론'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개발 대상 토지의 70%를 민간 사업자가 확보하면 해당 사업자는 사업 우선권을 쥐게 됩니다. 민간 사업자 이모씨가 꿈꿨던 건 바로 이 그림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이 터지게 됩니다. 바로 저축은행 사태입니다. 브릿지론으로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이 연쇄 부도를 맞으면서 이모씨의 사업도 좌초됩니다.
사업 전면에서 이씨는 사라졌지만 이를 계승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천화동인의 남욱 변호사·정영학 회계사입니다. 이제부터 현재 연일 지면을 채우고 있는 바로 그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2009년부터 이씨의 자문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진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는 저축은행 사태를 기점으로 사업 전면에 등장합니다.
이들이 바로 "새 모양으로 얼굴을 바꿔 나타난" 사업자입니다. 이들이 세운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2015년 3월 대장동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됩니다. 화천대유와 화천대유의 관계사 천화동인이 바로 이번 의혹의 핵심입니다. 화천대유는 천화동인 1호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천화동인 1호는 전 경제지 법조팀장·부국장을 지낸 김만배 씨입니다.
천화동인 2호는 김씨의 부인, 천화동인 3호는 김씨의 누나, 천화동인 4호는 앞서 언급한 남욱 변호사, 천화동인 5호 역시 언급된 정영학 회계사, 천화동인 6호는 남 변호사의 지인인 조현성 변호사, 천화동인 7호는 전 방송사 기자이자 김만배 기자의 뒤를 이어 전 경제지 법조팀장을 맡았던 배성준 기자입니다.
2015년 이후 착착 개발이 진행돼 상당수 부지가 개발됐고, 분양을 통해 수익이 거둬졌고 그 수익이 공공(성남시)과 민간(화천대유·천화동인)에 배분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에게 각각 577억원과 3천463억원이 배당됐고, 아직도 사업이 진행 중이기에 배당금 규모는 더 커질 전망입니다. 수 명에 불과한 작은 민간 사업자 공동체가 수 천 억원의 이득을 가져간 것입니다. 이 돈은 모두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은 주민들에게서 나온 것이죠. 이것이 '대장동 의혹'의 얼개입니다.
대가성은 없었다.
정신적으로 좋은 귀감이 되고 심리적으로 조언하는
멘토 같은 분들이라 모셨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전 경제지 법조팀장-
민간 사업자를 둘러싸고 있는 외피에는 법조인들이 있습니다. 화천대유 고문 및 자문 역할로 박영수 전 특검, 김기동 전 검사장,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의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 중 박영수 전 특검은 딸이 화천대유 몫의 아파트를 분양 받았고, 권순일 전 대법관은 고액의 자문료,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은 남욱 변호사 사건 당시 담당 지검장이었다는 이유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곽상도 의원은 아들이 화천대유에 근무하고 퇴사하며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아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호화 법조 인맥을 두고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는 "제가 좋아하던 형님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조 출입 기자로 잔뼈가 굵은 김만배씨가 왜 화천대유·천화동인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천화동인 7호이자 전 방송사 기자인 배 전 기자가 왜 김씨 뒤를 이어 경제지 법조팀장으로 가게 됐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대장동 의혹이 토건 비리인 동시에 법조 비리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입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유 전 본부장의 변호인-
또 다른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토건 비리이자 법조 비리이자 공공비리라고 규정합니다. 바로 대장동 사업에 참가한 성남도시개발공사 때문입니다. 2015년 민관공동개발 사업 시행자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꼽힙니다. 성남도공 내부에서 유 전 본부장이 대장동 사업 전반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남 변호사의 인맥을 성남도공에 채용하고 민간 사업자 선정에 개입했으며 민간의 수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짰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입니다. 본래 노른자 땅으로 꼽혔던 대장동은 그 어렵다는 토지 수용 작업을 공공이 나서서 처리해주고,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갈 수 있게 되면서 수익성이 향상됐습니다. 모두 공공(성남도시개발공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던 결과입니다.
유 전 본부장이 정말 민간 사업자의 편에 서서 사업을 설계하고, 사업 시행을 진두 지휘했을까요. 진실이 밝혀질지는 검찰에 체포된 유 전 본부장이 입을 여는지 열지 않는지에 달렸을 것입니다. 유 전 본부장을 들여다보면 대장동 의혹이 세상에 터져 나온 계기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유 전 본부장에 앞서 검찰에 비공개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인물이 있습니다. 천화동인 5호 정영학 회계사입니다. 그는 김만배·유동규·정영학 본인 세 사람의 음성이 담긴 녹취록을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검찰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9년부터 대장동 사업에 관여해 온 핵심 정영학이 어째서 검찰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일까요. 유 전 본부장은 정 회계사를 두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통화한 적도 없다"고 말했지만, 유 전 본부장의 체포 이후 변호인은 유 전 본부장이 정 회계사의 뺨을 때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적어도 이들 사이에 돈 문제로 얽힌 갈등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 진중권 전 교수 -
대장동 의혹은 토건비리이자 법조비리이면서 동시에 공공비리일 수 있는 사건입니다. 토건비리를 확인하기 위해선 남욱·정영학이 중심이 돼 최소 2009년부터 추진돼 온 대장동 개발의 역사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남욱·정영학이 중심이 됐던 사업에 김만배씨가 합류하게 된 계기를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토건비리의 핵심에 있는 민간사업자는 지난 2011년 기존 민간 사업자 이모씨가 저축은행 사태 여파로 퇴장할 때 한 차례 그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흔들렸으며, 2015년 대장동 로비를 펼치던 남욱 변호사가 구속되면서 한 차례 더 요동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수 많은 법조인들이 대장동에 얽히게 됐는지를 살펴야 토건비리이자 법조비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유 전 본부장을 고리로 한 공공(성남시)의 역할과 개입이 확인되면 대장동 의혹은 곧 토건·법조·공공비리로 비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이 특이한 지점은 이들이 거둬들인 천문학적인 수익금의 흐름이 '배당금'·'퇴직금'·'자문·고문료'라는 명목을 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비리는 '대가성'에 기초합니다. 배당금은 회사의 정당한 수익이고, 퇴직금은 근로자의 정당한 수익이며 자문 및 고문료는 법조인의 정당한 수익입니다. 정당한 수익으로 죄를 물을 수는 없습니다. 벌써부터 대장동 의혹이 용두사미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