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는 늘 죄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죄인이 된 마음이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침 일터로 향하지만, 사랑하는 아이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종일을 보낸다. 희준이(가명) 엄마도 그랬다. 희준이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학원 한 곳이라도 더 보내고 싶어 엄마는 아침마다 아이 손에 돈을 쥐어주고 일터로 떠났다. 그러면서도 희준이 걱정 뿐이다. 오늘 하루는 누구랑 놀았을까, 무엇을 먹었을까, 학원은 빠지지 않았을까, 머릿속은 온통 희준이다.

동네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동네를 오가며 큰솔공원에 센터(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가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복지관이 새로 들어서나 생각했다.

큰 기대도, 관심도 없었다. 어차피 큰솔공원은 아이들 것이 아니었으니 공원에 들어서는 저 센터도 아이들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7.jpg
엄마와 함께 하는 주말.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우리 아들이 여기 오는 시간만 기다려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꾸 큰솔공원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목소리가 들리더니 아이들 무리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소리를 따라 눈을 돌렸는데, 그 곳에 센터가 보였다.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 동네에 아이들이 많이 사는구나.


희준이도 엄마와 함께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희준이가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저기 공원에 있는 센터 다니고 싶어. 아이들이 거기서 놀아."

희준이는 요즘 즐겁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를 따라다니며 오늘 하루 센터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느라 신이 났다.

"우리 아들이 여기 오는 시간만 기다려요. 다른 학원 가는 시간은 참 안 지키는데, 이 시간은 너무 기다리거든요. 일하는 동안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22.jpg
엄마와 함께 하는 주말.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열여덟번째 이야기- 엄마의 마음

마음 놓고 아이 돌볼 수 있는 환경 안돼

마땅히 아이 맡길 데 없었던 엄마들

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 생기고  

공원의 절반은 아이들 차지 '생활의 변화'

 

희준이 엄마 말에 광희(가명) 엄마, 지은이(가명)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마음 놓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잖아요.. 그동안은 마땅히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어요. 아주 어린 아이들이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봐주지만 초등학생은 정말 없거든요. 길 건너 아이들 돌봐주는 공부방(?)이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환경이 썩 좋진 않았구요. 아이들도 갈 데가 없어서 그런지 자꾸 공원 근처를 떠돌아 다니는데, 공원은..(잠시 침묵) 아이들 공간이 아니니까.."

마을 한복판에 센터가 들어오고 이제 공원의 절반은 아이들 차지가 됐다. 방과후, 주말이 되면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이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꽃도 피운다.

우리 아이도 그렇지만,
아이들 마음이 약해서
잘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데,
나는 잘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비단 그럴듯한 놀이터가 생겨서만은 아니다. 센터가 들어선 후 어떤 변화가 있었냐고 묻자 의외로 엄마들은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공간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아이가 집에 와서 센터에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선생님들이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이도 소신껏 말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할 줄 알게 되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사실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정서프로그램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런 것도 있고, 사실 어떻게 헤아려 줘야 하는지 잘 몰라서.. 우리 아이도 그렇지만, 아이들 마음이 약해서 잘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데, 나는 잘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2021111401000518800024703.jpg
엄마와 함께 하는 주말/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부모 마음은 '만국공통' 이다. 일하느라 바쁜 희준이 엄마는 "엄마랑 이거 같이 하고 싶어" 희준이 말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푸드테라피' 프로그램 문자 알림이 오자마자 신청했다. 마을의 어떤 아빠는 어느 저녁부터 매일 센터에서 놀았던 이야기를 즐겁게 말하는, 달라진 딸을 보면서 '어떤 곳 일까'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일하는 시간을 틈타 센터를 찾아왔다가 부모참여 프로그램도 함께 하게 됐다. 7살 딸을 둔 나 역시 엄마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맞아요"를 연발했다.

어색했던 봄을 지나 위기 속에서도 여름을 견뎠다.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던 시간만큼 우리의 가을이 깊어졌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