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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놀고 있는 아동. /경인일보DB

코로나19 사태가 깊어질수록 아동학대 사건도 정비례하듯 늘었다. 사건을 접할 때 마다 마음이 아팠다. 아동학대를 둘러싸고 어른들은 코로나로 힘들어서 그렇다고 말했고, 코로나로 문 닫은 학교 탓에 학대가 많은 것이라 원망도 했으며, 코로나를 막지 못한 정부 탓을 하기도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아동학대 사건을 취재하며 '코로나'는 어른들이 둘러대기 좋은, 아주 비겁한 변명이었다.

아동은 고유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인권을 가지며, 공평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건 특별한 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언제나 그래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어른들은 이 명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였을 때, 그때의 어른들이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배워본 적도, 경험한 적도 거의 없다. 만약 그때 권리를 존중받고 인정받았다면 지금의 어른들은 분명 다른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동등하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이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 인권선언 제 1조가 천명한 권리는 어른에게만 해당된 건 아니다. 모든 사람 속엔 당연히 아동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아동은 제외되기 쉽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 간단한 선언문은 한세기가 흐른 지금도 참 어렵다.

아동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건 1920년대 들어서다. 1923년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인 에글렌타인 젭이 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아동권리선언을 선포했고 이듬해 국제연맹이 '제네바아동권리선언'으로 채택했다.

'굶주린 아동은 먹여야 하고, 병든 아동은 치료받아야 하며,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동은 재활을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고아와 부랑아에게는 안식처를 주어야 한다'

'재난이 닥칠 경우 아동이 최우선적으로 구제받아야 한다'

'아동은 사회보장제도와 안전체계의 혜택을 마음껏 누려야 하며, 앞으로 생계를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에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비단 해외에서만 아동권리 옹호운동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어린이날'을 선물한 방정환 선생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23년 '소년운동의 기초조건'을 통해 어린이공약 3장을 선포했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야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야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산업화가 꿈틀대던 시기, '노동력'으로 치부됐던 어린이의 삶. 삶의 기본조차 선언문에 목소리 높여 '보장하라' 요구해야 했던 시대의 비극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유엔 창설 이후 1950년대 들어 아동권리 옹호에 대한 목소리가 더 커졌다. 1959년 11월 20일 유엔총회는 '유엔아동권리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전의 아동권리선언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권리들이 명시됐다. 특히 모든 아동이 모든 유형의 차별 등에서 벗어나 권리를 누릴 자격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 눈에 띈다.

'아동은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고,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건전하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신체적·정서적·윤리적·정신적·사회적 측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법률을 포함한 모든 수단에 의해 모든 기회와 편의가 모든 아동에게 제공받아야 한다'

'아동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름과 국적을 취득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아동은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아동에게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달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아동의 인격이 완전하고도 조화롭게 발달될 수 있으려면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다'

'아동에게는 최소한 기초단계의 의무교육을 자유롭게 받을 권리가 있다'

'아동은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보호와 구조를 받아야 한다'

'아동의 모든 형태의 무관심과 잔혹행위와 착취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아동은 인종차별과 종교적 차별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아동권리 옹호를 향한 발걸음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세계가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는 1970~80년대, 보호받지 못한 채 아스라이 스러져 간 아동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목소리가 더욱 커졌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989년 11월 20일, 10여년 간의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1991년, 우리나라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했다. 정확히 30년이 흘렀다. 30년 동안 세계인이 약속한 아동의 권리를 이렇게 자세히 읽어본 기억이 없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배워본 적도 없다.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들이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