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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조리읍에 위치한 말레이지아교의 현재 모습. 기사는 1960년 11월 20일 자 인천신문(현 경인일보)에 보도된 말레이지아교 개통식.

4월의 따스한 봄 햇볕이 내리는 날의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과 금촌·광탄을 오가는 차량들이 쉴새 없이 고산교를 통과하고 있다. 그 옆으로 생긴 지 오래돼 보이는 다리 하나는 과거 자신의 역할을 고산교에 잠시 양도하고 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오래된 다리 하나가 경기도근대문화유산인 '말레이지아교'다.

여느 도시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리 중 하나로 보이지만, 콘크리트를 긁어서 새긴 듯한 '마레이지아교'라는 글자와 건축연도 등이 말레이지아교가 떠받쳐온 시간의 무게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19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그 해 첫 해외순방일정으로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일정 중 하나로 한-말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1960년대에는 말레이시아가 보내준 원조금으로 한국 파주에 '말레이시아교(현 말레이지아교)'라는 다리를 지었다"며 오랜 우호 관계를 자랑했다.

이어 "20여년 후에는 반대로 한국기업이 말레이시아에 '페낭대교'를 세우기도 했다"며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두 교량을 통해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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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전 말레이지아교 전경. 지난해 6월. /조리읍마을공동체 협의회 제공

소박한 교량, 국가 경제의 자부심 되다.
길이 60m, 폭 7.4m. 2차선의 철근콘크리트로 어떠한 멋도 내지 않은 교량이다.

1966년 아직 우리나라가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의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할 때, 말레이시아 정부가 보낸 대외 원조자금 5천 달러 상당으로 건설이 추진됐다. 경기도와 당시 파주군도 각각 300만원, 200만원을 보태 경기북부 경제의 핵심 지역인 조리읍에 말레이지아교가 들어설 수 있었다.

경인일보(당시 제호 인천신문)와 대한늬우스 등에서 준공식 당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데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말레이지아교의 개통을 축하했다.

독특한 멋이나 건축양식이 있는 것도 아닌 말레이지아교가 주목을 받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 경제의 자부심을 상징이기도 해서다.

한국전쟁의 상처서 못 벗어난 1966년
말레이시아 정부의 '5천 달러' 원조

해외 원조가 필요한 시기를 보냈던 한국이 20년도 채 되지 않은 1982년 말레이시아에 동양 최장의 사장교를 건설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말레이시아 서북부 페낭섬과 육지를 잇는 14.5㎞ 길이의 교량 공사는 당시 현대건설이 맡았는데, 일본과 서독, 프랑스 등 12개국 41개 건설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공사를 수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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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20일 자 인천신문(현 경인일보)에 보도된 말레이지아교 개통식 기사의 사진. /경인일보 DB

귀한 해외원조, 왜 파주로 갔을까

국가의 곳간이 넉넉지 않았던 1960년대. 정부는 어렵게 따낸 해외 원조자금을 왜 파주 조리읍에 투자 했을까. 조리읍은 미군부대와 육군 1사단이 위치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건배(80) 봉일천 숨길 해설사는 "해음령(남한)에서 송도(북한)를 오가는 길이 조리읍이었다"며 "도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남북을 오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인 만큼 국군과 미군이 주둔하면서 말레이지아교가 군 전략상으로도 상당히 중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조지훈 시인이 납북된 아버지를 찾아 남과 북을 헤매면서 쓴 시가 '봉일천 주막에서'다. 조리읍 봉일천의 한 주막에서 갈 곳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의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18만8천평' 미군부대 파급력 가져
남북을 오가는 파주 조리읍에 설치


안보 전략상으로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가치도 상당했다. 1960년대에는 외화벌이가 변변치 않은 시절이었는데, 18만8천평에 달하는 미군부대(캠프하우즈)는 지역경제에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은상(66) 봉일천 7리 이장은 "미군들이 아침마다 구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미군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말레이지아교를 통해 왕래했다"고 설명했다.

인근에 우시장(공릉시장·현 봉일천시장)이 있어 큰 돈이 오가는 파주의 경제 1번지였다는 점에서도 말레이지아교는 경제적으로 필요한 교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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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지아교의 표지석.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말레이지아교가 숨겨놓은 이야기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나라인 말레이시아는 왜 갑자기 대한민국 정부에 원조자금을 전했을까. 또 말레이시아가 보내온 5천 달러는 당시 얼마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중요한 교량에 국가 이름을 붙였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찾기 어려웠다. 다만 이건배 해설사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각종 자료를 뒤지고 분석해 힌트를 찾아내 '외교전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호적 관계 쌓으려 국가 이름 붙여
20년후 반대로 '페낭대교' 세우기도


말레이시아가 지원한 5천 달러는 당시에도 145만~165만원 정도였다. 경기도와 파주가 300만원, 200만원을 추가로 들였다는 점에서 꼭 말레이시아의 지원 없이 지을 수 없는 교량은 아니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1960년 2월 정식 수교를 맺었지만, 그보다 먼저 북한은 말레이시아의 독립선언이 이뤄진 메르데카 광장에 국기 게양대를 선물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다시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면 단 한 국가의 도움이라도 절실한 상황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쌓기 위한 경쟁을 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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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19일 말레이지아교 개통식에 참석한 내빈이 축사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DB

이건배 해설사가 분석하기로는 이 같은 시대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말레이시아의 이름이 들어간 시설을 만들어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외무부장관이 되기 전 맡았던 직책이 말레이시아 특명전권대사(1964~1967)였다는 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아울러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미군도 함께 이용하는 시설에 국가이름을 붙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교육활동가인 송경아(50)씨는 "미군부대 앞에 말레이시아의 이름이 들어간 교량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북한을 향한 선전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웃이 통하는 말레이지아교
말레이지아교 준공식 기록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자료마다 눈에 띄는 흰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주요 교량이나 도로 개통식에는 해당 지역의 최고령 노인이나 원로를 모시는 전통이 있는 데 말레이지아교의 준공식 역시 우리나라의 전통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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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19일 말레이지아교 개통식에 참석한 마을주민을 비롯한 내빈들이 말레이지아교를 통행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DB

시간은 흘러 2022년. 비록 안전상의 문제로 차량 통행은 중단됐지만, 지역 주민들은 말레이지아교를 비롯한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을 통해 하나로 뭉치고 있다.

개통식에 등장한 '흰 두루마기' 노인
우리 전통 방식으로 행사 진행 '흥미'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봉일천 1·6·7리 일대를 근대문화마을로 조성했다. 근대문화마을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를 통해 ▲봉일천주재소 ▲민영달불망비 ▲3·1운동기념비 ▲송암농장 터 ▲봉일천주막 ▲1사단CP(봉일천초등학교) ▲대원교회 ▲봉일천시장(공릉시장) 등 봉일천 시장을 중심으로 밀집된 역사 자원을 발굴하고 연구했다.

그 기간만 6년, 현재는 해설사를 자체 운영하며 낙후돼가는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김은영(53) 협의회 사무국장은 "운정신도시를 시작으로 캠프하우즈 개발까지 조리읍 인근에 신도시가 들어설수록 기존 도시는 낙후될 수밖에 없다"며 "지역이 낙후되는 것을 막고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스스로 뭉쳤다"고 말했다.

이보현(50) 봉일천시장 상인회 매니저도 "기존 주민들과 새로 유입되는 주민들이 근대문화유산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이해한다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라며 "주민들 간의 조화가 낙후되거나 소외되는 지역 없는 개발, 상권활성화 등도 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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