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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BJ 살인사건의 가해자들은 지난 3월 피해자의 시신을 범행 장소인 자신들의 집에서 직선거리로 300m 가량 떨어진 이곳 다리 밑에 유기했다. 2022.5.2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폭행 장면과 가스라이팅 의혹의 단초가 될
유력한 증언을 인용한 기사가 보도됐고
이후 유가족은 경찰 및 검찰 수사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

3월 11일 자정을 넘긴 시간 수원시 권선구 달맞이 육교 밑에 낯선 여행용 캐리어가 도착했다. 가방 안에 담긴 건 다름 아닌 시신이었다. 캐리어를 들고 온 사람들은 속옷만 입힌 시신을 다리 밑 배수로에 던져두고, 나무 팔레트를 덮어 시신을 유기했다.

지난해 12월 24일, 걸어서 가해자들의 집으로 들어간 피해자는 결국 시신이 돼서야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일(3월 9일)에는 집으로 갈게요"라고 가족에게 말했던 피해자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피해자의 유족은 "반성과 뉘우침이 없는 파렴치의 극치"라며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사건 최초 보도(4월 4일자 인터넷 보도=[단독] 수원서 인터넷 방송 지인 살해… 10대·20대 남녀 4명 검거) 이후 수차례 접촉 끝에 2일 연락이 닿은 유가족은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묻어 두려 했던 사건의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유족은 "폭행 장면과 가스라이팅 의혹의 단초가 될 유력한 증언을 인용한 기사가 보도(5월 2일자 7면 보도=가스라이팅으로 죽음까지… 전문가가 본 'BJ 살인사건')됐고, 이후 유가족은 경찰 및 검찰 수사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며 사건 내막을 들려주게 된 이유를 밝혔다.

악몽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됐다
수원남부경찰서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통해 알게 된 20대 남성을 살해한 BJ와 공범 3명을 지난달 수원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 3월 자신들의 집에서 20대 남성을 구타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인근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사건 발단은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5월께부터 방송을 시청한 피해자는 가해자인 BJ의 초대를 받고 지난해 12월 24일 수원시 권선구 소재 가해자 자택을 방문한다. 지난 1987년 준공돼 30년을 훌쩍 넘긴 가해자의 아파트는 57㎡~74㎡의 소형 평수로 이뤄져 있다.

가해자가 거주하는 2층 맞은 편에서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은 2일 "앞집에 여러 명이 살았다. 평소에도 노래를 자주 불렀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게스트로 알게된 악연이 도화선
BJ 초대 받고 가해자 자택 방문

가해자가 활동한 인터넷 방송 'H라이브'는 호스트(BJ)의 초대로 게스트(시청자)들이 입장하고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부르거나 개인사를 주고받으며 방송을 이어간다. 단순히 좋아하는 BJ와 시청자의 만남인 줄 알았던 방문은 12월 29일 수상한 낌새를 보이기 시작한다.

피해자 명의로 BJ 자택에 인터넷·TV 결합 상품이 설치된 것이다. 가해자들은 결합 상품 설치의 사은품인 40만원 상당의 전자상품권을 피해자로부터 전달받기도 했다. 이즈음 피해자는 어머니에게 "다시는 BJ 형을 만나지 않겠다. 또 가면 날 죽일 것 같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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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BJ 살인사건이 일어난 수원시 권선구 4층 짜리 아파트 모습. 가해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이곳에서 피해자가 숨지는 범행이 일어났다. 2022.5.2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 폭력과 착취는 심해졌다

엄마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요. 4천500만원 낼 수 있어요?

잠시 집으로 돌아왔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에게 돌아간 건 1월께다. 피해자가 남의 집에 가는 걸 걱정한 어머니는 가해자에게 "아이가 병원치료도 받아야 하고 복용하는 약도 챙겨가지 못했으니 빨리 귀가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피해자는 고등학생 시절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판정을 받았고,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 경계선 지능을 확증 받아 계속 통원·약물 치료를 이어왔다. 이런 어머니의 요청에도 가해 BJ는 "나도 애(피해자)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발뺌했다. 당시의 귀가 요청은 피해자 가스라이팅 작업의 소재로 악용된 것으로 보인다.

 

유족 측은 "가해자가 어머니의 전화를 문제 삼았어요. (가해자가) 4천500만원 짜리 면접을 보는데 네 어머니가 전화해 (면접을) 망쳐놨으니, 네(피해자)가 4천500만원을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지 않으면 네 어머니에게 받아낼 것이라고 겁박했어요"고 전했다. 

"가지 않겠다" 말했지만 또 찾아
이때부터 폭력·착취로 고통받아
갈취당한 금액만 1천만원 상당
실제로 피해자는 당시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엄마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요. 4천500만원 낼 수 있어요?"라며 울먹이며 말했다. 폭력과 착취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가해 BJ는 피해자와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해 피해자 신분증을 재발급받았고, 피해자를 물류센터 상·하차 작업장에 취업시켰다. 급여는 가해자 통장으로 이체됐다. 피해자가 사용하는 직불카드도 가해자가 사용했고, 가해자 집에 가기 전에 모아둔 돈도 야금야금 자신의 통장으로 이체하기 시작했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이뿐 아니었다. 가해 BJ와 공범인 그의 아내가 쓰는 고가 휴대전화를 피해자가 개통했고 일체 비용을 부담했다. 유족 측은 이렇게 갈취당한 금액이 1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거짓으로 가린 진실, 피해자는 마지막까지 그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집에 가기 원할 때까지 잘 데리고 있겠습니다

피해자가 이런 상황을 모면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월께 피해자가 가해 BJ와 함께 피해자의 할머니 집을 방문한 것이다. 쌀·김치·고기 등을 챙겨가던 이들은 근처에 거주하는 피해자 어머니와 마주했다.

가해자는 "제가 돈 쓰는 법, 청소하고 밥하기, 빨래, 설거지를 가르치고 있어요. 제가 아는 경찰도 많고 자선 사업가들도 알고 있으니 (피해자가) 집에 가기 원할 때까지 잘 데리고 있겠습니다"고 설명했다.

유족 측은 이즈음 통원·약물 치료가 중단되면서 피해자의 행동과 말이 과격해지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폭행이 시작된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할머니 집을 찾았던 피해자는 한쪽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유족과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건, 밸런타인 데이를 하루 앞둔 2월 13일이다.

피해자는 "(가해 BJ의)사정으로 집으로 갈 수 없어요. 대신 3월이나 4월에는 꼭 갈게요. 3월 9일 대통령 선거 투표일에는 가서 투표하고 싶어요"고 전했다. 유족이 들은 생전 마지막 육성이었다.

유족이 들은 생전 마지막 육성은
"대통령 선거일엔 집으로 갈게요"

3월 7일에서 10일 사이 가해 BJ와 공범 3명은 자택에서 피해자를 주먹과 발 등으로 폭행하고 야구 방망이로 때려 그를 숨지게 했다. 이후 다음 날인 11일 심야를 틈타 시신을 유기했다.

이들은 사건 이후인 같은 달 12일·15일 피해자 명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소액결제를 한 것으로 확인된다. 게다가 같은 달 23일 공범의 SNS에는 음식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사이 차례로 코로나19에 감염된 피해자 가족은 격리 기간이 끝난 3월 27일 가해자 집을 찾아갔고, 28일·29일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하다 다시 4월 1일 집을 방문했다.

이날은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가해자 때문에 경찰을 대동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가해자는 피해자 휴대전화 위치가 이 집으로 확인된다는 경찰의 말에 "나는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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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BJ 살인사건이 일어난 수원시 권선구 4층 짜리 아파트 모습. 가해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이곳에서 피해자가 숨지는 범행이 일어났다. 가해자가 구속 상태라 우편물이 쌓여 있는 모습. 2022.5.2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는 가해자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본인 편에게는 모든 것을 내어주던 아이인데
그런 점을 악용해 범죄에 이용당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유족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악행은 피해자의 실종 수사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이어졌다.

당시 가해 BJ는 "제가 지상파 D드라마(실종 수사도 다루는 군 검사를 소재로 한 미니시리즈)에 단역 출연했어요. 실종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라며 배우를 사칭해 말하거나 경찰이 피해자 휴대전화 위치가 가해자 집으로 나오는 이유를 묻자 "피해자가 제 휴대전화를 가져가고 최신 휴대전화는 두고 갔다"고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여기에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입고 나간 옷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하는 등 수사 선상을 어지럽히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야구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 유기하고 경찰 수사에 혼선
죄책감 없는 가해자들 모습 '소름'
결국 유족은 지난 4월 4일 새벽, 경찰로부터 피해자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유족은 피해자가 숨진, 악마의 소굴이었던 그 집에서 피 묻은 가방을 발견하고 오열했다.
 

지난 4월 6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악마를 만나고 말았던 피해자는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례식을 열고 세상과 이별했다.


"잘 웃고 잘 울고, 감정 기복이 심했어요. 소심하고 겁도 많았고요. 친한 친구와는 잘 지내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낯을 가렸어요. 길바닥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 못해 주머니에 담아오던, 동정심 많고 부탁 잘 들어주던 정 많은 그런 아이였어요. 본인 편에게는 모든 것을 내어주던 아이인데, 그런 점을 악용해 범죄에 이용당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BJ와 공범 3명은 2일 살인, 사체유기 및 사체유기방조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경찰에 자백을 한 20대 남성은 사체유기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시은·이자현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