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년이 흘렀다. 다 자란 아이가 내 옆을 스쳐 가면 내 아이인 줄 알 수 있을까. 1989년 7월 부산 남구 용호동에서 딸 장정훈양을 잃어버린 부모는 지금도 아이를 기다린다.
실종 당시 파란 옷… 보조개 특징
"제보는 없고 남은 건 사진 몇장뿐
만나면 사랑한다고… 안아주고파"
만 20개월이었던 정훈양은 할머니 집 대문을 나간 뒤 실종됐다. 사건 당일인 7월 7일 오전 8시30분께 정훈양의 아버지는 아이를 돌봐주던 친할머니로부터 "아이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정훈양 아버지는 곧장 집으로 내달렸고 인근 파출소에 수색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의미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웃에게 수소문했지만, 정훈양을 목격한 이는 없었다.
정훈양 어머니 이향순씨는 "남은 건 아이 사진뿐"이라며 "아이를 잃어버렸을 당시 현수막, 전단 등 활동을 제대로 못 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뒤 방송에 아이 신상도 올렸고 해외 입양기관에까지 문의했지만 여태 제보조차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현재 수원에 살고 있는 정훈양 부모는 틈날 때마다 부산을 찾아간다. '아이를 목격한 이가 있을까'하는 마음에서다. 향순씨에 따르면 실종 당일 정훈양은 위아래로 파란색 옷을 맞춰 입었다. 양쪽 얼굴에는 쌍꺼풀과 깊게 팬 보조개가 있다.
"다시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며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그간 고생했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고 정훈양 부모가 말했다.

순식간에 30대 낯선 여성과 사라져
"'아이 잃어버린 사람' 매일 자책
늦더라도 얼굴 꼭 한번만 봤으면"
1989년 5월 18일 생후 7개월이었던 한소희양은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자택에서 어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낯선 여성과 함께 사라졌다. 당시 마을에는 '보증 선 사람을 찾고 있다'는 한 30대 여성이 찾아왔다. 소희양은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느라 잠시 등을 돌린 사이 그 여성과 함께 실종됐다.
어머니 이자우씨에게 소희양이 없는 삶은 버거웠다. 자우씨는 "맨발로라도 쫓아나갔어야 했는데 남편과 경찰에게 전화한 뒤 기다렸다"며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일 자책하며 살았다. 길 가다 누군가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나에게 아이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고 말했다.
늦더라도 아이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어요
이듬해인 1990년 자우씨는 동네를 떠났다. 자우씨는 "하나 남은 아들마저 어떻게 될까 싶어 이사하면서 시댁과 살림을 합쳤다. 아이를 잃어버렸던 마을 근처를 방문한 김에 최근 이전 집을 방문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울먹였다.
[[관련기사_1]]그는 장기실종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우씨는 "지속적인 관심과 제보가 중요하다. 제보가 실종 아동을 찾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부모가 없는 주변인에게 유전자 등록을 권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들 부모의 바람은 단 하나다. 잃어버린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그저 그뿐이라고 한다. "늘 마음이 아파요. 그렇게 3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늦더라도 아이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어요."
/이시은·이자현기자 see@kyeongin.com
실종된 장정훈양과 한소희양을 목격했거나 행방을 아는 분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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