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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5일 오전 8시 16분. 오산 죽미령에서 지축을 흔드는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한국전쟁에 미 지상군 참전을 알리는 소리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일본에 주둔하던 미 제24사단의 일부 병력이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했다.

7월 1일 더글라스 C-54기를 타고 미군 540명이 일본 후쿠오카를 출발해 부산에 도착했다. 지휘관을 맡은 제21연대 제1대대장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로 불린 이들은 연일 쏟아지는 장맛비를 뚫고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다시 대전에서 오산 죽미령으로 이동해 전선을 형성했다.

조그마한 능선이지만 경부국도와 철도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에서 스미스부대원들은 향후 3년여간 이어진 전쟁의 신호탄을 쏜 셈이다.

1950년 7월5일 오산 죽미령서 '미군 첫 전투'
당시 주역 '스미스 특임대' 장병들 휴전후 방한
540개 돌로 '구 초전비' 쌓아 전우들 희생 기려
개인 땅에 지어져 이전… '신 기념비' 건립돼

'옛 기념비 동판' 한때 분실… 하와이서 발견
지갑종씨가 사들여 미군 도움으로 들여와
'KSC 안내판' 1972년 미군이 주변 정리뒤 부착
2020년 죽미령에 스미스평화관·평화공원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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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죽미령에 위치한 UN군 초전기념비. 1955년 한국전쟁에 참여한 스미스부대원들이 첫 전투에 참전한 450명을 상징하는 450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경기도 지정 근대문화유산.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유엔군 초전기념비
오산에는 두 개의 초전기념비가 있다. 구분하기 쉽게 '구(舊)'라는 접미사가 붙은 초전기념비는 한국전쟁이 중단된 직후 1955년 스미스 부대 장병들이 돌아와 전사한 전우를 기리며 540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전투 당시 B중대 1개 소대가 배치됐던 99고지에 위치해 1990년대까지 오산주민들 사이에서 'UN탑'이라고 불렸다.

또 하나는 1982년 4월 건립된 것으로 1980년 화성문화원장이 국방부장관과 교통부장관, 경기도지사 등에 건의해 마련된 '신(新) 초전기념비'가 있다.

이 가운데 구 초전기념비는 불리한 전황 속에서 역사성을 인정받아 ▲초전기념비에 부착됐던 옛 동판 ▲한국노무재단(KSC) 안내판과 함께 경기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들 경기도문화유산은 UN군 초전을 기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하나하나 흥미로운 스토리를 갖고 있다. 먼저 구 초전기념비는 현재 유엔군 초전기념관 뒤편이 원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초 개인 소유의 땅에 허가도 없이 건립된 초전기념비이기에 이전이 불가피했다.

1950년대 민둥산에 들어서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초전기념비가 세월이 지나 수풀에 가려지고, 또 지역이 개발되면서 이전하게 됐다는 이야기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옛 동판이다. 1955년 초전기념비가 들어서고 그 의미를 설명한 동판이 부착됐는데, 1963년 도난당했다. 아마 구리(銅)값을 탐낸 누군가 푼돈이라도 마련해 보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64년 정부가 이를 되찾아 미8군에 전달했으나 다시 분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동판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지갑종씨가 1977년 미국 하와이 골동품점에서 동판을 알아보고 500달러에 사들여 1978년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미 25사단의 도움을 받아 들여온 것이다.

KSC 안내판은 1972년 9월 20일 미 제8군·제802공병대·제22KSC중대에서 주변을 정리한 뒤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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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군 초전기념비 주변 정리작업을 마친 뒤 KSC중대에서 이를 인증한 안내판. 경기도 지정 근대문화유산.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UN군 지상군의 첫 전투를 기억하다
더위가 시작된 6월 초의 오산 죽미령은 잘 닦인 도로와 말끔하게 지어진 유엔군 초전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도 한 눈에 보훈시설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단지 옛 전쟁의 상흔뿐 만이 아니었다.

보훈의 달을 맞아 견학을 온 유치원생들의 발랄한 모습과 기념관 주변으로 조성된 공원에서 자연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평화의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2013년 5월 개관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보훈시설의 정석대로 잘 꾸며진 모습이다. 정문 앞에는 F-86F세이버 전투기를 비롯한 전차와 장갑차 등이 전쟁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그 안에는 영상과 각종 유물로 전쟁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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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군 초전기념비 건립 당시 기념비에 부착돼있던 동판. 2차례 분실됐으나, 1977년 미국 하와이 골동품점에서 발견돼 유엔군초전기념관에 기증됐다. 경기도 지정 근대문화유산.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또 UN군으로 첫 전투를 벌인 540명의 이름이 적힌 명판이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상상하게 한다.

이들은 첫 전투부터 한국전쟁에 참가한 만큼 대부분 전사,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전해져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가운데는 국군이지만 당시 미 제24사단 제52포병대대에서 교육을 받다가 막 귀국한 윤승국 대위가 스미스 부대의 연락장교로 명판에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어 한국전쟁이 관통한 한 남자의 삶을 상상해보게 한다.

2020년 7월 개장한 스미스평화관과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은 한국전쟁을 과거의 이야기로 남겨놓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당겨오는 역할을 한다.

내년 3월까지 진행되는 기획전 '프로젝트 솔져 PROJECT-SOLDIER'는 참전용사의 모습과 그들의 자부심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가 RAMI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쟁으로 고통받았지만 평화를 수호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노병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밖에도 주민 친화적으로 꾸며진 평화공원의 다양한 조형물과 놀이터가 특별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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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2일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원들의 모습. /유엔군 초전기념관 제공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고아라 사무국장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누군가가 피를 흘린 대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구술채록사업을 진행한 그는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시절 오산에 거주했고, 지금까지 고향을 지킨 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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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7월 5일 제9주년 추도식에서 마을 주민과 학생들이 UN군 초전기념비를 향해 묵념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고 사무국장은 "담담한 어조로 누이와 사촌 동생을 잃는 과정을 묘사해준 어르신을 잊지 못한다"며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밭일하러 간 부모님을 찾으러 갔다가 봉변을 당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담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평화는 당연한 듯하면서도 일순간 잃을 수도 있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종만·윤진구·김태원씨와 이순진·이웅진 형제 등과 같이 치열한 격전지였던 오산에서 나고 자라 청년이 됐다가 이제는 노인이 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특별기획전시 '기억의 조각을 모으다'를 통해 전하고 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