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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최근 산사태로 심각한 피해를 본 광주시 남한산성면 검복리마을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 거주지에서 주민들이 이재민들에게 나눠 줄 도시락을 분배하고 있다. 2022.8.1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지난 폭우로 임시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은 무더위에도 샤워는 고사하고 세면대에서 겨우 세수 정도만 하거나 얇은 매트에 누워 잠을 청해야 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침수됐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더 두렵다고 입을 모은다.

18일 오전 안양 석수3동 행정복지센터 1층에는 양수기 50여대와 펌프, 장화가 어지럽게 놓여 있는 등 지난날 집중 호우가 할퀴고 간 후폭풍을 짐작게 했다.

임시거주시설내 텐트생활 불편
"화장실 공동사용 코로나 위험"
"폭우때 죽을 고비" 귀가 꺼려
마을회관 부족… 자녀 학교 '막막'


이곳 3층 강당에 마련된 임시거주시설에서 만난 이모(30대 후반)씨는 텐트생활이 "당연히 불편하다"며 고충을 이야기했다. 이씨는 "샤워부스까지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1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잠깐 샤워만 얼른 하고 다시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이씨는 현재 3.3㎡ 짜리 텐트에다 마련한 너비 30㎝ 남짓한 매트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차라리 이곳이 더 낫다고 했다.

이씨는 "화장실을 같이 써서 코로나 위험부담이 크지만,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고 무엇보다 물이랑 곰팡이를 안 봐도 된다"며 "반지하에서 7년째 살고 있는데 침수를 직접 겪으니 물이 너무 무섭고 반지하층 자체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어제는 막막해서 종일 울다가 수면제 두 알 먹고 겨우 잠들었다"고 토로했다.

빗물을 퍼내느라 담이 결려 오른팔에 동전모양 파스 8개를 붙였다는 정재오(83)씨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4인 가구인 정씨의 가족은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져 2년 전 반지하로 이사했다.

정씨는 "아들 둘이 지금 청소하고 있는데 하수구 물이 역류했는지 아무리 닦아도 냄새가 안 빠지고 있다"며 "반지하가 싫어도 지금 경제적으로 다른 집을 구할 형편이 아니다. 다시 돌아가야 된다"며 눈물을 훔쳤다.

상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인 기숙사 형태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은 다시 돌아갈 걱정에 눈앞이 캄캄하다. 군포 산본동 군포문화재단 수리산상상마을에서 만난 이창환(60)씨는 33㎡ 남짓한 공간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2층에 있는 이씨의 임시 숙소로 들어서자 냉장고와 싱크대는 물론 주방과 안방이 구분돼 있는 등 작은 면적의 공공임대주택과 비슷했다.

이씨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몸이 안 좋았는데 이번 폭우 때 119에서 안 구해줬으면 정말 죽을 뻔했다"며 "솔직히 돌아가기가 두렵다. 그냥 여기서 1년이고 계속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씨의 바람과 달리 수리산상상마을 임시거주시설에서는 최대 6개월까지만 거주할 수 있다.

군포시 재난구호쉘터 (13)
이번 폭우로 수도권 등 각지에서 이재민들이 대거 발생했다. 군포시 산본동 늘푸른노인복지관에 마련된 이재민들을 위한 재난 구호 셸터의 모습. 2022.8.1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반지하가 아니어도 자택 피해가 심각한 이재민들 역시 귀가가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같은날 오후 광주시 남한산성면 검복리마을회관은 여전히 봉사자와 주민 수십 명이 삽과 빗자루를 들고 수해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다. 소방과 중장비 차량을 따라 골목길을 오르니 산자락 바로 아래 위치한 여러 빌라의 저층 벽면이 뜯긴 채 실내 골격이 드러나 있다.

복구공사 현장을 지켜보던 한 빌라 주인 이미량(50대 여성)씨는 "저희 건물 입주민 전체가 밤중에 급하게 대피해야 했는데 마을회관 공간이 부족해서 겨우겨우 친척 집이나 지인 집으로 대피한 주민들도 많다"고 말했다. 검복리에서 산사태로 대피한 주민은 30여 명에 달하지만, 마을회관은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지자체와 여러 봉사단체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주거지가 심각하게 훼손된 이재민들은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열흘째 대피 생활 중인 이씨는 "공사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버틸지도 문제지만, 집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지 걱정된다"며 "아이 딸린 집은 당장 학교가 개학하면 어떻게 통학을 시킬지도 문제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기도 했다. 검복리 부녀회장 전용여(56)씨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데는 3~4주 걸린다 해도,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으려면 산사태 예방 공사를 해야 하는데 사실상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불안감을 표출했다.

22일께 특별재난지역 선포 예정


한편 행정안전부는 호우 피해가 큰 일부 지역을 오는 22일께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17일 기준 도내 호우 피해 이재민은 637가구 1천260명으로 주민센터와 마을회관 등 83개 임시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신지영·수습 김산·수습 유혜연 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