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갈등 중재하는 부평 이웃소통방
25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갈등관리힐링센터에 위치한 '이웃소통방'에서 상담원이 이웃 간 층간소음에 관련된 상담을 하고 있다. 2022.8.25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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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붉히던 윗집과 툭 터놓고 대화를 하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이석구(가명·76)씨는 지난 2016년 아내와 사별 후 딸 내외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인천 부평구의 한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6층에 사는 이씨는 윗집 할머니가 TV 소리를 크게 키워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절구질하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등 밤낮으로 들려오는 생활 소음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씨는 수십 차례 윗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러봤지만, 할머니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 주민들에게 윗집 할머니의 정보를 직접 캐묻기도 했단다. 이씨는 스트레스로 불면증까지 생겨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복용해왔다.

그렇게 속앓이 하던 이씨는 부평구청이 운영 중인 갈등 중재 기구인 '이웃소통방'을 알게 됐다. 이곳의 도움을 받아 이씨는 최근 윗집 할머니의 자녀들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TV 소리 등을 크게 키워야만 하는 할머니의 사정을 알게 된 그는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며 "윗집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이후 소음도 많이 잦아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웃소통방'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는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등으로 자녀들에게 자주 화를 내곤 했었는데, 요즘은 많이 웃는다고 한다.

부평구 운영하는 '이웃소통방'
구도심 지역 갈등 완화 역할 커
교육 이수 주민도 일원으로 참여


인천의 한 기초자치단체인 부평구청이 지난 2020년부터 운영 중인 '이웃소통방'은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 누수, 쓰레기, 흡연 등으로 생기는 이웃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구도심인 부평구에는 빌라 등 다세대 주택, 연립주택 등 소규모 공동주택이 많다. 대단지 아파트와 달리 소규모 공동주택은 관리사무소 등 주민자치 관리 기구가 없어 이웃 갈등 중재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웃소통방'의 역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평구청은 갈등 조정 관련 교육을 이수한 주민을 일명 '주민조정가'로 선임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공동주택 관리사무소나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마을공동체 등을 대상으로 하는 '찾아가는 이웃소통방'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민이 이웃 갈등의 중재자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부평구청은 '이웃소통방'이 지역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평구 주민이자 '이웃소통방' 주민조정가들의 대표인 이용우 마을갈등조정단장은 "이웃갈등 대부분이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발생하는데, 서로 만나 대화를 하면 해소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웃과 갈등을 겪고 있는 구민은 언제든 이웃소통방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서울 운영 관련센터 1만428건 상담


서울에서는 '서울이웃분쟁조정센터'(이하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16년 설립된 센터에는 상담원 3명과 함께 변호사, 법무사, 변리사, 조정 전문가, 소음·누수 전문가 등이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 4월 윗집과 누수로 갈등을 겪다 센터의 도움을 받은 김성훈(가명·48)씨는 "센터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혼자 끙끙 앓고 있었을 것"이라며 "윗집 주민과 누수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긍정적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 센터는 설립 이후 올해 7월까지 총 1만428건의 상담 활동을 벌였으며, 1천768건의 갈등을 중재했다. 센터는 갈등 조정이 마무리되면 민법상 화해계약을 체결한다. 민법상 화해계약은 갈등이 재발해 민사 재판으로 가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센터는 갈등 중재에 실패하면 서울시청의 법률 상담, 법원조정센터, 민사소송 절차 등을 안내하고 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