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보도 내용을 정리하면 수원 세 모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암과 난치병에 신음하고,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지자체에 복지급여 등을 신청하지 않았다. 게다가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화성시, 실거주지는 수원시였던 탓에 두 지자체 모두 위기가정인 이들을 제때 발굴하지 못했다.
여기엔 중요한 내용 한 가지가 누락됐다. 수원 세 모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정부나 지자체에 단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이유가 빠져있다. 경인일보 취재팀은 세 모녀 가정의 지인들을 다시 찾아 그 이유를 물었고,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세 모녀 가정의) 큰아들이 죽기 전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했어요."
지난 26일 오후 수원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화성시의 한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오모씨를 만났다. 세 모녀 가정의 큰아들 A씨와 어린 시절 '동네 형·동생'으로 인연을 맺은 오씨는 A씨와 세 모녀가 그간 겪었던 어려움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세 모녀의 주소지가 오씨의 주택으로 등록된 이유도,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세 모녀 가정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A씨 아버지가 하던 알루미늄 제조업 사업이 1990년대 후반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초반 부도를 맞았다. A씨 아버지는 이때부터 방랑 생활을 했고, A씨와 어머니, 두 동생은 수원으로 도망치듯 이사갔다"면서 "채권자들이 이사한 주소지로 찾아 올 까봐 A씨가 우리 집에 주소지 등록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여년 전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긴 A씨와 세 모녀는 그때부터 월세방을 전전했다고 한다. 비좁은 집에 가족 4명이 모두 살 수 없어 세 모녀만 한 집에 살고, A씨는 정해진 거처 없이 지인의 집이나 찜질방 등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도피 생활을 하면서 세 모녀 가정의 생계는 수원의 한 설계사무소에 취직한 A씨가 대부분 책임졌다.
10여 년간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던 A씨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인의 추천으로 택배 기사 일을 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A씨의 수입은 가족 4명의 생활비로 고스란히 쓰였다. 그러던 중 A씨는 병원에서 희귀병 진단을 받은 뒤 몇 개월 간 투병을 하다 지난 202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둔 A씨의 마지막 걱정거리는 남은 세 모녀였다.
오씨는 "A가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면서 나를 찾아왔었다. 자기가 죽고 나면 아픈 어머니와 두 동생이 생계유지를 할 수 없으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한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결국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될 거라고 극구 반대했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워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면 거주지가 특정돼 채권자들이 집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걱정을 한 것이다.
[[관련기사_1]]오씨와 다른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세 모녀는 빚 독촉과 관련한 극심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딸은 20여 년전 아버지의 사업 부도 이후 집으로 찾아와 채무 상환을 독촉하는 채권자들의 폭력적인 모습에 정신적인 후유증이 생겼다고 한다. 5~6년 전쯤 어머니가 암에 걸린 뒤, 보험사로부터 받은 보험금 일부도 채권자들에게 압류됐을 만큼 세 모녀는 빚의 늪에서 오랜 기간 헤어나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원 세 모녀는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아니라, 빚 독촉을 피해 스스로 사각지대에 남는 선택을 한 것이다. 특히 이들 모녀는 외부인과 접촉하거나 도움을 받는 행위를 극도로 꺼렸다. 과거 화성시에서 함께 살던 한 이웃이 세 모녀에게 쌀과 직접 만든 김치를 주려고 수원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들 모녀는 "받지 않겠다"며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수원 세 모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이 생활고를 덜어줄 정부·지자체의 지원 체계가 존재함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의 복지급여 대신 빚 독촉이란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택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외부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던 큰아들 A씨마저 2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세 모녀의 생활고와 건강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다. 세 모녀는 끝내 지난 21일 수원시 권선구의 40㎡ 남짓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원 세 모녀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부와 경기도는 속전속결로 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보건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경기도는 '핫라인'을 구축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도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청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위기가정을 찾는 시스템이 강화되고, 다양해진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근래 쏟아진 이 같은 대책들이 수원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수원 세 모녀는 빚 독촉을 피해 스스로 사회 보장 제도 바깥에 있었고, 이는 기존 복지 사각지대와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역시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시스템의 한계'로 단순화하긴 어렵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특히 이들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심리상태 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심리부검'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원 세 모녀가 복지 대상자로서 요건을 다 갖추었는데 사회복지 시스템이 가동을 안 해 사망했다고 단순화하긴 어려운 부분이 많고, 기사로 접한 정보만으로도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여러 이슈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심리부검을 통해 이들이 겪은 어려움을 면밀하게 추적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심리부검 결과를 기반으로 수원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재흥·김준석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