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알려진 수원 세 모녀 사연을 정리하면 이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건 사실이다. 암과 난치병에 신음하고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지자체에 복지급여 등을 신청하지 않았다.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화성시, 실거주지는 수원시였던 탓에 두 지자체마저 이 위기가정을 발굴하지 못했다.

여기에 중요한 내용 한 가지가 누락됐다. 세 모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정부나 지자체에 단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실질적 이유다.

경인일보 취재팀은 이들 모녀가 복지급여조차 신청할 수 없었을 만한 특수한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존재를 알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지원을 요청 않은 이유. 또다시 이어질 수 있는 '○○ 세 모녀 사건'을 멈추려면 이를 밝혀야겠다고 판단했다.

수원 세 모녀가 한 줌의 재로 영면에 든 지난 26일 취재팀은 그간 취재 내용을 복기하며 이들 모녀 사정을 잘 아는 지인들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빚 독촉을 피하려 끝내 사각지대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세 모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한 '수원 세 모녀' 이야기를 다시 쓴다. → 편집자 주
'빚 독촉' 두려움에… 복지급여 신청 않고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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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편지들이 쌓여 있다. 2022.8.22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세 모녀 가정)죽기 전 큰 아들이 기초생활수급 신청하려 했어요
의지가 매우 강했죠
지난 26일 오후 수원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화성시 배양동)에 거주하는 오모씨를 만났다. 그는 세 모녀 가정의 큰 아들 A씨와 어린 시절부터 '동네 형·동생' 인연으로 이들 어려움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주민등록상 세 모녀 주소지를 자신의 주택으로 등록해 준 것도 이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오씨는 "A씨 아버지의 알루미늄 제조업 사업이 1990년대 후반 힘들어지더니 2000년대 초 부도를 맞았다. 이후 아버지는 방랑생활을 했고 어머니와 두 동생은 수원으로 도망치듯 이사 갔다"며 "채권자들이 수원까지 찾아올까봐 화성 우리 집에 주소등록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남편 사업 부도로 떠돌이 생활
생계 책임진 아들도 세상 떠나

A씨와 세 모녀는 20여 년 전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긴 이후 월세방을 전전했다고 한다. 비좁은 방에 네 식구 모두 살기 어려워 세 모녀만 한 집에 살고, A씨는 거처 없이 지인 집이나 찜질방 등에서 생활했다.  

 

아버지의 도피 생활 탓에 세 모녀의 생계는 수원의 한 설계사무소에 취직해 월급을 받던 A씨가 사실상 모두 책임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된 업무 등으로 건강이 악화하자 A씨는 택배 기사로 전업했지만, 이후에도 A씨 급여는 고스란히 네 식구 생계에 쓰였다.

이후 갑작스레 희귀병 진단을 받게 된 A씨는 2~3개월여 투병 끝에 지난 202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그때까지도 그의 마지막 걱정거리는 세 모녀였다.

오씨는 "(A씨가)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며 찾아왔었다. 그러면서도 죽고 나면 아픈 어머니와 두 동생의 생계유지가 어려워지니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해야겠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며 "결국은 못 했다. 남은 가족들이 '빚 독촉'에 더 시달릴 거라며 어머니가 극구 반대했다더라"고 안타까워했다.

두 딸과 남게 될 A씨 어머니에겐 기초생활수급자 등록 시 노출될 거주지로 몰려들 채권자들이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시스템 보완보다 "심리부검 통한 정확한 원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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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암과 난치병 등 건강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복지서비스는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23일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수원시 권선구 연립주택 내부. 2022.8.23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결국 수원 세 모녀가 정부나 지자체에 복지서비스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지난 20여년 간 이들을 괴롭힌 '빚 독촉'에 대한 두려움(8월22일 인터넷 보도=[단독] 수원 세 모녀, 실거주지 달라 공공 손길 못닿았다)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들 세 모녀는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아니라 빚 독촉을 피해 스스로 사각지대에 남는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세 모녀는 아들 A씨 이외에 외부인의 도움은 물론 접촉마저 꺼렸다.

과거 고향인 화성시에서 함께 살던 이웃이 세 모녀에게 쌀과 직접 만든 김치 등을 주려 수원 집에 방문했을 때도 이들은 "받지 않겠다"며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수원서 살았지만 주소는 '화성'
주소 노출 우려에 스스로 고립
집중추적 '심리부검' 도입 필요

이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외부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던 A씨가 2년여 전 세상을 떠나면서 세 모녀는 생활고에 건강상태는 더욱 나빠졌고, 끝내 지난 21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40㎡ 남짓 다세대주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현재 정부와 경기도 등 지자체들이 속전속결로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수원 세 모녀와 같은 사건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들 세 모녀는 빚 독촉을 피해 스스로 사회 보장제도 바깥에 있었던 상황이라 기존 복지 사각지대 문제와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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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현관문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2022.8.22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시스템 한계'로 단순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심리상태 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심리부검'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 대상자 요건을 갖췄는데 복지시스템이 가동 안 해 사망했다고 단순화하긴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심리부검으로 이들의 어려움을 면밀하게 추적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 모녀 사건 재발을 막을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배재흥·김준석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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