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수원 세 모녀'가 20년여 전까지 거주했던 화성시 배양동 옛 거주지 인근에서 만난 이웃들은 하나같이 세 모녀의 아버지(남편) A씨가 2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20년 11월 용인에서 생을 마감한 A씨의 장례는 친척 관계인 B씨 등이 대신 치렀고, A씨는 이후 용인의 한 추모공원에 봉안됐다. 화장을 한 유골은 이미 봉안당에 안치됐지만, A씨의 사망신고는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장례를 마친 B씨 등 친척들이 세 모녀에게 A씨 사망신고에 필요한 서류 등을 준비해 전달했지만 세 모녀는 결국 사망신고 절차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A씨 사망에 따른 상속개시 절차는 공식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A씨가 사업 부도로 떠안은 빚도 세 모녀에게 공식적으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등과 같은 채무 변제 또는 회피 기회조차 접하지 못하면서 이들 모녀가 장기간 A씨 대신 빚 독촉 부담을 떠안고 살아갔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만약 A씨의 사망신고가 이뤄져 세 모녀 가정이나 친척 등이 상속 절차에 나섰을 경우,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A씨의 사업 부도 빚은 까다롭지만 회피하거나 탕감할 수 있었다.
일단 채무자 사망으로 인한 상속개시가 진행되면 상속인 대상 선순위는 자녀(1순위)와 부모(2순위) 등에 있다. 여기서 배우자는 양 순위에 모두 해당할 수 있어 사실 최우선 순위나 다름없다. 형제자매와 이외 친척 등은 이후 순위에 해당한다.
고인이 된 A씨 부모를 제외하면 그의 배우자와 자녀 등 세 모녀가 1순위 상속 대상이 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상속개시와 함께 세 모녀에겐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이란 선택지가 주어졌을 것이다.
상속포기는 피상속인인 A씨의 채무와 재산 등은 물론 상속인 자격까지 전부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한정승인을 하게 되면 피상속인에게 있던 재산 만큼의 채무만 변제하고 나머지 책임은 지우지 않게 된다.
채무만 남아 한정승인 쉽지 않아
친척 피해줄까 상속포기 못한 듯
하지만 A씨로부터 상속받을 재산은 없는 반면 커다란 채무만 남았을 것으로 추정돼 한정승인이라는 선택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상속포기의 경우는 세 모녀 이외에 다른 친척 등이 모두 포기하지 않는 이상 차순위 친척에 채무가 넘어가는 점 때문에 상속포기 역시 선뜻 나서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상속 자체에 대한 부담감으로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을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세 모녀가 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기초생활수급 신청 권유를 마다하고, 빚 독촉이 두려워 복지 사각지대에 머무는 선택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사망신고로 인한 상속개시 절차 자체가 큰 부담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개인 회생이나 파산을 통한 빚 탕감이나 면책 수단조차 관련 변호사를 동원하지 않는 이상 일반인 혼자 진행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더군다나 빚 독촉 등에 따른 트라우마로 기초생활수급 신청 권유까지 마다했던 세 모녀 상황을 보면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무료 상담이 가능했던 수단조차 고민하지 않았거나 관련 정보마저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고리대출·채권추심 통제 마련을
결국 빚 독촉과 같은 채권추심 등에 대한 부담 탓에 복지서비스는 물론 개인회생·파산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주저하는 채무자들을 사각지대에서 꺼내 줄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약탈적인 고리대출에 내몰린 금융 취약계층은 돈을 제때 갚지 못해 불법적인 채권추심을 겪고, 수원 세 모녀의 사례처럼 빚 독촉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소를 만들지 않고 숨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마찬가지로 송파 세 모녀 사건도 딸들이 신용불량 상태에 놓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수원 세 모녀에게 닥친 비극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순 없겠지만, 빚의 굴레에 갇혔던 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고리대출이나 불법 채권추심 자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석·배재흥기자 joonsk@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