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게 진상됐던 경기 쌀은 전국 최고의 명품 쌀로 불린다. 경기도 농업의 중심이 쌀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 전반이 도시화가 된 와중에도 여전히 도내 시·군 상당수에서 벼농사가 이뤄지고, 지역마다 저마다의 특성을 담은 고품질 쌀을 수확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쌀 소비가 차츰 줄어들면서 그만큼 일반 소비자들이 경기 쌀의 우수성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드는 실정이다. 경기 쌀이 더 많은 도민들에게 사랑받으려면 행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6일이 '세계 식량의 날'이었던 가운데 위기에 처한 우리의 주식 쌀 소비 상황과 경기 쌀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 편집자 주·관련기사 3면([경기 쌀 소비 현주소·(上)] '고시히카리' '임금님표 이천쌀' 으뜸… "살땐 가격 가장 많이 봐")
화성시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김모(31)씨의 하루 식단을 보자. 출근하느라 바쁜 아침시간엔 식사를 거른다. 회사에 출근해 커피와 함께 빵이나 과자 등으로 허기를 달랜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거나 외부 음식점에서 해결한다. 오늘은 동료 직원과 함께 외부 음식점으로 향했다. 메뉴는 돈가스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후 저녁식사는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치킨을 시켜본다.
김씨가 이날 쌀을 먹은 것은 돈가스에 함께 나온 밥 한 숟가락을 먹은 게 전부다. 그 밥을 어디 쌀로 지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김씨의 집엔 즉석밥은 있지만 쌀은 없다. 즉석밥을 어디 쌀로 만들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현대인들 다수의 식생활이 김씨의 모습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1·2인 가구의 증가와 맞물려 많은 끼니를 외식이나 간편식으로 해결하는 점이 영향을 미친다.
이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이었다. 30년 전인 1991년에는 116.3㎏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반토막이 난 것이다.
반면 육류 소비량은 증가 추세다. (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1995년 소·돼지·닭고기 소비량은 1인당 27.45㎏이었지만 2021년엔 54.3㎏까지 늘었다. 26년새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1인당 쌀 소비량과도 거의 비슷한 수준에 육박했다. 주식으로서의 쌀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다.
"경기 쌀, 맛있지만 비싸서 못 써"
이런 상황 속 다른 지역 쌀보다 가격이 비싼 편인 경기 쌀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는 모습이다. 고물가 상황에 소비자들은 물론 도내 음식점들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 13일 수원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A(70대)씨는 해당 대형마트 PB상품 쌀을 구매했다. A씨는 "경기도 농촌에서 자라서 사실 경기도 쌀도 여럿 먹어봤다. 맛있긴 한데, 마트 쌀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날 A씨가 구매한 PB상품 쌀은 경북지역에서 생산한 쌀로, 가격은 10㎏에 2만3천원이었다. 반면 용인·여주지역 쌀은 10㎏을 3만9천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경기 쌀을 쓰는 음식점도 찾기 어려웠다. 수원시의 한 유명 고깃집은 강화섬쌀을 쓰고 있었다. 수원시 우만동의 한 김밥집과 권선동의 한 고깃집에선 신동진쌀을 사용하고 있었다. 영통동의 한식집에선 김제쌀을 주로 쓴다고 했다.
일부 '충성 고객' 고품질 경험 중요
음식점 관계자들은 모두 가격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깃집 사장 이모(40)씨는 "쌀을 많이 쓰는데 경기 쌀은 비싸서 쓸 수가 없다. 가격이 비슷하다고 하면 당연히 경기 쌀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식집을 운영하는 강모(61)씨도 "경기 쌀이 좋은 것은 알고 있는데 비싸서 부담이 있다. 단가 고려 없이 품질만 생각해서 경기 쌀을 사용하는 식당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경기 쌀을 먹는다는 소비자들은 가격이 비싸도 뛰어난 밥맛 때문에 '충성 고객'이 됐다고 답해, 경기 쌀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험치를 높이는 게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화성지역 쌀인 '수향미' 충성고객이라고 밝힌 이모(34·화성시)씨는 "다른 쌀도 먹어봤는데 수향미가 향이 구수하고 밥맛도 좋다. 어차피 많이 사지 않는데, 조금 먹어도 맛있는 쌀을 먹자 싶어서 수향미만 산다"고 밝혔다.
/강기정·서승택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