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에 마구잡이로 수용된 아동들은 당초 부랑아 갱생·교육이라는 목적과 달리, 각종 노역에 동원되며 '노동 착취'에 시달렸다.
경인일보가 확보한 당시 선감학원 근무자와 피해자 진술, 공문서 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학교에 다녔던 아동은 학교가 끝난 후부터,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아동은 종일 일을 한 것인데,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일을 못 하면 폭력이 가해졌다.
"…그 많은 농사를 짓고 작물을 키우고 했는데, 우리한테 이만큼도 준 거 없고 노임(임금)을 준 것도 없고 나온 물건을 우리에게 먹여준 적도 없고 그걸 다 어떻게 했느냐 말이지요.…내 품(일)을 못하면 저녁에 기합받고 얻어맞고 해야 돼요…무릎 같은데 상처 많은 사람은 다 조인트 맞은 거야"(1966년 선감학원에 수용된 피해자 녹취록)
당시 근무자·피해자 진술·공문 확인
생산품 팔아 인건비 아닌 운영비로
경기도로 관할기관이 넘어온 이후 1957년 제정된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는 선감학원의 임무를 이렇게 규정했다. 부랑아 수용보호, 자립 생활에 필요한 1인 1기의 교육지도, 농지 및 염전관리, 기타 학원 운영상 필요한 사항.
1963년 해당 조례가 전부 개정되면서 선감학원 업무는 부랑아의 수용구호, 부랑아의 지도 및 직업보도 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당시 선감학원에서 근무했던 이들의 진술을 보면 아동들은 조례에 규정된 것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1980년 경기도 부녀아동과의 선감학원 위탁 운영 계획을 보면 선감학원을 '도유재산 관리기관'으로 규정했다.
그러다 보니 취지와는 다르게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어요
직업으로 연결되려면 실습이 있어야 하는데
다양한 실습 거리가 없었어요
(1965년~1967년 선감학원 재봉반 담당교사)
이렇게 종일 아동들이 일해서 생산된 물품을 판 돈은 아동들의 인건비가 아닌, 선감학원 운영비로 쓰였다. 당시 선감학원 예산항목에서 원생을 위해 쓰인 예산은 '수용 관리' 항목이 전부였다. 1947년 11월 18일 경인일보 전신인 '대중일보'에 보도된 선감학원 기사에서도 선감학원은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운영됐다.
기사에는 경기도가 선감도에 거주 중인 일반 농가의 철거를 명령했으며 이를 통해 선감학원 경작 면적이 넓어져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그 수입으로 원아들의 갱생 후 생활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기(선감학원)는 수용시설이기 때문에 임금이라는 것은 노동의 대가인데,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독립자금을 줬는지 자립을 시켜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업무에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1980년~1982년 선감학원 회계담당 근무자)
14살 아동 '유흥음식점'에 보내기도
당시 문서를 살펴보면, 선감학원 폐지 결정에 따른 아동수용 전원계획에서 경기도는 총 75명의 원생 중 7명을 고용 위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위탁된 아동들은 주로 농업, 축산업 등에 종사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된 노동을 견디다 못해 도망갔다.
경기도는 고용 위탁된 아동들이 도망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배령'을 내리기도 했다. 경인일보가 확보한 1982년 9월 8일 경기도의 '가출아동 수배 의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감학원 수용 중 고용 위탁된 아동의 가출 신고가 있어 귀 시군에 수배 의뢰 하오니 관내에 널리 홍보해 수배에 힘써 주시기 바라며 아동이 발견되면 본도에 연락하기 바랍니다'.
당시 경기도는 이 같은 문서를 서울, 인천시에 보냈으며 문서에는 도망간 아동의 인상착의와 특기사항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김O호, 남, 15세, 키 160센티정도. 둥근 얼굴이며 머리 속에 칼로 그은 흉터가 7군데 있고 눈 밑, 왼손에 흉터가 있음'.
경기도는 도망간 이유를 아동의 탓으로 돌렸다. 고용주에 대해서는 미성년자들에 대한 보호 선도는 물론 기술 습득으로 사회 진출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욕이 절실하다고 한 반면 아동들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결함이 있는 아동들로 현재 고용된 생업에 적응을 못하고 이탈하는 사례가 많음'이라고 했다.
특히 이 가운데 14살이었던 한 피해 아동은 '유흥음식점'에 보내진 경우도 있었다. 황당한 것은 경기도는 고용주들로부터 아동복리법을 준수하라는 서약서도 받았는데, 1982년 당시에도 아동복리법상 14세 미만의 아동은 주점, 기타 접객 영업 등에 종사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선감학원을 탈출해도, 문을 닫아도 아동들은 쉽게 선감학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
/특별취재팀
※선감학원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