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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규칙 없이 들어선 용인의 어느 주택가. 예고 없이 나타난 한옥 담장이 시선을 끈다. 담장 바깥으로만 시간이 흘렀는지, 삐죽 고개를 내민 소나무와 그 사이로 한옥이 낯설게 보인다. 전통 담장은 이내 붉은 벽돌의 현대식 담장으로 이어지고, 그 끝에는 최근 지은 건물에 어울릴 법한 회색 철재 출입구가 있다.

짧은 걸음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이곳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404호)인 용인 마북동 장욱진 가옥이다. 한국 1세대 서양화가 장욱진 화백(1917~1990)이 영면에 들어가기 전 다양한 경향의 공존과 종합을 이룬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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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백의 마지막 작품 시기라고 할 수 있는 '마북동 시대'를 보낸 장욱진 가옥 전경.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장욱진과 닮은 고택
장욱진 화백은 서구식 회화기법을 사용하면서도 한국적인 선과 색을 창조해낸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양화가다. 그의 취향이 담긴 장욱진 가옥 역시 동양과 서양이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많은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 하나다.

2017년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등 여러 드라마 촬영지로도 주목을 받은데 이어, 최근에는 BTS의 리더 RM이 이 곳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그의 외국인 팬까지 찾아오고 있다.

한옥 출입구를 대신해 방문객들을 맞는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한옥 관리사다. 장욱진 화백의 가족을 돕고 집안일을 돌보던 관리인들이 묵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카페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이 역시 등록문화재인 한옥 안채·바깥채와 같은 시기 지어진 곳이지만, 손님을 맞기 위해 리모델링이 진행되면서 등록문화재로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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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백이 마지막 작품 활동을 했던 양옥 전경. 그의 1953년 작품 '자동차가 있는 풍경'과 같은 모습이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1884년 지어진 경기도 민가 형태 보존
'ㄱ'형 안채 'ㄴ'형 바깥채 붙여 'ㅁ'형태로
도시화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근대 민가
장 화백이 손수 구상한 양옥도 함께 보존
작품 '자동차 있는 풍경'속 이상향 그려
관리사를 지나면 'ㄱ자' 모양의 안채와 'ㄴ자' 모양의 바깥채가 나오는 데, 전형적인 경기도 전통가옥의 형태다. 장 화백은 노년에 병이 생기자, 병원이 있는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평생 고집하던 시골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당시 작은 개울이 흐르는 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건축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물이 됐다.

관리사와 한옥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걸으면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양옥 한 채가 한옥을 내려다보는 형태로 위치하고 있다. 1953년 작품인 '자동차가 있는 풍경'에 담긴 집과 같은 생김이다.

이 건물은 장 화백의 제자가 미국에서 '스승님의 작품 속 건물과 같은 모습의 건물이 있다'며 보내준 사진에 영감을 받아 지은 건물이다. 한옥과 양옥 중간에는 정자와 작은 숲이 조성돼있어 가을 사색을 즐기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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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백의 1953년 작품 '자동차가 있는 풍경'이 새겨진 비석. 한국전쟁으로 피난 중에 스케치를 완성하고 1953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근대 건축물로서의 고택
장욱진 가옥 가운데 문화재는 한옥(안채·바깥채)과 양옥이다. 한옥은 1884년 지어진 전형적인 경기도 민가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ㅁ자' 형태로 배치됐다. 동서로 긴 직각형 사랑마당 남쪽 중간에 대문, 동쪽에 중문, 서쪽에 헛간이 배치됐다. 북쪽 오른편에 바깥채, 왼편에 담장과 협문이 있다.

급속한 도시화로 근대기 민가들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례다. 문화재청의 '용인장욱진가옥 기록화자료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 민가는 중요민속자료 8건, 시도민속자료 65건, 문화재자료 10건, 등록문화재 1건이 지정됐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장욱진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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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고택 가운데 양옥의 내부 전경. 벽난로와 대리석이 깔린 바닥 등 화려하게 장식돼있다. 현재 리모델링을 거쳐 비정기적으로 전시회가 열린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경기도 전통민가는 안채와 바깥채가 분리된 채로 구성된 형식과 둘이 연결돼 하나의 채로 구성된 형식이 있다. 이 가운데 장욱진 가옥과 같이 'ㄱ자' 형태가 가장 많다. 규모로 보면 중농 이상의 주택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에 노출된 지붕의 구조는 초가집 당시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1986년 수리할 당시에도 하중을 줄이기 위해 개량 기와를 사용했다.

기존골조를 그대로 두고 칸벽과 창호로 최소한의 구조 보강을 한 건 자연스러움을 사랑한 장욱진 화백의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현재 내부 공간은 화가의 생존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도록 전시돼있어 분위기를 살렸다.

양옥은 장 화백이 손수 계획했다. 한국전쟁 피난시절 그린 그의 초기작품 '자동차 있는 풍경(1953년)' 속의 집을 모델로 했다는 점에서 근현대기를 살아온 한국 문화예술인의 의식구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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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고택 중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관리사 내부 전경. 최근 BTS의 멤버 RM이 다녀가면서 지역 명소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지하1층~지상2층의 적벽돌로 지어졌다. 거실에는 벽난로가 설치돼있고 바닥은 대리석으로 화려한 마감이 눈에 띈다. 1층은 비정기적으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지만, 공개하지 않은 2층의 작업공간과 침실 등은 장 화백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전체적인 구성에서부터 벽난로나 오르내리창이 설치된 창호 등에서 그가 젊은 시절 꿈꾸던 이상적인 집이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도시화는 여전히 진행중
지금의 용인 마북동은 개울이 흐르는 목가적인 풍경과 거리가 멀다. 도시의 소음을 혐오한 장욱진 화백이 수안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 터전을 정할 때의 풍경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도 인근 아파트에는 '문화재 옆에 초고층 아파트 웬말이냐'는 내용의 더 이상의 개발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있다.

개발압력이 강해지면서 용인시가 장욱진 가옥을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하려던 2005년에는 주민들이 집단 민원을 제기해 문화재 지정(등록) 반대 운동이 펼쳐졌고, 장 화백의 유족들은 각종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도시 소음 혐오한 장 화백, 용인에 정착
개울 흐르던 당시 마북동 모습 찾기 어려워
개발 압력에 한때 문화재 지정 반대 운동
고택 보존회 결성돼 2008년에야 등록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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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성 장욱진미술문화재단 관리이사가 장욱진 고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2007년 '장욱진 고택 보존회'가 결성되면서 문화재청이 등록을 추진, 2008년 9월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이에 장욱진미술문화재단 김익성 관리이사는 "장 화백께서 조용한 시골을 찾아왔는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옥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됐다"며 "수안보 생활을 정리한 것이 호텔 건립 계획 때문인데, 용인에서도 개발로 이전 압박을 받자, 제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스승님이 가는 곳마다 부동산 가격이 뛴다'라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지금도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던 업체의 파산으로 현재 표류하고 있긴 하지만, 가옥 담장 바로 옆으로 30층 아파트를 조성할 계획이 남아있다.

김 이사는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어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유족들의 뜻이지만, 장욱진 화백이 남긴 가치를 최대한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욱진 가옥의 모습이 한국 근대사를 압축해 놓은 것이라면 가옥이 처한 현실은 개발 압력에 내몰린 문화유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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