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밤, 비료 포대를 뒤집어쓴 아이들이 하수구 통로에 쪼그려 앉아있다. 눈앞엔 바닷물이 빠진 갯벌이 펼쳐진다. 숨죽여 통로를 빠져나온 아이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펄로 내달린다. 목적지는 선감도에서 1㎞ 가량 떨어진 어섬.
갯벌에 다다르자 아이들이 일제히 엎드린다. 아이들 배에 비료포대와 차가운 펄이 맞닿는다. 손으로 질퍽한 땅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대로 800m만 가면 된다. 달음질로는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갈 수 있는 거리. 아이들의 팔이 노를 젓는 것처럼 바삐 움직인다.
그러나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체력도 금세 동난다. 어느새 물이 다시 밀려든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서서히 물에 잠긴다.
훈육 선생님의 호출이다. 방문 너머 들리는 목소리로 보아 단단히 화가 난 듯하다. 불호령이 떨어지자마자 기숙사에 사는 원생 100여명이 복도 양쪽으로 도열한다.
옷소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애들 몇 명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복도 끝에 서 있다. 때리란다. 선감도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던 놈들이니 흠씬 두들겨 맞아야 한단다.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대가는 지독한 구타다.
국가가 묵인하고 경기도가 만든 '부랑아들'의 꿈은 지옥 '선감도'를 탈출하는 것이다. 죽음과 폭력의 두려움도 이들의 탈출 시도를 막지 못했다.
확인 가능 익사자만 7명 달해
대부도나 어섬방면으로 시도
실패후 돌아오면 지독한 구타
진실화해위원회가 선감학원 원아대장 4천689건에 기재된 퇴원 사유를 분석한 결과, 이 중 17.8%(834명)가 섬을 탈출해 빠져나갔다. 탈출하는 아이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원아대장으로 확인 가능한 선감학원 사망자는 모두 24명인데, 이 중 7명(29.1%)이 몰래 섬을 탈출하다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아이들은 주로 대부도나 어섬 방면으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한다. 선감도와 가장 가까웠던 대부도는 익사할 위험은 적었으나 주민들의 신고로 다시 붙잡혀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어섬은 경로가 험난한 반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마산포를 거쳐 육지로 이동하기 편했다.
사고는 대개 어섬으로 탈출을 시도했던 원생들에게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갯벌을 걸으면 발이 무릎까지 빠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로 엎드린 상태에서 움직였다고 한다. 손으로 땅을 미는 동력을 이용해 갯벌을 건너려는 것인데, 탈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미끌한 소재인 비료 포대를 뒤집어쓴 아이들도 있었다.
퇴원자중 추가 사망자 가능성
변수는 이들의 영양상태였다. 나이가 어려 팔 힘이 좋지 않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체력까지 부족했다. 탈출에 실패한 것을 직감하고 할 수 없이 선감도로 다시 돌아온 아이들은 목숨은 부지했지만 보복을 당했고, 끝까지 탈출을 감행한 아이들은 끝내 시신으로 바다에서 건져졌다.
이렇게 돌아온 아이들의 시신은 아무렇게나 매장됐다. 원아대장을 통해 알 수 있는 사망자의 수는 24명뿐이지만, 선감학원 희생자들의 유해가 묻혔을 것으로 현재 추정되는 봉분만 140~150기에 달한다. 더욱이 경인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원아대장에는 사망 사실이 기록돼 있지 않지만, 선감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숨진 사실이 기재된 원생들도 있었다.
이를 통해 확인된 추가 사망자 5명 가운데 3명 또한 탈출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었다. 원아대장 퇴원 사유에는 탈출이라고 적혀 있으나 실제로는 탈출 도중 사망했거나 퇴원한 사유가 적혀있지 않은 642명(13.7%) 중에서도 사망자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 관련기사 3면 ([선감학원 특별기획·(下)] 단속만 집중 '거주지 파악' 부실… 장례·애도 없이 시신 암매장)
/특별취재팀
※선감학원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