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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이 보존하고 있는 영화 '피아골'과 '자유만세', '청춘의 십자로' 현장 스틸컷.

가장 대중적 예술 장르를 하나 꼽으라면 당연 '영화'를 들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영화를 많이 소비하면서, 또 주목도 높은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한국이 세계 영화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 곳이라면, 그 특별함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곳이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다.

이 곳에는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8편(미몽·자유만세·검사와여선생·마음의고향·피아골·자유부인·시집가는날·청춘의십자로)의 영화를 비롯한 2만5천여편에 달하는 영화 필름이 발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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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에 위치한 파주보존센터는 국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를 안정적이고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영화 전문 보존·복원 전문시설로, 필름으로 제작된 영상뿐 아니라, 의무납부제에 따라 국내에서 제작된 모든 영상을 보유하고 있다. 유실된 영화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영상 콘텐츠는 이 곳에 모이는 셈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신동민 보존관리팀 대리는 "보존센터에 있는 작품들은 과거 한국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면서, 한국 영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며 "보존된 자료를 연구하면 다양한 가치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등록문화재 영화는 8편이지만, 보존센터 자체가 하나의 보물창고라는 뜻이기도 하다.

신 대리는 "다만, 과거에는 영화가 한 번 소비되면 그 가치를 잃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유실된 것이 많다"며 "상영을 마친 필름은 밀짚모자처럼 엮어 쓸 정도였기 때문에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작품이 더 많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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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전경.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 가장 오래된 한국 영화 '청춘의 십자로'


등록문화재 가운데 2편의 영화가 무성영화다. 먼저 1934년 안종화 감독, 이원용 주연의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농촌 출신 젊은이들이 서울에 올라와 도시에서 겪는 소비문화, 부적절한 남녀간의 관계, 향락적인 일상 등 삶의 단면을 그리고 있다.

2007년 서울 구 단성사 건물이 철거되면서 창고를 비웠는 데, 9롤의 오래된 질산염 필름이 발견됐다. 그 가운데 8롤이 '청춘의 십자로'였다. 질산염 필름은 백화되기 쉽고 심지어 발화성도 있어 복원이 쉽지 않았는데, 이 가운데 7롤을 복원에 성공했다.

1934년 '청춘의 십자로' 등
8편 등록문화재 복원·보관
신여성 등 당시 사회상 반영


김종원 평론가는 1935년 발성영화의 시대를 연 '춘향전'의 직전 영화격으로 무성영화의 완숙기에 제작돼 우리 영화의 형태와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당시 신문 보도 등을 통해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흥행했으며, 질적으로도 인정받은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 가운데 한 편의 무성영화가 더 있다. 1948년 6월 개봉한 윤대룡 감독의 '검사와 여선생'이다. 마지막 변사로 유명한 신출의 공연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무성영화지만, 이미 발성영화가 일반화된 시기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 변화하는 시대, 여성의 삶을 담은 영화


1936년 10월 개봉한 양주남 감독의 멜로드라마 '미몽(일명·죽음의 자장가)'은 신여성에 대한 대중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허영이 심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아 쫓겨난 애순의 이야기를 통해 허영과 비도덕적 태도 등으로 비판하고 있다.

설득력 없는 평면적 캐릭터와 갑작스런 극의 전개, 어색한 카메라 앵글과 편집 등으로 작품성을 높게 평가할 수 없지만, 당시 영화적 문법과 서울의 풍경이 시대상을 담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2005년 중국 전영자료관에서 '반도의 봄'과 '조선해협'과 함께 입수했다.

여성의 모습을 그린 또 다른 등록 문화재 '자유부인'은 1956년 6월 개봉한 한형모 감독의 작품으로 대학교수 부인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과 일탈적 섹슈얼리티를 그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다.

서구화와 근대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연결되면서 기존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위협한다는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동차와 크레인을 처음으로 사용한 영화라는 것도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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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는 영화 '자유만세'의 현장 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 원본과 현장 스틸컷, 시나리오 등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 광복 직후 영화계


1946년 10월. 한국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최인규 감독 등 드림팀이 내놓은 영화 '자유만세'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극영화다.

극중 독립운동가 최한중을 주인공으로 항일과 광복을 다루고 있는데, 한국영화계를 대표했던 전창근, 최인규가 각본, 연출을 맡았고 일본 동보영화사에서 촬영을 배운 한형모, 한국영화 조명기사 1세대 김성춘, 최초의 편집기사 양주남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한국영화 초기의 관심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멜로와 액션을 선보인 작품이라는 점이 영화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의 감격이 흥행으로까지 이어진 작품이다.

또 1949년 제작된 영화 '마음의 고향'은 해방 후 촬영기술과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로, 신파성을 배제하고 산사의 고요한 생활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희곡 '동승'을 각색한 것으로 발표 당시 '해방 후 조선영화 최고봉의 신기록을 지은 수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산사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잡는 한 감독의 촬영기술이 큰 호평을 받았고 캐릭터도 능숙한 연출하에 설득력 있게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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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수장고. 필름보존을 위해 5℃, 습도 30%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 최초의 금지 영화 '피아골'

1955년 문제의 작품 '피아골'은 휴전 후에도 지리산에 남아있는 소수의 빨치산 부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반공 휴머니즘 영화의 모델이 된 작품이지만,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반공법에 걸렸다.

빨치산 다룬 1955년 '피아골'
실제 빨치산 잔존기에 촬영
높은 예술성에도 상영금지

영화 속에 남한군이나 경찰이 등장하지 않고 빨치산만 등장했는데, 당시 감정 없는 살인자로만 표현되던 빨치산이 독특한 성격을 갖도록 묘사했다는 점에서 작품이 가진 높은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상영허가 취소처분을 받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의 주요 촬영지가 지리산이었는데, 촬영되던 시기에 지리산에 빨치산이 잔존하고 있어 제작진들은 실제 위협을 느끼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1956년 작품 '시집 가는 날'
한국영화 첫 해외수상 기록
이후 베니스 등 진출 물꼬


이밖에도 등록문화재에 등재된 영화로는 한국 영화 최초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시집가는 날(맹진사댁 경사·1956)'이 있다. 1957년 제8회 베를린영화제, 제7회 시드니영화제에 출품돼 해외에 한국영화의 존재를 알렸으며, 같은해 제4회 아시아영화제 특별희극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되면서 60년대 초에는 베니스·베를린·칸 등의 유수 영화제까지 한국영화가 존재감을 알리게 됐다.

파주보존센터 관계자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아카이브나 영상자료원 등을 통해, 영화뿐 아니라 단편, 가편집본 등 영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 보존 자료의 가치 재창출을 통해 국민 문화 정서 향상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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