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501001040900046652

한국 미술사의 특이점(Singularity)을 보여주는 4개의 작품이 있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시대인 20세기 초 한국 미술사 역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되는 데, 당시 등장한 청전 이상범(1987~1972)과 춘천 이영일(1904~1984), 수화 김환기(1913~1974), 모후산인 오지호(1905~1982)는 과거와의 결별이 아닌, 미래를 잇는 작품으로 한국 미술의 발전을 견인했다.

이들의 대표작인 초동(이상범)·시골소녀(이영일)·론도(김환기)·남향집(오지호)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있다. 각 작품들은 어떻게 한국 미술의 이정표가 됐을까.

2022112501001040900046651
오지호 作 '남향집'.

■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부딪힌 오지호 '남향집'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남향집'은 1939년 오지호가 개성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 송악산 기슭의 교사 관사를 배경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가로 65㎝에 세로 80㎝의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그림은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어 포근한 느낌을 준다.

한 낮의 남향집 앞에는 대추나무가 선명한 그늘을 드리우고, 강아지가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즐기고 있다. 빨간 옷을 집은 작가의 딸은 문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다. 밝은 햇살 아래 나무 그림자는 파란색에 가깝고, 노란색 담장과 초록색 나무, 아이의 빨간 옷 등 원색의 대조가 조화롭게 배치됐다.

오지호가 지향하던 인상파 수용 방식과 향토색 구사 방식을 반영하면서도 1930년대 한국 화단의 일반적 특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등록문화재로 선정됐다. 1982년 그가 작고한 후, 유언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 근대사 비극 겪은 오지호 '남향집'
부친 경술국치 자결·절친은 광복후 월북
개인적 아픔에도 아름다운 풍경 화폭에


오지호는 동경미술학교 유학시절부터 일본 화풍과 차별화한 조선풍의 화면 설계에 주력했던 작가다. 민족 미술의 구현이라는 시대 정신과 함께하면서 구상 화단을 지킨 대표적 화가 중 하나면서, 호남화단의 대부로 호남 구상 회화의 본산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화단의 높은 평가와 별개로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5살에 경술국치로 화순 군수였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광복 후에는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는 월북으로 헤어졌으며, 그는 남한지역 빨치산 활동을 이유로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민족주의적 한글학자이기도 했던 그가 겪어야 했던 아픔은 상당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더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남향집'에 담긴 햇살이 더욱 눈 시리게 밝은 느낌이다.

2022112501001040900046653
이상범 作 '초동'.

■ 손기정 가슴에 일장기를 말소한 이상범 '초동'


1926년 작품인 '초동'은 기존의 관념적이고 사의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현실 속 풍경을 주요 소재로 삼아 서양적인 기법을 혼용한 작품이다. 가로 182㎝, 세로 152㎝의 작품은 본디 병풍의 형태였으나 현재 하나로 배접했다.

이 작품은 산봉우리 하나를 화면 상부에 배치하고 그 아래에 농가와 전답을 병치시켜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추수가 끝난 이른 겨울의 농촌 풍경은 원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전통산수화의 관념적인 구도나 시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화풍의 탄생을 알렸다.

# 손기정 일장기 말소한 이상범 '초동'
서양화 기법 혼용 시골마을 서정적 표현
근대적 산수화 독자화풍 '청전산수' 확립


1926년 열린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서양기법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전통적인 산수화 기법인 미점준(점을 여러 번 겹쳐 찍어 형태를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해 공간감을 더 줬고 화면을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상범은 근대 한국화단의 수묵산수화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전통 산수화를 근대화하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미술 사조에 대처하기 위해 작가를 모아 최초의 전통회화 그룹 '동연사'를 조직했다. 특히 주변의 흔한 자연경관을 소재로 삼고 독자적 화풍인 '청전산수'를 수립했다.

그는 동아일보 미술담당기자로 활동하면서 손기정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말소해 심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이후 다시는 언론사와 일하지 않기로 하고 풀려났다고 한다.

2022112501001040900046654
이영일 作 '시골소녀'.

■ 조선과 일본의 화풍을 융합한 이영일 '시골소녀'


'시골소녀'는 1928년 가로 142㎝, 세로 152㎝의 비단에 수묵채색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소녀와 여동생을 화면 가득 묘사했는 데,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자세, 옷차림 등이 당당하다. 흰 저고리에 푸른색 포대기, 붉은 치맛자락, 나락을 줍는 여동생의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 등 색상 대비는 채색화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특히 표현력이 눈에 띄는 데, 강약이 없는 가는 필선으로 인체의 윤곽선을 두른 기법에서 일본화의 표현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창덕궁 창고에서 발견돼 1971년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에 처음 출품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화단사에서 큰 가치가 있는 작품이자, 유존 작품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 이영일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 조선·일본 화풍 합친 이영일 '시골소녀'
'교토파' 보급에 영향… 강점기 큰 인기
광복후 배척… 생활고에 수원서 접골원


이영일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아버지와 일본 귀족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섬세한 필치와 진한 채색의 인물 표현으로 한국 수묵채색화단에 일본 교토파 화풍이 보급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5년부터는 숙명여자보통학교 도화선생으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식민지 시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속 수상을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으나, 광복 후에는 일본식 채색화풍을 배제하는 움직임에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수원에서 접골원을 운영하는 등 작품활동을 중단해 현재 남아있는 작품이 희소하다.

2022112501001040900046655
김환기 作 '론도'.

■ 실험정신과 작가적 기질로 대중적 사랑을 받은 김환기 '론도'

'론도'는 주제가 같은 상태로 여러번 되풀이되는 형식의 음악을 뜻한다. 근대문화유산 론도 역시 음악적 경쾌한 리듬을 연상시키는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1938년 가로 71.5㎝, 세로 61㎝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론도'는 한국 근대화단에서 보기 드문 추상 작품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이름을 올렸다.

그랜드피아노 혹은 첼로와 같은 악기 형태를 원용했다는 점에서 추상 작품이지만, 또 완전한 추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높은 예술성뿐 아니라 근대기의 새로운 조형 실험을 보인다는 점에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한국 화단 빅3 우뚝선 김환기 '론도'
음악적 리듬 추상화 높은 예술성 인정
서구 최신 경향 수용한 순수조형 탐구


김환기는 한국 미술계에서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빅3'로 꼽히며 대중적 선호도가 높은 화가다.

향토적이면서 낭만주의적 경향에 영향을 받았으나 입체파, 구성주의 등 서구의 최신 경향을 적극 수용하고자 한 그가 1930년대 순수조형을 찾아가고자 하면서 내놓은 작품으로, 색·질감·형태 등에 있어 더욱 추상적 경향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그림/문화재청 제공

#경기도근대문화유산 #경기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이영일 #이상범 #오지호 #한국미술사 #한국근현대미술사


2022112501001040900046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