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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가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한 1976년 4월 고양군(현 고양시)의 '아동복리지도원 임용의 적정'관련 문서(왼쪽)와 1976년 5월 고양군(현 고양시)의 '아동복리지도원 임명에 따른 지시' 문서. 경기도가 각 시군에 아동복리지도원의 자격을 규정하고, 다시 엄격히 관리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친구들은 선감학원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때도, 지금도 모두 알고 있다. 그 섬에서 함께 자라면서 모두의 마음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영배씨의 친구인 병호씨는 7년 전, 선감18동 통장을 하면서 선감학원 진상 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그리고 30년 만에 영배씨를 다시 만났고 단번에 친구임을 알아봤다.

병호씨와 윤기씨는 선감학원 피해 진상이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국가가 명확하게 사과해야 하며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병호씨는 "최근에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형평성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경기도민만 해준다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선감학원 원생이었던 인천 사는 동창이 경기도로 옮기려고 알아본다더라. 이 친구들, 다 예순이 넘었고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윤기씨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발굴작업도 하면서 진상 규명 움직임을 보이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나. 강제로 끌려와서 고생만 했는데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감학원에 끌려가는 순간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나는 부랑아가 아니'라고 울부짖는다. 그 울부짖음을 그들과 유년을 함께 보낸 섬의 친구들도 들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잡아간 국가도 알고 있었다. 

아동복지 국가공무원이 앗아간 소년의 삶
소년을 부랑아로 전락시킨 그 시발점엔 국가공무원이면서 아동복지전문가였던 '아동복리지도원'이 있었다.

길거리, 집 앞 골목 등에서 소년들을 잡아 단속의 명목으로 선감학원에 보낸 이들은 주로 경기도, 도내 각 시군에 배치된 아동복리지도원들이었다.

국가는 이들에 대해 아동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했다. 실제로 학위 등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따져 아동복지 전문가들이 선발됐으며, 자격요건에 위배된 이들은 '해임'까지 감행할 만큼 까다롭게 관리됐다.

당시 아동복리지도원은 1970년 보건사회부령 제348호에 따르면 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거나 1년에 1번 진행되는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될 수 있었다.

시험은 사회사업개론과 법제대의 그리고 아동관계법령 및 실무 4과목에서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야 하고 매 과목마다 40점의 과락도 면해야 한다. 지금 시점의 사회복지사 자격시험과 비교하면 사회복지정책·법제론 등 8개 과목에서 매 과목 4할 이상, 전 과목 총점의 6할 이상을 득점해야 하는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

경쟁률도 꽤 높은 편이었다. 1971년 6월 7일에 시행된 아동복리지도원 자격시험은 500명 가까이 지원해 경쟁률 5:1을 뚫고 전국에서 총 93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당시 경기도에선 10명이 합격했다.
학위·자격 따져 전문가 선발했지만
상담 등 아동 위한 행정절차는 없어
인적사항 묻고 명단만 작성 떠나보내

이들의 자격요건도 엄격하게 관리됐다. 경인일보가 확보한 1976년 4월 고양군(현 고양시)의 '아동복리지도원 임용의 적정' 문서를 보면 "아동사업의 특수성에 비추어 아동복리지도원 임용 기준을 시달한 바 있으나, 위배한 결격자를 임용하는 사례가 없도록 유념하고, 결격자는 즉시 해임 조치할 것"이란 공문을 경기도가 전 시군에 하달했다. 이때 도는 교사자격증 미소지와 무자격으로 5명을 해임시켰다.

아울러 아동복리지도원에 대한 자격 검증은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1976년 5월 고양군에 발송된 문서를 살펴보면 "경상북도의 합동감사 결과 아동복리지도원 43명 중 6명이 무자격 임용돼 교체하라는 지시가 있다. 각 시군은 규정에 따라 조치한 뒤 최종임용상황을 보고할 것"이라며 재조사를 지시했다.

치열하고 엄격하게 채용된 경기도 아동복리지도원은 길거리, 기차역, 골목 등지에서 배회하는 아이들을 선감학원에 보내는 데 활용됐다. 피해자들이 이들에게 "부모(가족)가 있다" "집 주소를 알고 있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일단 붙잡고 나면 선감학원으로 보내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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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에 수용된 원생 중 일부는 선감국민학교에 다니며 또래 친구를 사귀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동창으로 둔 이들은 "당시에도 친구가 부랑아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고 똑똑히 증언했다. 사진은 과거 선감국민학교 학생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경기도교육정보기록원

실제로 피해자들은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되기 전에 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당시 아동복리지도원으로 근무했던 이들의 진술 역시 마찬가지다. 부랑아 단속업무만을 집행했을 뿐 이들 본연의 목적대로 아동을 위한 제대로 된 행정절차를 이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고 진술한다.

'단속 후 쫓기듯이 아이들에게 인적사항을 묻고 명단만 작성해 선감학원으로 보내라'는 지시에 따라야 했기 때문인데, 상담을 통해 아동의 상태를 살피는 등의 '아동복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건, 국가가 유독 이들의 전문성에 집착한 데는 아동복리지도원의 본래 역할인 '아동의 건전 육성'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실제 1976년 고양군 문서에도 "요보호아동의 보호사업을 적극 전개하고 아동의 건전 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각 시군에 배치된 아동사업요원(아동복리지도원)의 자질 향상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고 적혀 있는데, 국가는 보호가 필요한 소년들이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 교육하기 위해선 현장에서 아동들을 대면하는 아동복리지도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터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국가는 아동복리지도원을 부랑아 단속에만 집중하도록 강요했다. '부랑아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아동복리지도원들은 아동을 단속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야 했다.

문서상 나타나는 '건전 육성' 허울뿐
현실은 반대… 부랑아 단속 집중 강요

김진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연구원은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모두 마찬가지다. 아동들이 단속했을 때 아동복리지도원들이 아동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한 후 집에 돌려보내거나 보호가 필요한 경우 임시보호시설에 보내는 등 아동복지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그런 분류가 없이 단속하면 바로 선감학원으로 보냈다"며 "선감학원은 서울시립임시아동보호소와 같은 아동보호소가 아니라, 부랑아수용시설이었다. 결국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인력을 뽑아 놓고 전문적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고 단순한 단속업무에만 역할이 한정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지난 2개월여간 이어온 선감학원 특별기획 시리즈를 통해 줄곧 '아동복리지도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때는 용기 내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 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가는 나이 든 소년들을 위해 용기 내주길 기다렸다. 아쉽게도 우리와 소년들의 기다림에 응답은 없었다.

할머니와 함께 외출했고, 형이 일하던 수원역에 잠시 놀러 갔다 단속된 진성(가명·11월26일자 2면 보도)씨는 말했다.

"선감학원에 오면서부터 고아가 됐어요. 선감학원에 오기 전엔 형제도 부모도 있었는데, 여기 오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까지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나는 부랑아가 아니었어요. 정말 부랑아가 아닙니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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