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최초 공식 이민은 1902년 12월부터 1905년 7월까지 이어진 미국 하와이 노동 이민이다. 지금 하와이는 세계 최대 휴양지로 불리고 있지만, 근대 한국의 '집단 노동 이민'과 '재외 한인사회 형성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1902~1905년 하와이로 이주한 한국인 7천215명 중 출신지를 기록한 3천366명의 출신 지역을 보면 인천·경기 주민이 906명(27%)으로 가장 많았고 평안도 696명(21%), 경상도 677명(20%), 전라도 335명(10%), 황해도 253명(7%), 함경도 196명(6%)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 인천, 수원 등 도시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또 성인 남성 비율이 8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1902~1905년 이주자 도시출신 많아
전기·상수도 없는 집단거주지 생활
초창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생활은 어땠을까. 하와이 이민 2세인 신성려 미주리대 교수가 1세대 이민자들의 구술을 모아 1988년 출간한 '하와이 이민약사'를 보면, 1902~1905년 이민 1세대들은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하자마자 시내를 구경할 사이 없이 곧바로 사탕수수 농장으로 파견됐다.
새벽부터 농장에 나가 칼이나 도끼를 들고 원시림을 잘라 사탕수수를 심었다. 1년에 한 번 사탕수수를 수확했는데, 수확량은 1에이커(4천46㎡)당 819t이었다.
계약상 하루 노동 시간은 10시간이었으나, 보통 12~14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한 달 월급은 당시 16달러 정도로, 하루 세끼 먹을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신성려 교수는 이민 노동자들이 "소나 말 같이 채찍질 당했다"고 이민 1세대 구술을 통해 전했다.
남성 이민자들은 이른바 '사진 신부'들과 가정을 꾸렸다. 한국에서 중매쟁이를 통해 남편 될 사람의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온 한인 여성들은 700여 명에 달했다.
1904년 황해도 해주에서 하와이로 건너온 16세 여성 유성기씨는 75세 남성과 결혼했는데, 애초 남편 나이를 40세로 알고 왔다고 한다. 유씨는 22세에 남편을 여의고 이국땅에서 홀로 3남매를 키웠다.
하와이 이민자들은 캠프라고 부른 한인 집단 주거지에서 살았다. 전기도 상수도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지난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시 한 호텔에서 이민 120주년 기념 '인천의 날'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민 2세 해리 김(Harry Kim·83) 전 하와이 카운티 시장으로부터 초창기 이민자의 시련에 대해 들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의사도 없던 마을이었습니다. 어느 날 누이가 어머니에게 몸이 아프다고 말했는데, 어머니가 누이를 업고 6마일(약 9.6㎞)을 걸어 농장 의사에게 갔을 땐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죽은 누이를 업고 6마일을 걸어 집에 왔고, 아버지가 농장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땅에 묻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묘비조차 해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한인 이민자들은 다 똑같이 살았습니다."

해외 첫 한인교회 호놀룰루에 설립
곳곳 학교 세워 美 주류사회行 발판
한인 이민자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모였다. 한인 이민자들은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딘 이듬해 해외 최초의 한인 교회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호놀룰루시에 설립했는데,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이 주축이었다.
2003년 교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보낸 '미주 한인선교 기념탑'에는 경기 파주와 과천, 인천 제물포와 부평 등지에서 온 최초 이민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지난 22일 현지에서 만난 한의준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는 "제8대 현순(1880~1968) 담임목사는 상해(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차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라며 "하와이는 해외 독립운동의 뿌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와이 한인사회는 고국이 어려울수록 더 단단히 뭉쳤다. 1907년 9월 하와이 24개 한인 단체는 고종 퇴위 소식이 전해지자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인합성협회'라는 하나의 단체로 통합했다. 한인합성협회 4개 합동 결의안 중 첫째는 '조국의 국권 광복을 후원하고 재외동포의 안녕을 보장하며 교육사업을 증진하기 위해 힘을 모아 단결한다'로 정했다.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은 후손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길 원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자식 세대가 다닐 학교가 곳곳에 설립됐으며, 이들 학교에서 교육받은 이민 2세, 3세들은 하와이는 물론 미국 본토의 상급 학교에 진학해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박경호·이시은기자 pkhh@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