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2.jpg

 

■법률 제정, 영향 준 사건들

# 23세 청년, 부두 바닥청소중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희생
'평택항 대학생 사망사건'은 지난 2021년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바닥 이물질 청소작업 중 300㎏ 가량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이선호(당시 23세)씨가 숨진 일을 말한다.

# 남이천물류창고 신축 현장서 화재로 38명 안타까운 죽음
'한익스프레스 38명 사망 사건'은 2020년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센터 신축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38명이 숨진 사건이다. 사건은 공사현장 지하에서 우레탄 폼 작업과 화물 엘리베이터 설치 용접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며 유증기에 용접불꽃이 튀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 아파트형공장 공사장, 화물 엘리베이터 폐자재 싣다 추락
'수원시 권선구 건설현장 추락사건'은 2019년 4월 10일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아파트형 공장 신축공사현장에서 김태규(당시 26세)씨가 화물 엘리베이터 폐자재 등을 싣는 일을 하다 추락해 숨진 사건이다.
이 사건들 자체, 혹은 사건 피해자 유가족 활동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시행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막내아들 물건 방 한칸에 그대로…
상실감에 같이 무너진 주변 사람들
"합의했다는 미안함에 지옥에 살아"

발생 이유 찾아 '인과성 증명' 노력
사회적 구조 못바꾸면 재해 되풀이
다른 유가족들과 대응 연대 고민도
그 일은 사고였을까 사건이었을까.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고'였을리 없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 대신 돈과 효율성을 따져 발생한 일이므로 그 일은 '사건'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이의 영구한 부재는 어느 날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라 명백한 인과관계 속에 존재한다.

2020년 4월 29일 그 일이 발생한 날,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선 우레탄 폼 마감과 용접작업이 동시에 이뤄졌다. 공사기간을 단축하려 폭발 위험이 큰 두 작업을 함께 한 것이다. 공사 현장에 결로를 막기 위해 대피로는 인위적으로 막혀 있었다. 원인과 이유가 쌓여 아버지 김형주씨를 앗아가는 '사건'이 터졌다.

장녀 김선애(43)씨는 아버지를 잃은 동생과 남편이 사라진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정신없이 분향소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건, 멍하게 공간을 응시하던 어머니 모습이다.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있던 건 아버지의 부재였다.

38명이 죽은 그 일을 사람들은 '한익스프레스 사고'라고 불렀다. 이해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 일 후 가족들은 사회적으로 사망했다. 일상이 종전과 같을 수 없으므로 피아노 건반을 치던 손으로 국회와 법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가족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면 주변인들의 삶도 완전히 뒤바뀝니다. 1명이 죽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같이 무너집니다."

사회적 사망자들은 우연을 인과로 바꾸려 노력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찾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슷한 재해는 되풀이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이유를 찾는 단계서부터 벽을 마주했다. 2021년 7월 '한익스프레스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해당 사건 관계자들은 모두 감형을 받았고, 발주처 책임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31
2019년 4월10일. 산재노동자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의 시간은 멈췄다. 태규씨는 수원시 고색동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변을 당했다. 지난달 28일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도현씨가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이선호씨가 평택항에서 숨지기 2년 전, 어느 한 가족의 4남매 중 셋째 김태규씨가 양쪽 문이 개방된 화물용 승강기에서 폐자재를 싣고 정리하던 중 추락했다. 5층에서 1층으로 이동한 그의 몸은 바닥에 바스러졌다. 현장에 남겨진 건 혈흔이 묻은 안전모 하나였다.

사건 원인을 파악할 단서인 승강기는 작업 중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5층이 아니라 1층에 내려와 있었다. 반려견 복돌이는 돌아오지 않는 태규씨 방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누나 도현씨도 가족의 부재로 부채를 진 채 살아간다.

도현씨는 카페를 창업하려던 참이었다. 카페를 좀 더 일찍 열어 태규를 그곳에서 일하게 했다면. 그랬다면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부재가 만든 부채감에 소방, 경찰, 고용노동부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관계자와 대화를 녹음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점검했다.

5층에서 떨어진 태규 휴대전화가 깨끗했던 것,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승강기 안에서 태규가 일했다는 것도 모두 의심스런 정황이었다. 현장 관계자의 말도 모두 달랐다. 부채감은 사건 합의 후 더 짙어졌다.

남겨진 도현씨 가족은 사측 관계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옥 속에 살고 있어. 죽어서 지옥에서 만나자." 태규를 위해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다는 상실감, 합의했다는 미안함이 사회적 사망자들을 지옥에 살게 했다.

3
막내아들 이선호(당시 23세)씨가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지는 사고 이후, 부산으로 터전을 옮겨 생활하는 아버지 재훈씨(63)가 힘든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이재훈(故 이선호씨 부친)씨도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을 외치다 부산으로 왔다. 슬퍼하는 아내가 영영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아내가 먼저 부산으로 내려갔고, 남은 재훈씨도 이내 한 달 만에 평택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왔다.

재훈씨는 굽이굽이 산자락에 자리 잡은 공장 물류창고에서 에어컨 배관을 감싸는 단열재를 다른 공장으로 옮기는 일을 한다. 3t 트럭을 몰아 30㎞씩, 50㎞씩 떨어진 다른 공장 서너 곳을 돌면 일과가 끝난다. 트럭에 단열재가 실려 있을 땐 배달 생각에 다른 일을 떠올리지 못하는데,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곤혹을 느낀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노. 뭐 때문에 내가 이러고 있는고."

막내아들 선호 물건이 방 한 칸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예비군 군복, '대학기초수학'·'수치해석'·'기초 미적분학' 따위의 물건 사이에 액자 속 선호가 푸른 라벨 진로 소주병을 들고 웃고 있다. 수학교사의 꿈은 바스러졌고 아들과 술 한 잔 기울일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누구 하나 울면 그걸 보는 다른 사람 가슴이 더 아프지. 그러니 이제 울지 말아야지." 재훈씨가 조용히 되뇌었다.

사회적 사망자들은 인과가 명확한 어떤 사건으로 영구한 부재를 경험한 이들을 알아본다. 마치 무슨 향기가 나듯, 어떤 빛이라도 뿜듯 부재의 흔적은 서로를 모이게 했다. 어쩌면 그것은 같은 상처를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상처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을 것이란 일종의 체념이다.

3
2020년 4월 29일 벌어진 '한익스프레스 사건'으로 김선애씨는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선애씨. 중대 재해의 후폭풍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선애씨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다른 유가족들과 중대 재해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연대할지 고민한다. 우연이 아닌 원인이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선애씨가 지금 다시 마이크를 잡는 이유다.

"가족을 잃고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비슷한 아픔을 겪는 분들에게 위로도 해주고 같은 아픔을 겪는 또 다른 분들이 생기지 않게 힘 보태려 합니다."

국회와 법원, 길거리에서 핏대를 세웠던 선애씨는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연대와 예방을 이야기한다.

2019년 6월 도현씨에게 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가족이 되겠다고 했다. 부재(不在)를 채우는 건 또 다른 존재 밖에 없다는 사실을 먼저 알았던 것일까. 도현씨는 "가족을 잃고 또 다른 가족을 만났어요. 먼저 겪었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느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 있는 거죠"라고 말한다.

도현씨도 다른 산재사고 유가족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하라." 이제 다시 외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대로 개정하라."

故 김용균, 故 이선호, 故 김태규, 그리고 故 김형주. 사건 현장에서 청춘의 시간이 멈춘 이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냈다. 끔찍하게도 이 법은 바스러진 뼈와 흩뿌려진 피로 만들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인과를 밝히고 처벌해 결국 사람을 살리자는 법이다.

도현씨는 "도대체 언제까지 죽어야 이 현실이 바뀔까요. 중처법이 사람을 온전히 살릴 수 있는 법이 되도록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신지영·이시은·유혜연·김산기자 see@kyeongin.com

2023011401000544000026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