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희생이 뒤따른 국내 대규모 참사 때마다 우리 사회가 취한 태도는 한결같았다.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잊자는 것.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 사회를 비극에 빠뜨렸던 참사 대부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기억·추모하는 공간을 조성하려고 해도 관련 특별법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근거가 없고, 특별법을 마련해도 시민들 인식 속에 기피시설로 낙인찍혀 갈등의 소재가 돼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왜 가족을 잃어야 했는지 납득하지 못한 유가족들을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사고 사업주 가족들, 무허가 영업
추모비 계획 관광단지 연계 빈축
1999년 6월30일 화성군(現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발생한 불로 유치원생과 인솔교사 등 23명이 숨졌다. 형식적인 지자체의 관리·감독과 안전불감증에 따른 대표적인 인재(人災)였다.
올해 6월이면 벌써 24주기를 맞는데, 씨랜드 참사 추모식은 2001년 서울시가 마련해준 송파안전체험관 추모비 앞에서 열린다. 씨랜드 참사 현장에 조성될 희생자 추모공간, 추모비 건립은 '궁평 종합관광지'에 포함돼 추진 중이다.
준공 예정시기는 당초 2019년에서 2024년으로 5년이나 미뤄졌다. 여기에 화성시가 추모공간을 사고 현장이 아닌 곳으로 정해 최근 유가족들이 변경을 요청한 상태여서 예상보다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20년 넘게 씨랜드 참사 추모공간 조성이 지지부진한 사이, 씨랜드 사업주 가족들은 참사 현장 옆에 무허가 불법 건축물 등을 세워 돈을 버는 허망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성수대교 위령비' 단절된 공간에
대구 '추모의 벽' 12년만에야 조성
1995년 500명이 넘는 이들이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역시 참사를 기억, 추모할 공간은 없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9년 만에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비극적인 참사 현장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애초 서울시는 참사 현장에 삼풍백화점 붕괴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할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일부 주민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고 '삼풍참사 위령탑'은 참사 현장과 4㎞ 이상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에 있다.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 붕괴사고 희생자를 추모할 위령비는 성수대교를 바라본 채 참사 발생 3년 만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후 강변북로 진출입 램프가 설치되면서 걸어서도, 차량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단절된 공간이 됐다.
2003년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인 대구 지하철 참사는 추모탑은 '안전상징조형물', 추모공간은 '시민안전테마파크'로 불리며 인근 상인들의 반발도 여전하다. 대구 중앙로역 지하 2층 '시민 추모의 벽'은 참사 발생 12년 만인 2015년에야 조성됐다.
참사에 따른 안타까운 희생에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들고 어떠한 사회적 합의, 규정이 미비한 추모공간 조성은 매번 요원한 현실이 과거 일련의 참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참사의 원인만큼 후진적인 추모방식은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러도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 관련기사 3면([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中)] 기피대상 탓 지지부진·계획 바뀌어)
/신지영·신현정·고건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