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의 추모시설은 수 백 명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건립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기피시설'이란 인식 때문에 지지부진하거나 계획이 변경되기 일쑤다.
막대한 예산과 사회적 합의, 규제 등의 장벽이 존재하는 만큼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세월호 이전의 사회적 참사들 대부분이 정부의 지원을 받은 제대로 된 추모시설 하나 갖추지 못한 주된 이유다.
님비로 얼룩진 추모시설
총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에 달하는 삼풍백화점 참사의 위령탑은 사고가 발생한 서초동이 아닌 4㎞ 이상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사고 현장에 위령탑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 때문이다. 대체지인 양재 시민의 숲으로 정해졌을 당시에도 서초구의회는 "위령탑 부지는 많은 사람이 야유회도 즐기는 곳이며 웨딩촬영을 하는 그런 장소"라며 반대 의사를 표했고, 결국 위령탑은 시민의 숲 가장 남쪽 구석에 위치하게 됐다.
대구지하철, 지역상인과 갈등 계속
삼풍百, 공원 가장 구석으로 밀려나
2003년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당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사고 발생 12년만에 '기억 공간'이란 추모벽이 대구 중앙로역 지하 2층 사고 현장에 조성됐다. 길이 27m, 폭 3m, 340㎡ 넓이로,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수차례 좌초 끝에 설치된 추모시설이다. 사고 초기 전국에서 추모시설 건립을 위한 성금 모금이 진행됐다. 삼풍百, 공원 가장 구석으로 밀려나
피해자단체는 2005년 추모벽설치위원회를 조직해 추모 공원, 안전교육장 건립 등의 본격 추진에 나섰지만, 지역 상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역사 내 추모벽으로 방향을 틀어 정부나 지자체 예산 지원 없이 국민 성금 5억2천만원을 투입해 2015년 조성했으며 현재도 팔공산에 추진되는 추모공원 설립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대구시, 상인들의 갈등은 진행 중이다.
일반인 접근이 힘든 추모 공간도 있다. 지난 2010년 피격된 천안함은 현재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안에 전시돼 있다. 본체는 물론이고 전시관과 추모비 모두 함대 사령부에 있어 보안을 요하는 군부대 특성상 접근이 어렵다.
추진 동력은 특별법, 제정돼도 어려운 현실
세월호 참사 발생 1년 후인 지난 2015년 추모공원 조성과 기념관 설립 등을 정부와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추모시설 설치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의 규제들에 불구하고 국가가 추모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특례를 적용했다. 같은 해 정부가 안산 화랑유원지 내 추모시설을 조성하기로 결정해 추진 동력을 얻었다.
국비 404억원 등 총 483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각종 행정절차로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지만, 특별법이 뒷받침된 덕분에 사회적 참사 중 가장 가시적인 추모 공간이 계획됐다. 이에 지난해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유족들도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지자체 지원 의무화
이태원 유족들도 법 제정 강력 요구
이태원 유족들도 법 제정 강력 요구
유족들이 제시한 특별법 요구안에는 세월호 참사와 유사하게 추모 지원을 의무화하고 특례를 적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이태원은 대표적 관광특구이자 상업지역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더라도 참사 현장과 인근에 추모공간을 조성할 경우 앞선 참사들보다 더 많은 반발이 예상된다.
이미 현장에 추모를 원하는 시민들이 붙인 포스트잇들은 상권 활성화를 이유로 대부분 정비된 상태다. 임시 추모공간으로 유족들이 설치한 서울시청 광장의 합동분향소는 이날도 서울시가 다시 한 번 자진철거를 요구하며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신현정·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