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도 베를린의 상징으로 불리는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도보로 5분 남짓 걸으면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홀로코스트 추모비에 도착한다. 위치는 또 다른 유명 관광지 베를린 전승기념탑에선 차로 불과 5분이면 도착하는 시내다.

모두 2천711개 콘크리트 석비가 도열해 있는데 가로와 세로는 같지만, 높이는 모두 달라 중심부로 갈수록 높이 솟아 마치 미로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인상적인 건 가장자리 석비는 높이가 낮아 사람들이 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독일인과 관광객들은 석비에 자유롭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베를린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시내 위치… 자유롭게 인파 왕래


추모공간이 생활공간과 가까운 것이다. 무엇보다 이 추모 공간은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05년에 지어졌다. 시간 경과와 관계없이 한 사회가 기억해야 할 참사라면 언제든 추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점이다.

독일 홀로코스트 추모비처럼 해외에서 대규모 참사를 추모하는 방식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수많은 이들이 숨진 참사 현장에 아파트를 세우고 추모공간을 두고 갈등이 불거지는 우리 사회 모습과는 달리, 일상 속에서 함께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연대 의식을 보여준다. 단지 참사를 아프고 슬픈 존재로 여기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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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심에 조성된 '9·11 메모리얼 파크' 추모비에는 9·11 테러 등으로 희생된 2천983명의 이름이 애칭으로 새겨져 있다. /AP=연합뉴스

뉴욕 중심 '9·11 메모리얼 파크'
테러 지점에 조성, 희생자 기려

뉴욕 중심에 조성된 '9·11 메모리얼 파크' 사례도 마찬가지다.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지점인 '그라운드 제로'는 2개의 연못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깊이 9m의 연못 형태로 내부에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연못 주변은 검은색 대리석인 추모비로 둘러싸여 있다. 추모비에는 9·11 테러 등으로 희생된 2천983명의 이름이 애칭으로 새겨져 있다.

더불어 사고가 발생한 현장의 지하에는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고 테러 사건의 배경, 그 이후를 전하는 기록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특히 박물관 한쪽 벽에 '어떤 날도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울 수 없다'는 메시지가 걸려있다. 9·11 테러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것으로, 슬픔에 빠진 유가족을 위로하고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동체가 함께 기억 노력 중요"


전문가들 역시 참사의 고통을 개인·가족이 견뎌야 했던 과거와 달리, 현 시대에 맞는 사회적 참사 대처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는 "개인이 견디기 어려운 참사가 발생하고 이를 회복하는 데는 사회가,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는 의미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공간"이라며 "다른 나라도 고도 성장기에는 참사의 고통을 개인과 가족이 이겨야 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진국에 꼽히고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자세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下)] 전문가들 '설득과 신뢰' 강조)

/신지영·신현정·고건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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